벚꽃이 흐드러지는 봄날, 꼭 봐야 할 신카이 마코토의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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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고 보고 읽는 감독, 신카이 마코토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면 단연 신카이 마코토일 것이다. 특히, 그의 작품은 섬세하고 사실적인 작화,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영상미로 정평이 났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감탄스러운 영상의 아름다움에 차기작이 항상 기대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너의 이름은', '언어의 정원', '날씨의 아이' 그리고 이 작품까지 총 4편밖에 보지 못했지만, 하나같이 밝고 경쾌한 내용보다는 안타까움, 먹먹함, 눈물, 애틋함, 아련함 등으로 물든 주인공 남녀의 이별과 그리움이 필연적이다. 선호하는 소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챙겨 보게 되는 건 신카이 마코토 감독만의 매력이다.
■ '초속 5센티미터', 소설의 매력과 비하인드 스토리
초속 5센티미터의 주요 이야기는 타카키를 구심점으로 중학생 때의 1화 '벚꽃', 고등학생 때의 2화 '코스모너트', 사회인이 된 3화 '초속 5센티미터' 총 3화로 구성되어 있다. 각 에피소드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 시점의 변화가 흥미롭고, 애니메이션에서는 생략된 부분이 많아 아쉬웠던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나 전차 플랫폼에서 바람에 날려 사라진 타카키의 편지뿐만 아니라 타카키를 기다리며 쓴 아카리의 편지 내용까지 고스란히 실려 있어 궁금증이 많이 해소됐다. 그리고 사회인이 된 타카키의 직장 생활, 연애에 대한 내용까지 자세히 엿볼 수 있었다.
사실, 연작 단편 애니메이션이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처음 구상한 것은 10편의 다른 내용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 영화였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하나의 이야기로써 만족감을 담고 싶어 10편 중에서 스토리가 연결될 만한 3편으로 추렸다고 한다. 나머지 7편은 누구의 관점에서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몽글몽글 호기심이 피어난다.
■ 1화, 벚꽃
ねえ、まるで雪みたいだね。桜の花びらの落ちるスピードだよ。秒速五センチメートル。
있잖아, 꼭 눈 같지 않아?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래.
애니메이션에서 참 아름답게 그려져 뇌리에 깊이 남았던 1화의 첫 장면은 소설 속에서도 영상을 그대로 담아낸 듯 세밀하고 유려한 필체로 묘사됐다. 타카키의 관점에서 서술되며 특히, 아카리를 만나러 가는 길, 폭설로 지체된 전철에서의 심리 묘사가 참 절절하고, 애달팠다. 초등학생이었던 타카키와 아카리가 전학을 자주 다니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 작은 키와 병약했던 점, 활동적이기보단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급속히 친해진 배경이 설명된다. 둘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강한 유대감으로 이어진 그들에게 갑작스러운 아카리의 전학은 받아들이기 힘든 시련이었다. 도쿄에서 시골 마을로 전학 간 아카리와의 물리적인 거리감만큼 중학교에 진학한 후 둘의 사이는 소원해지지만, 어느 날 타카키에게 부친 아카리의 편지로 다시 인연의 끈이 이어진다. 남단의 섬으로 이사를 가게 된 타카키는 아카리와 더 멀어지기 전에 만나기로 하는데, 당일 예상치 못한 폭설로 전철은 4시간이나 연착된다. 눈물의 재회와 또다시 안타까운 이별...
■ 2화, 코스모너트
2화는 남단 섬으로 전학 간 타카키와 그를 5년간이나 짝사랑하는 카나에의 이야기다. 카나에의 관점에서 서술되며 타카키를 좋아하지만, 쉽게 고백할 수 없는 안타까움, 진로에 대한 고민, 좀처럼 늘지 않는 서핑, 외모에 대한 불만 등 뭐 하나 딱히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그린다. 늘 의도적으로 타카키의 주변을 맴돌며 그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려 노력하지만, 로켓이 발사되던 그날, 감정이 분출된 카나에는 같은 곳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두 사람이 결국 결코 접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절대 그의 곁에 머물 수 없다는 절망과 좌절을 느낀 카나에는 마음을 접는다.
■ 3화, 초속 5센티미터
3화는 다시 시점이 바뀌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된다. 남단의 외딴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진학을 위해 다시 도쿄로 간다. 대학시절의 첫 연애, 이어지는 사랑들과 삐걱거리는 관계 그리고 이별의 반복, 무미건조한 직장 생활, 쌓여가는 슬픔과 헛헛한 공허함, 과거에 잠식돼 전진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의 모습은 암울하기까지 하다. 항상 마음 한편에 아카리의 파편을 담아두고 있던 타카키는 그 누구에게 있어서도 충분히 사랑을 주지 못했다. 마음을 둘로 쪼개 아카리와 연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디에서든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한 타카키의 뒤늦은 깨달음과 오열은 안타까움과 속상함으로 다가온다. 한편, 과거에 머물러 있는 타카키에 반해 아카리는 지난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결혼도 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초속 5센티미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벚꽃이 흩날리던 철길에서 다시 타카키와 아카리가 만났을 때, 독자는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본다. 혹시... 하지만, 역시가 나을 수도 있겠다. 작위적인 해피엔딩보단 현실감 충만한 결말이 더 애틋하니까.
■ 감상
각 에피소드를 색깔에 비유하자면 1화는 풋풋한 핑크빛, 2화는 붉은 태양빛과 푸른 바다 빛, 3화는 그야말로 잿빛이다. 주변 환경에 의해 무력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아이들이지만, 둘은 서로의 감정에 적극적이었다. 폭설도 뚫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헤어짐이 있었지만 기대할 수 있는 미래가 있었다. 2화는 사춘기 소녀 카나에의 열병 같은 짝사랑이 이글대는 정열의 태양빛으로, 그 청춘의 아름다움, 고백할 수 있는 용기는 눈부신 푸른빛으로 비쳤다. 나도 비슷한 시기 같은 경험을 했고, 짠 바닷물을 연신 꿀꺽하며 어렵사리 서핑 보드에 의지해 두 다리로 넘실대는 파도 위를 누빈다는 것이 어떤 희열감인지 알기에 정말 공감하며 읽었다. 가장 아쉬웠던 3화는 정체와 상실로 대변된다. 왜 그렇게 과거에 매여 아카리를 놓지 못한 채 주변에 있던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냈을까. 아카리를 그렇게 사랑했다면 놓지 말지. 너무 소극적인 데다 제약이 많았던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 무력해 보이는 타카키의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고, 속상했다. 언젠가 다시 아카리를 만난다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던 그의 다짐은 얼마나 공허했던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故 김광석 님의 쓸쓸한 가사가 OST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대신 귓가에 맴돌아 씁쓸했다.
■ 초속 1센티미터 트레일러 자막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