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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리딩 Mar 16. 2022

ラヴレター(러브레터)

아련한 첫사랑의 감성이 소환되는 설렘의 러브스토리

쉰 번째 일본어 원서 완독




영화 '러브레터'



들어가기 전 잠깐 추억 소환과 극찬 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은 감상을 나열하기가 참 힘들다. 진한 여운과 잔잔한 감동을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단어들 중 아무리 애써 고르고 골라 짜 맞추어봤자 안 적는 것만 못 한 느낌에 미루고 미루다 보면 그나마 남아 있던 잔상의 온기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이 작품이 그렇다. 러브레터가 상영된 지 벌써 20년이 흘렀고, 작년에는 20주년을 기념해 재상영이 되기도 했다. 아득하기만 한 십 대 시절, 서로의 그리움에 우표를 붙여 주고받던 첫사랑과의 편지지를 장식하던 작품이기도 하여 나에겐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겨울이면 항상 생각나는 OST도 그렇고... 


새하얀 설원에서 주인공 히로코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그에게 외친다.


お元気ですか。私は元気です。お元気ですか。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요. 잘 지내시나요? 



영화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철이 들어 90년대를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인상 깊은 대사일 것이다. 설원이 아름다운 삿포로와 함께 나카미야 미호의 청순한 리즈 시절이 더없이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스크린을 통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상미에 감탄했다면, 소설에서는 지면을 통해 그의 유려하고 섬세한 필치 그리고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에 매료됐다.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를 사고로 떠나보낸 와타나베 히로코와 후지이 이츠키의 첫사랑이었던 동성동명 후지이 이츠키, 주요 등장인물 셋으로 이렇게 서정적이며 반전 있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이런 주옥같은 작품 덕분에 일본 문학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것 같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명작으로 추천추천!


초반에는 장례식과 관련된 용어가 좀 쏟아져 살짝 덜컹덜컹 걸리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평이한 수준이다. 분량도 200페이지 남짓인 데다 대화문이 많아 부담 없이 읽기 좋다. 탄탄한 구성과 매끄럽게 풀어낸 문장력 덕분에 호기심이 해소될 즈음 점점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쉽게 느껴진다. 군더더기 없이 정말 깔끔하게 잘 쓰인 작품이다. 퍽 무뎌진 내 감성에도 잔잔히 스며드는 따스함과 설렘이 좋았고, 안타까움, 슬픔, 속상함, 놀라움, 긴박함 등 다양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즐기며 각 상황에 공감하며 재밌게 읽었다. 


무심코 보낸 편지 한 통이 이어준 후지이 이츠키의 첫사랑과 끝사랑

겨울 산행에서 조난을 당한 약혼자는 그 길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버린다. 후지이 이츠키가 죽은 지 2년째가 되는 기일. 그의 약혼녀 와타나베 히로코는 그의 집에서 발견한 중학교 졸업 앨범에 적힌 그의 옛 주소로 기대 없이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편지는 예상치도 못하게 학창 시절 소년 후지이 이츠키의 같은 반 동성동명 소녀였던 후지이 이츠키에게 도착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拝啓、藤井樹様。お元気ですか?私は元気です。

후지이 이츠키 님,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요. p.16



이 소설의 참 흥미로운 점은 조난으로 사망한 후지이 이츠키를 매개로 두 여주인공인 그의 약혼녀 히로코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첫사랑인 이츠키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된다는 점이다. 두 가지의 시점으로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고, 내용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녀들을 사랑한 후지이 이츠키는 사망한 인물이라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그와의 추억을 매개로 한 같은 반 친구였던 후지이 이츠키의 기억을 통해 회생된다. 


떠난 자, 남은 자 그리고 깨달은 자 

십 대였던 내 기억 속의 '러브레터'는 그의 첫사랑 '후지이 이츠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앞서 말했듯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는데, 이 나이가 되어 소설을 통해 밀도 있게 행간을 읽어나가다 보니 그의 끝사랑 '히로코'의 아픔과 상심에 좀 더 동감하게 됐다. 


ひと目惚れって信じますか?

첫눈에 반한다는 말 믿으세요? p.118



이성으로부터 자신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그다지 신뢰는 안 가더라도 살짝 기분은 좋겠지. 첫 만남에서 말수 적은 후지이 이츠키는 히로코에게 대뜸 이렇게 고백한다. 그의 고백으로 둘은 결국 사랑을 키워 약혼까지 하게 되지만, 이 말은 후일, 히로코에게 큰 상처가 된다. 그의 첫사랑, 중학교 때 한 반이었던 소녀 후지이 이츠키와 그녀가 똑 닮았던 이유이기에. 


拝啓、藤井樹様。この思い出はあなたのものです。だからあなたが持っているべきだと思うの。彼はきっとあなたのことが好きだったんだと思います。でもそれがあなたでよかった。今までのこと本当にありがとう。また手紙を書きます。……またいつか。

渡辺博子


후지이 이츠키 님, 이 추억은 당신의 것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이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는 분명 당신을 좋아했다고 생각해요. 그가 좋아한 사람이 당신이라 다행이에요. 지금까지 정말 감사했습니다. 또 편지 쓸게요. ...... 다시 언젠가. p.203



안타깝게 떠난 그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에서 시작한 펜팔로 결국 모르는 편이 좋았을 잔인한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츠키에 대한 질투심도, 약혼자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에 상심도 하지만, 히로코는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인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첫사랑에게 저렇게 의연하고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모습도 참 아름답다. 이츠키에게 보낸 첫 편지와 마지막 설원에서의 외침,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요." 그렇게 남겨진 히로코는 이젠 과거를 극복하고 남은 인생을 다시금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게 아닐까. 



わけもわからないまま、あたしは何気なくそのカードを裏返した。あたしは言葉を失った。それは中学時代のあたしの似顔絵だった。


영문도 모른 채 나는 무심코 그 카드를 뒤집었다.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것은 중학교 시절의 내 초상화였다. p. 206



말수가 적고 소심하며 대인관계가 서툰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이츠키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다. 도서실 업무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녀를 따라 도서 위원이 된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구애 방법이었으리라. 뒤바뀐 영어 시험지를 돌려달라고 항변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갖고 있다거나  아무도 빌려 가지 않을 법한 책의 도서 카드 첫 번째 칸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 넣기도 한다. 전학 가기 전 대신 반납을 부탁하며 그녀에게 전한 책의 도서 카드 뒷면에는 연애편지 대신 그녀의 얼굴을 그려 넣어 마음을 전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도서명처럼 그 책은 십여 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그녀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준다. 


히로코에게는 비극을, 이츠키에게는 희극을... 역설적이게도 잔인하면서 서정적인 소설이다. 슬프고 안타깝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다. 막연히 첫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러브레터가 어른이 되어 다시 접해 보니 새롭게 다가와 신선했다. 분량, 내용, 수준 모두 합격이라 나중에 책 한 권 번역 연습할 때 도전해 보고 싶다. 1차 목표였던 일본어 원서 읽기 50권 완독 달성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더욱 의미 있었던 것 같다. 다음 목표 100권 완독도 화이팅!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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