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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May 07. 2024

적응은 끝나지 않는다

06.

원래 이사가 힘든 거야. 한국이라고 안 그러간디. 여기도 이사 한 번 하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줄 아냐. 몇 주 동안 여기 고치고 저기 고치고 다 그런 거지. 엄마는 나의 뻑적지근한 이사 후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공감한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긴 했지만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휴대폰 화면 속에서 느껴지는 덤덤한 태도에 슬그머니 약이 올라 인도에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은 참 쉽다는 반항심이 들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이사는 힘들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어려운 일이라 나만 힘들다고 말할 입장도 못 된다. 나보다 곱절은 힘든 이사를 해내는 사람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는데 고작 이 만한 일로 지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겸연쩍은 깨달음까지 얻었으니 이만하면 이사야말로 도를 닦는 수행이다 싶다.


새집으로 옮긴 지 3주가 지났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현관을 들락날락하며 때늦은 보수 작업을 이어 갔는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라 나 역시 마음고생 몸고생이 적지는 않았다. 이삿짐이 들어오기 전 방충망이며 커튼이며 모든 준비는 3일이면 뽕을 뽑는다고 아무 걱정 말라던 매니저는 역시나 거짓말쟁이였다. 3일은커녕 3주가 걸렸으니 거짓말쟁이라는 타이틀이 그렇게 억울하진 않으리라.


이삿날 새집에 와 보니 방 2개에는 달다가 관둔 커튼이 나뒹굴고 있었는데 매니저는 분명 커튼을 다 달았다고 우겼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일절 감독하지 않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증거였다. 어디 그뿐이랴. 약속한 모기장을 달지 않은 주방은 또 어떠한가. 이제 와서 주방은 달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 너무 잘 알기에 다시 사진을 찍어 보내며 끝내 주방에도 모기장을 설치해 주기로 단도리를 했다. 게다가 이사 전에 넣어준다던 전자레인지와 오븐도 엊그제야 보내주었으니 기본적인 사전 작업이 마무리되는 3주가 걸렸다는 말에는 일말의 과장도 섞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세탁기는 방문을 통과하지 못해 뻥 뚫린 베란다에 설치해야 했다. 전기와 물을 끌어다 쓸 수 있게 호스를 연결하고 전선 익스텐션을 설치하는 아찔한 대작업을 진행했다. 에어컨은 또 어떠한가. 거실 에어컨을 틀자마자 탱크 바퀴가 굴러가듯 덜덜덜 굉음이 나와 하루는 날 잡고 천장을 뜯어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하얀 가루가 온 집안에 꽃가루처럼 휘날렸다. 음식 한 번 짓지 않은 주방은 이미 수도가 터져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였고 매일매일 크고 작은 개미떼가 출몰해 방역 업체를 세 번이나 불렀다. 모든 일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일어났다.


지난주 금요일부터는 인터넷이 먹통이다. 집주인이 설치해 준 타타 5G가 되는 날보다 안 되는 날이 많더니 이토록 허무하게 고장이 났다. 드문드문 인터넷이 연결될 때에도 컴퓨터를 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집은 전 집보다 정전이 열 배는 잦아 언제 어디서 끊길지 모르는 까만 화면이 두렵기 때문이다.


새 집에 얼추 적응을 끝냈엄마에게 당연한 걸 뭘 묻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었다. 인도 집에 완전한 적응이란 없어.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마주할 테지. 그러니 나의 적응은 영원히 현재진행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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