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감한 망고 May 13. 2024

당신 참 재미없게 사시네요

한국 촌놈의 인도 상륙 799일차(2024.05.13)

당신 참 재미없게 사시네요. 예전 같으면 피가 부르르 끓어 올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먹을 꽁꽁 쥐고 쿠션을 퍽퍽 때리며 화풀이를 했겠지만 어느덧  마음이 아주 조금 넓어진 것도 같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잠시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가 곧 풀어지는 걸 보면요.

솔직한 마음을 말해보겠습니다. 내 눈에는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이 한심합니다. 한심하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어느날 돌연 보복이라도 당할까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인지는 모르겠으나 한심한 사람을 한심하다고 말하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단어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인도에 나와 한식당을 찾아다니지 않으면 재미없는 삶인가요.

인도에 나와 한국인과 술을 먹고 다니지 않으면 재미없는 삶인가요.

인도에 나와 한국 교회를 찾아가 어울리지 않으면 재미없는 삶인가요.

인도에 나와 한국인과 골프를 치지 않으며 재미없는 삶인가요.

이제 겨우 온 지 세 달도 되지 않은 사람이 내게 훈계를 합니다. 가소로움을 느낍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반박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을 사람에게 나의 말이 들리기나 하겠습니까. 닿지도 못할 진심을 이해시키고 싶을 만큼 내게 의미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아마 평생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다 죽을 테지만 그런다 한들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나는 인도에 나와 인도 식당을 찾아다니며 재미를 봅니다.

나는 인도에 나와 짜이를 먹으며 재미를 봅니다.

나는 인도에 나와 만디르와 마스지드를 관찰하며 재미를 봅니다.

나는 인도에 나와 당신이 눈살 찌푸릴 곳들을 걸어 다니며 재미를 봅니다.


나는 단 한 번도 당신에게 나의 삶을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나를 따라 올드 델리로 나와 파리 떼 사이에서 음식을 먹으라 윽박지른 적도 없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짜이를 먹어 봐야 한다고 젠체한 적도 없습니다. 42도의 태양빛 아래 목뒤가 벌겋게 익을 때까지 암베르 포트를 오르라 시키지도 않았고 인도에 사는 동안 마날리 숲길은 꼭 걸어봐야 한다고 우긴 적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재미이지 당신의 재미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왜 당신의 삶이 재밌는 삶이라고 확신합니까. 무엇이 당신에게 그런 확신을 주는 겁니까. 그래도 다행이군요. 자신의 삶이 재밌다고 확신하는 삶이 재미없다고 확신하는 삶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삶이 재밌다고 해서 나와 다른 삶은 재미없다고 매도하는 유치한 발상은 자랑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런 걸 나잇값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나는 인도에 사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재밌고 안녕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