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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고실험 Sep 14. 2023

인문학 결핍증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자들의 죽은 비명

인문학이 외면받고 있다.

고등학생들도 문과 기피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문과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문과를 선택한 이유를 물으면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요, 라고 대답한다.

인문학이 좋아서 문과를 선택했다는 사람이 소수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인문학적인 사고는 도움이 된다'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기계를 만들더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고, 인테리어를 하더라도 보다 인간 친화적인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생각이었는데 그게 단 몇 년 만에 바뀌게 되었다.


"인문학적인 사고가 없으면 위험하다."


이젠 이렇게 생각한다.

인문학이 결여되고 있다.

단지 약간의 이득을 더 얻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받던 인문학이 이젠 고갈상태가 되어 결핍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인문학 결핍 현상은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치로 환산되기 시작한다.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야 하고, 또 인간의 목숨은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옅어진다.

기업들은 직원들이 목숨을 잃는 공장을 계속 가동시키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는 암을 유발하는 물질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약간의 이동 시간을 단축시켜준다는 이유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안전 속도 30km/h를 해제 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건 국가 탓이고, 사회 탓이고, 기업 탓이고, 개인 탓이다.


어느 누구도 인간적으로 살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교통비 몇 백원이 아깝다고, 내 이동 시간 십여분이 아깝다고 남을 외면하며 살아온 결과물이 이것이다.

배려하지 않는다.

지키려하지 않는다.

함께 하려는 것이 없다.

우리는 모두는 하나하나가 존재 그 자체로써 의미를 가지고 또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잊는다.

내가 500만원 1000만원을 벌어도 단돈 만원이 없어서 한 겨울에 히터도 없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 하지 않는다.

나는 보호받고 싶어 하는데 내가 나서서 남을 보호하려고는 않는다.


그것은 나의 존재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내가 얼마나 의미있는 존재이고, 내가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소중한지 모르면 남이 소중한지 모를 수 밖에 없다.

대우로 생각해 보면 남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인문학 그 자체일 뿐이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가 존재함으로써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는가?

우리는 그 역사에서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배웠는가?

나라는 존재들이 모여 어떤 역사를 써 내려 왔는가?

내가 얼마나 가치있고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이고 내가 이 세상에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인문학은 수 없이 많은 지식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존재의 이유를 모른 채 그냥 존재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가?

그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기계들로 가득한 세상과도 같아진다.

기능을 다 하지 못하면 폐기되고, 고성능의 기계로 대체되고, 숫자로 평가받고, 비교하고, 외면하고, 서로 혼자가 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인간에 가까운 것인가 기계에 가까운 것인가.

우리는 존재로써 존중받는 것인가?

아니면 기능으로써 존중받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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