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 포함 약 12시간의 비행이 시작됐다. 나는 악명높은 러시아 항공인 아에로플로트를 타고 갔는데, 이전에도 본의 아니게 아에로플로트를 3번 정도 탄 적이 있다. 왜냐? 싸니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에로플로트라고 하면 불친절, 짐 분실, 모르쇠, 기내식 최악, 연착 등 항공사로서 제 구실을 하고 있나 의심이 될 정도로 부정적인 단어들로 설명되곤 한다. 당연히 나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싸니까… 이 모든 건 하늘의 뜻이지 않겠냐는 합리화로 타곤 했다. 그런데 누가 그랬던가, 나만 아니면 돼~~라고.
난 한 번도 연착이나 짐 분실 등의 불상사를 겪은 적이 없다. 겪은 거라면 쎈캐 승무원 언니들의 모습 자체에 쫄았다는 것 정도? 사실 그것도 그들이 일을 태만시 하거나 손님을 하대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은 상대적으로 무심할 뿐… 항공사 서비스를 생각할 때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아시아나 미소를 떠올리지만 않는다면 승무원의 서비스 역시 불편 하나 없다. 기내식은 뭐… 사실 아에로플로트가 너무 안 좋은 것들로 유명해서 그렇지 기내식은 우리나라 대한항공, 아시아나가 아닌 이상 루프트한자와 같은 유럽 항공사들도 별로이긴 매한가지... 얘기하다 보니까 쓸데없이 아에로플로트 옹호론자가 되어 있는데, 아무튼 그만큼 나는 아에로플로트를 즐겨(?) 탔다는 아주 쓸모없는 이야기… 유럽 갈 때마다 아에로플로트를 타고 가서 과장을 보태어 거의 눈감고도 경유지인 모스크바 공항을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다. 와이파이 잘 터지는 카페도 알고 있음^^.
암튼 짐이 없으니 이리도 날아갈 것 같구나~~~ 싶었지만 여행이 아니다 보니 계속 긴장된 상태이긴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시차 따윈 겪어보지 못한 헤비 슬리퍼(heavy sleeper)라 비행기 내에서 꿀잠 두어 번 잤더니 어느새 런던이래요~~.
불과 하루 전 짐 무게에 쫄려하며 영국 갈 수 있나, 싶었는데 너무 스무스하게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다. 설렘보다도 안도의 한숨으로 히스로 공항과 첫인사를 나눴던 기억. 그러나 이런 감상을 즐길 새가 어딨나. 공항에 도착했다는 건 이제 이 짐을 스스로 날라야 한다는 뜻. 빠른 판단으로 택시를 불렀고, 약 15분 탔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한 3만 원이 나온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이는 내 짐값이 포함된 거긴 하나, 어쨌든 영국 물가 첫 경험을 이렇게 포문을 열게 되었으니... (물가는 또 이야기 하겠지만 교통비와 렌트비가 정말 고개 절레절레... 그러나 다른 건 서울도 만만찮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호텔에 도착해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면서 TV에서만 보던 영국 클리셰, 이층 버스와 테스코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내가 감탄하거나 설렜다고는 생각지 마시길. 사실 나는 영국에 대한 환상(?), 호감(?) 뭐 이런 게 일도 없는 사람 중의 하나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영국은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 아이엘츠 공부하면서 영국이 4개 국가가 합쳐져 있다는 걸 알았을 정도로… 그냥 아웃오브안중이랄까… 오로지 영국을 택한 이유는 출판 쪽으로, 특히 매거진쪽으로 영국이 잘 발전되어 있고 미국보다는 현실 가능한 지역(학비, 치안, 유학 기간..)이기 때문에 고른 이유가 다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건 나중에 기록할 예정인데, 이렇게 영국에 대한 아무 기대도 없고 감정도 없어서 그랬는지 지금의 나는 영국을 참으로 좋아한다는 점일 거다. 이렇게 어, 이층 버스다! 어, 테스코다! 이러면서 기념 삼아 테스코에서 물건도 사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인상깊게 다가왔던 영국의 장면은 따로 있었다. 바로 중동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휑한 거리에 듬성듬성 있는 사람들이 모두 중동인이라 무서웠을 정도. 물 사러 테스코에 가고 배고파서 KFC를 가는 동안 내가 생각했던 영국인의 모습을 한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영국 발음을 하는 백인/흑인, 정확히 말하면 백인이 대다수인 모습을 생각했더랬다. 이는 오롯이 나의 편견이었다는 걸 영국에 지내면서 깨닫게 되긴 했는데, 그 당시에는 거리에 모두가 중동 사람들이라 사우디같은 곳 가면 이런 느낌인가, 잠깐 상상했을 정도. 얼마나 무서웠는지 린치당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괜히 한발짝 떨어져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다니곤 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이색적이거나 놀라운 모습이 전혀 아니라는 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영국 역시 프랑스나 독일처럼 수많은 중동사람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고, 런던의 많은 지역은 물론 영국의 버밍엄과 같은 도시는 중동 이민자가 인구 구성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이제 놀라울 일이 아니다. 한편 지금 내가 거니는 히스로 근처는 특히 노동자들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고. 이거랑은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학교 다니면서 좀 놀랐던 거는 유럽 사람들에게는 한국이나 일본, 중국은 물론 인도, 파키스탄 등 모두 아시아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아니 맞긴 맞는데, 지리적으로 맞는데… 늘 아시아 하면 한중일을 떠올리며 그렇게 알고 자란 나의 시각이 얼마나 좁고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 역시 전혀 아는 거 없이,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니 약간의 부끄러움과 내가 아는 게 아는 게 아니라는 경각심을 심어주는 자그마한 깨달음의 순간이기도 했다.
테스코에서 물과 약간의 주전부리를 사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근처 KFC에 갔다. 그곳엔 막 학교를 끝낸 듯한 학생들이 무리 지어 주문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 역시 모두 유색인종이었던 게 기억난다. 이렇게 내 첫날의 영국은 예상 밖 사람들의 모습으로 기억될 뻔했으나… 사실 진짜 주인공을 따로 있다. 첫날의 라스트를 장식한 KFC 트위스트랩!!!!!!!!!! 우리나라에선 토르티야에 가녀린 치킨텐더 하나, 양상추 몇 개 들어 있는 것만 보다가 여기 트위스트랩을 받아보니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놈 사진 왜 안 찍었어…. 퉁퉁한 치킨 텐터와 그 주위를 현란한 컬러의 온갖 야채들로 꽊꽉 채워낸 그 밀도란… 세상에 여태껏 이런 트위스트랩은 없었다!! 물론 가격도 한국보다 비싸긴 했는데, 거기 물가 차이도 있고, 알차디알찬 내용물을 보면 자연스레 돈을 더 주고서라도 사 먹고 싶어질 정도다.
한국 KFC는 반성하세요!!로 마무리된 미닝리스, 유즈리스 영국에서의 첫날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