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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Jul 01. 2022

<파리, 13구>(2022) 자크 오디아르

신체와 언어가 뒤틀린 공허한 도시, 파리 13구


<파리,13구>는 자크 오디아르의 필모 중 가장 공허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일지도 모르지만, <러스트 앤 본>의 스테파니와 알리는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안아줬지만, 극중 에밀리(루시 장)와 카미유(마키타 삼바), 노라(노에미 메를랑)는 신체적 접촉은 우선시되지만 감정 교류는 부재한 상태다. 


가장 파리답지만 그렇지 않은 도시인 파리 13구. 자크 오디아르의 인터뷰에 의하면, 박제된 도시를 프레임 안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전작인 <예언자>와 <디판> 역시 빼어나며 섬세한 연출력을 볼 수 있었지만, <파리,13구>는 특히나 그러하다. 셀린 시아마가 쓴 각본 특유의 집요하게 인물들을 따라가는 시선과 자크 오디아르의 감각적인 연출이 상충되면서 공허한 도시에 거대한 에너지가 활화산처럼 분출시킨다. 규칙 없이 명암이 드리워진 건물들의 그림자의 일렁임은 거대한 쓰나미처럼 극 중 캐릭터들을 집어삼킨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영화의 핵심 축이다. 영화의 오프닝, 도시의 반짝이는 불빛과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기 힘든 흑백 화면은 삭막한 사막을 닮았다. 끝없이 갈구해도 나타나지 않는 오아시스. 영화는 세 명의 인물, 에밀리와 카미유, 노라의 복잡한 관계에 집중한다. 수도 파리를 구성하는 20개의 행정구 중 하나인 13구는 가장 거대한 아시아 타운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다. 


에밀리는 이방인이다. 중국에서 파리 대학으로 유학을 와서 살고 있지만, 현실은 이상만큼 녹록지 않다. 졸업 이후의 삶은 콜센터 영업직. 가족들에게 의지하려 하지만 외면당하고, 감정의 깊은 웅덩이는 채워지지 않는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는 요양 시설에서 생활하고, 자신은 할머니의 집에 머무른다. 관성처럼 튀어나온 공허한 감각들은 여자 룸메이트를 구하려던 에밀 리가 이름으로 성별을 착각한 카미유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촉발되어 발산한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응시하며 서로를 탐닉하려는 시선은 파트너 이상의 관계를 넘어 치기 어린 질투와 소유욕으로 변모한다. 구속할 수도, 자유로워질 수도 없는 아이러니함은 서로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영화에서 분할 화면은 두 캐릭터의 연결 혹은 분절의 요소로 사용된다. 카미유가 에밀리에게 집을 나가겠다며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은 같은 화면에 있지만 프레임 중앙의 선을 중심으로 분리된다. 집을 공유하는 룸메이트라는 점에서 공간의 침입과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는 속성은 오히려 두 사람을 멀어지게 만드는 재미난 지점이다. 


카미유는 빈자리를 채울 누군가가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의지하지는 않지만 빈자리를 타인을 통해 채운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유품을 정리하던 그는 6개월가량 사용하던 휠체어를 판매하기로 결심한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가족 간의 대화는 단절되어 있고, 그는 생략된 소통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 자신의 상처에 집중하느라 아버지와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 또한 없다. 말을 더듬는 여동생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통해 활력을 되찾지만, 카미유는 그것을 같잖은 것으로 치부한다. 갈증은 더욱 심해진다. 노라는 자신의 상처를 공유할 대상을 탐색한다. 야동 사이트를 운영하는 앰버스위트와의 닮은 외모로 생겨난 사람들의 오해는 노라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법학대학을 다니던 학생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게 되었고, 카미유와 만나게 된다. 카미유와 연인 사이가 되지만, 이상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다 앰버스위트를 화상을 통해 만나게 된다. 오히려 노라에게 앰버스위트는 자신을 삶을 뒤바꿔놓은 사람이자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되며, 앰버스위트 또한 자신의 본명(루이즈)을 노라에게 알려준다. 이상한 사각관계는 꼬여버린 실타래처럼 뒤엉킨다. 


에밀리
카미유
노라

이들은 무엇을 갈구하는 걸까? 도시의 화려한 조명과 열기는 이들의 결핍을 채울 수 없는 것일까. 세 사람은 감정의 소통 이전에 육체의 교감으로 관계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도시를 가득 채우는 육체의 숨소리는 한낱 담배연기처럼 허공을 맴돌다 금세 흔적도 없이 소멸된다. 서로 다른 인종이 도시 파리는 마치 박제된 나비처럼 생기를 잃은 듯 보인다. 문득 박해영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김지원)과 구씨(손석구)가 떠오른다.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미정의 대사는 타인에게 온전한 형태의 마음을 전달받은 적이 없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구씨 또한 그런 상태임을 짐작하게 한다. 두 작품에서 표현된 우뚝 선 도시의 건물은 사방이 창문과 벽으로 가로막혀 에워싸고 있다. 그래서 에밀리와 카미유, 노라가 사는 집이 같은 집인가 하는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에밀리는 아무래도 미정과 가장 닮아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에서 <나의 해방일지>와의 유사함을 공유하는 것은 박해영 작가와 각본을 쓴 셀린 시아마가 중심축으로 풀어가는 도시와 인간의 변증법이 닮아있기 때문이랄까. 사실 정가영 감독의 <연애 빠진 로맨스>의 신체와 언어의 전복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잡지 칼럼니스트 박우리(손석구)가 데이팅 앱을 통해서 함자영(전종서)를 만나는 과정을 그리는 <연애 빠진 로맨스>는 신체의 우선적 소통에 대한 옳고 그름이 아닌 과연 진심이 전달되는 과정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한다는 점이 <파리,13구>의 중심축과 대등하다. 


다시 <파리,13구>로 돌아와 이야기를 해보자. 노라와 루이즈 그리고 에밀리와 카미유는 벽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달려간다. 네 명의 캐릭터가 만나는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탁 트인 공간이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지도 않으며, 타인의 눈을 직접 응시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노라와 루이즈는 공원에서 만나고, 에밀리와 카미유는 프레임 안에서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내부가 아닌 외부의 세계에서 만난다. 할머니 장례식장을 가는 에밀리의 집 인터폰이 울리고, 카미유의 목소리가 전달된다. “사랑해. 에밀리” 확신할 수 없는 듯 되묻고 또 되묻는 에밀리는 자신의 집을 뛰쳐나가고 영화는 카미유와 에밀리가 만나는 장면을 생략한다. 노라와 루이즈의 만남과 다르게 에밀리와 카미유의 만남을 생략한 이유는 카미유를 통해 ‘말’이 착지해 타인에게 경유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제 이들은 자신의 빈자리를 타인을 통해 채우는 것이 아닌 서로를 채우는 추앙을 시작하려 한다. 



* 이 글은 아트나인 아트나이너로 작성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iframe_url_utf8=%2FArticleRead.nhn%253Fclubid%3D25494727%2526articleid%3D9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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