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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냉이씀바귀 Apr 26. 2022

나의 아버지

1. 아버지와 리모컨

밤마다, 아버지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리모컨을 손에 꼭 쥐고 자다가 말다가 티브이를 보고 계신다. 잠이 오면 방으로 들어가 주무시지, 어린 나는 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모습이 이해도 안 되고 리모컨을 독점하는 것도 싫었던 게다. 아버지의 눈이 스르르 감기면, 나는 살살 다가가 아버지의 손에서 리모컨을 빼낸다. 그러나 리모컨에 나의 손이 닿는 순간 대부분 아버지는 눈을 번쩍 뜨고 만다. 근데 나도 나이 50이 넘어가니 아버지랑 똑같은 모습으로 누워 리모컨을 쥐고 자다가 말다가 한다. 이제 그만 자야지 하는 마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눕지만 잠은 달아나고 한참을 뒤척이곤 한다. 결국 방을 나와, 나는 새벽까지 리모컨을 들고 다시 자다가 말다가 그러면서 아버지를 생각한다.



2. 아버지의 등

아버지는 밤늦게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오신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안방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봉창을 열어본다. 엄마는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고 건넌방을 열어보면 아버지는 까만 피부에 하얀 반팔 난닝구를 입고 엎드린 자세로 주무시고 계신다. 나는 문을 닫고 나온다. 잠시 후 아침에 준비되면 엄마는 내게 아버지를 깨우는 심부름을 시킨다. 오 형제 중에 왜 내가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나는 건넌방으로 간다. 아버지는 곧바로 일어나지 않고, 늘 나에게 등을 밟으라고 하신다. 나는 아버지의 등을 한 발로, 가끔은 두 발을 살짝 올려 아버지가 숨이 막히지 않게 사뿐히 밟는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3. 아버지의 동전

아침을 먹고 한참이 지난다. 심심하고 따분한 시간이 되면, 나는 구판장에서 파는 오뎅을 떠올린다. 하지만 돈은 없었고, 아버지와 엄마는 아마 과수원으로 일을 나가신 듯하다. 다른 형제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무튼지 그때 난 혼자였다. 작은 방으로 가서 간밤에 대구를 다녀오신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를 뒤진다. 아버지는 항상 귀가하면 큰돈은 엄마에게 다 건네지만 잔돈은 늘 그냥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을 난 알고 있다. 기대를 안고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동전이 만져지지 않아 내 손이 잠시 허둥댄다. 그러나 반갑게도 주머니 한쪽 구석에 숨은 듯이 뭉쳐져 아주 무겁게 많이 들어 있는 동전이 만져진다. 나는 그중 하나를 꺼내 오뎅을 사 먹으러 뛰어간다. 그러나 오뎅은 어찌나 순식간에 없어지는지, 난 또 먹고 싶다. 다시 방으로 가서 동전을 하나 더 꺼내며 생각한다. '아, 이렇게 자꾸 꺼내면 들통이 날건대 어쩌지...' 그러나 걱정보다는 내 욕망에 충실하기로 한다. 그리고도 그 짓을 몇 번이나 더 하고야 만다. 다행히 한 번도 들통은 나지 않고 잘 지나간다. 하지만 언제 알았는지 이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사실은 형제들 모두가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4. 아버지와 알탕

엄마, 아버지가 사는 집에는 상주하는 간병사가 있었다. 처음엔 엄마가 아파서였다. 그러나 얼마 후 아버지의 간이 급격히 나빠졌고 6개월의 선고를 받았다. 그렇게 상주하던 간병사는 엄마의 간병사가 아니라 아버지의 간병사가 되었다. 난 가끔 기차를 타고 엄마, 아버지를 보러 갔다. 

6개월이 가까워지던 5월 어느 날, 그날은 날도 참 좋았다. 5월이었으니까. 5월스러운 날씨였다. 심심하지 않게 언니와 나는 같이 기차를 타고 부모님을 보러 갔다. 그 무렵 아버지는 몸이 점점 부어오르고 있었고 거동이 좀 불편해졌다. 그래도 우리를 보면 늘 그 커다란 눈에 미소를 머금고 티브이 앞에 앉아 있었다.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었다. 간병사의 적극적인 권유로 우리 다섯은 택시를 타고 읍내로 갔다. 아버지가 자주 가던 식당이었다. 아버지는 알탕을 시켰고 우리는 판 모밀을 시킨 듯하다. 언니는 소스에서 한약 냄새가 난다고 별로라는 평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식사를 빨리 하지 못했지만 뚝배기에 든 알탕을 참으로 맛있게 아주 천천히 알뜰하게 국물까지 드셨다. 아버지는 늘 맛있게 드시지만 그날은 엄청 달게 식사를 하셨다. 우리는 그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스킨을 사고 싶다고 하셨다. 차를 타고 가기에는 가까운 거리여서 우리는 걸어가는 중이었는데, 아버지는 숨이 많이 찼던지 잠깐 어느 가게 앞 턱에 앉았다. 잠시 후 아버지는 화잠품 가게에서 가장 좋은 스킨과 로션을 달라고 했다. 그날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식사, 쇼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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