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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필통 Dec 29. 2022

당신의 클리닝타임은 어떠셨나요?

가끔은 기대어 쉬고 가도 괜찮아

클리닝타임. 야구에서, 5회 말 경기가 끝난 후 운동장의 상태와 시설을 점검하기 위한 시간을 말합니다.

야구는 1이닝부터 9이닝까지 이어지는 경기입니다. 한 번의 이닝 즉, 하나의 라운드에 공격 한 번과 수비 한 번을 번갈아 가면서 하게 되죠. 그렇게 5회까지 5번의 공격과 5번의 수비를 하면 ‘클리닝타임’이라는 짧은 휴식 시간을 갖습니다. 딱! 경기의 중간 이거든요.


우리가 사는 방식이 다들 다르듯 야구장 안의 사람들도 클리닝타임을 보내는 방법이 각자 다릅니다.

선수들은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거나 남은 경기에 힘을 낼 수 있도록 바나나, 초콜릿 등으로 소진했던 에너지를 채우기도 하고, 한자리에 모여 상대팀의 정보를 공유하고 남은 경기를 어떻게 플레이하는 것이 좋을지 토론을 하기도 합니다.


코칭스텝은 1회부터 5회까지 잘된 점과 부족했던 점을 빠르게 파악합니다. 작전을 수정하기도 하고 상대에 맞추어 새로운 전략을 세우고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줍니다. 혹시나 선수들이 방심하거나 어이없는 실수를 많이 했다면 당근빠따! 불호령을 피할 순 없어요.


경기를 응원하러 오신 팬분들은 또 얼마나 바쁘게요? 응원하느라 못 갔던 화장실 가랴, 떨어진 맥주 다시 채우러 가랴, 치킨은 왜 이렇게 금세 먹었는지 걸신이 들렸나 안주도 보충해야 되고 너무나도 바쁜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지난날, 어느샌가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한 해를 야구 경기로 따지면 여름방학 무렵이 딱 클리닝타임이구나. 1회부터 5회까지 난 어떤 경기를 해왔을까? 9회가 끝날 때까지 경기를 잘 마무리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클리닝타임이 남은 한 해를 보내기에 정말 중요한 시기겠구나' 라구요.




2022년, 저의 전반기인 1회부터 5회까지를 살펴보면 굉장히 좋은 출발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생소했던 글쓰기 모임에 초대받아 부족한 글을 써가며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됐고, 새벽 운동에 재미가 붙어 꾸준히 하다 보니 운동도 늘고 체지방도 많이 감량되었습니다. 그토록 힘들었던 독서도 어느 정도 목표를 이뤘고, 줌이라는 공간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다 보니 어느새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감도 꽤나 붙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출발을 했고 순탄하게 잘 흘러가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여름방학 전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뜻밖의 슬럼프에 잠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업무로 생긴 마찰로 서로의 인격을 공격하고 후벼 파는 전쟁 같은 하루들이 반복되었습니다. 한번 시작한 전쟁은 쉽게 그치지 않고 무던히 서로를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상처가 난지도 모른 채 다음 공격만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자존심이 강한지라 딱히 표현도 못 하고 괜찮은 척 웃어 보였지만 실은 그렇지 못하더라고요. 사람 마음이란 게 제 뜻대로 움직여준다면 이 세상 불행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겠죠? 바로 이 간사한 마음에서부터 오류가 있었습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나의 생각을 알아줄 거란 무지함, 내 생각대로 모든 일이 풀릴거라는 자만심,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는 꺾이지 않는 고집 같은 것들 말이죠. 지나고 나선 왜 그런 행동과 말들을 했는지 창피하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한번 붙은 자존심 싸움의 불때문에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만심이고, 어떻게 보면 안일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 생각해 보니 경험 부족이란 말도 쓸 수 있겠네요. 관계에 대한 경험 부족. 이 글을 쓰면서 그때가 생각나 돌아가고 싶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경기는 되돌릴 수 없는걸. 실수한 부분은 실수한 대로 그냥 그대로 흘려보내려구요. 저에겐 남은 경기가 있잖아요.


올해 클리닝타임 동안 저는 먼 타지인 부산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년부터 계획만 했던 혼자서 떠나는 여행을 출장 핑계 삼아 드디어 성공했고 이리저리 청승맞게 밤바다도 보러 가보고 유명한 책방 골목에 들러 이 책, 저 책 뒤져가며 스스로에게 책을 선물했습니다. 유튜버처럼 맛집을 찾아가 창피함을 무릅쓰고 혼자 배 터지게 먹는 먹방도 찍었고 지나가는 이에게 뻔뻔히 사진도 몇 장 부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경기는 내가 아무리 빨리 끝내고 싶어도 결국 9회가 지나서야 끝난다는 걸 더욱 깊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잘못됐던 부분들을 다시 돌릴 기회가 충분히 남아있다는 사실도 말이죠. 그러니 조금은 지고 있어도, 조금은 경기가 풀리지 않았어도 9회가 끝날 때까지 남은 기회가 아직 많이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저에겐 큰 위안과 희망이 되더라구요.


매년 찾아오는 ‘클리닝타임’이지만 올해는 더욱 의미가 깊고 느낀 게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했고 서투를 테지만 아직 남은 6회, 7회, 8회 그리고 9회까지 또는 연장전까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버텨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클리닝타임은 어떠셨나요?


너무 급하게 경기를 끝내려고 하지 말고 땀에 젖은 옷도 갈아입고, 어떻게 지냈는지 자신에게 안부도 물어보고, 경기장도 새롭게 단장해 보세요. 비워진 맥주잔을 가득히 채우고 친구들 만나 목청껏 소리 질러 노래도 불러보고 늘어지게 낮잠도 한숨 푹 주무세요.


누구보다 빛날 승리를 위해 우리 잠시 여유를 갖고 충분히 휴식을 즐겨봐요. 심신이 안정되어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거 아시죠? 충분히 쉬는 것도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참 중요한 시기이고 참 중요한 훈련이랍니다.


저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자 모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이제 끝맺음하려 합니다.

우리 모두 남은 경기 힘을 내도록 진심으로 응원하곘습니다 :)

-여러분의 남은 경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임필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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