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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Nov 25. 2023

시오니즘, 그들의 염원을 응집시키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3)

 

 시오니즘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옛땅 가나안, 현 팔레스타인 지역에 그들의 조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이스라엘 회복운동으로, 19C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유대인 사회에서 새로운 근대적 의미를 갖게 된 이념이다. 


뒷날, 야훼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우뚝 솟아 언덕들을 굽어보게 되는 날, 높이 치솟아 멧부리들을 눈 아래 두는 날이 오면, 만민이 물밀듯 밀려오리라.
모든 민족이 몰려와 말하리라. "어서, 야훼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을 뽑으신 하느님의 성전으로! 거기서 어떤 길을 가리켜주시든 우리 모두 그 길을 따르자!" 그렇다. 야훼의 가르침은 시온에서 나온다. 야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들려온다.
         
 <미가 4장 1장 8절>


 여기서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한 언덕으로 일컬어지는데 성경에 쓰인 말씀처럼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들만의 조국을 세우고자 하는 바람이 시대의 흐름을 타며 유대인들의 마음에 불붙기 시작했다.


 AD 70년, 로마의 압제로 200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에 흩어져 온갖 박해와 고난을 겪어 오던 유대인들에게 조국 건국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심은 사람은 유대계 오스트리아 신문기자였던 테오도로 헤르츨이라는 인물이었다.

 특파원 자격으로 파리에 와 있던 그에게 시오니즘을 열렬히 신봉하게 만든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 온 프랑스 여론을 들끓게 던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1894년 프랑스의 포병대위 드레퓌스는 독일 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비공개 군법회의에서 종신형 판결을 받는다.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으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이 혐의를 짙게 하였던 것이다. 이후 진범이 나타났으나 군수뇌부는 진상발표를 거부하고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

 

 은근슬쩍 마무리될 수도 있었던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프랑스의 작가 에밀 졸라가 신문에 기고한 한 편의 논설이었다.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이 은 군수뇌부의 의혹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으로 쓰였는데, 프랑스의 여론을 ‘정의·진실·인권옹호’를 부르짖는 드레퓌스파 또는 재심파(再審派)와 ‘군의 명예와 국가 질서’를 내세우는 반(反)드레퓌스파 또는 반재심파로 갈라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드레퓌스는 무죄를 선고받지만 이를 지켜본 헤르츨은 유럽 전역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반유대 정서에  충격을 받고 유대인을 위한 나라를 반드시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시오니즘의 선봉에 서게 된다.




 1896년, 헤르츨은  《유대 국가: 유대인 문제의 현대적 해결 시도(Der Judenstaat. Versuch einer modernen Lösung der Judenfrage)》라는 책을 펴내고, 유럽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피력한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시온주의자 세계대회는 그 노력의 결과였으며 , 이 대회에서 "팔레스타인에 국제법으로 보장되는 유대인의 조국을 건설한다"라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는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수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되는 분수령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의 소망대로 19C  팔레스타인 땅에 그들의 국가인 이스라엘을 건국헤게 된 것이, 과연 각성한 한 명의 선지자와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로 여기며 열렬히 그를 따랐던  사람들의 순수하고  애절한 바람이 마침내  신을 감동시켜  얻어낸  숭고한 결과일까?


 이젠 더 이상  승자의 입장에서 쓰인 권선징악식 갈라 치기로 동화 속에서나 나올 뻔한 순진한  이야기를 믿을 나이는 지나버린 것 같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조국이 건설되기까지, 또 그 이후로 전 세계를 쥐락펴락할 주도권을 놓고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그들만의 탐욕과 중상모략으로 숱한 물밑 작업을 펼쳐왔는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그 민낯을 들여다보아야 할 때이다.

 팔레스타인  지역 분쟁의 역사는 이미 어그러질 대로 어그러진 세계 열강의 추악한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
팔레스타인 비극의 역사, 그 뒤에 숨겨진 강대국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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