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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Feb 20. 2024

마침내 이스라엘을 건국하다.

아랍인들의 피눈물 위에 세워진 국가, 이스라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맥마흔 선언(영국이 전후 중동에 아랍왕국을 세우도록 허락한다는 내용의 서신)고무된 아랍인의 도움으로 중동에서 오스만 세력을 몰아낸 영국은 1922년 자신들의 속셈대로 팔레스타인을 영국의 위임통치령으로 만들었다.

 

한편, 19세기말, 시오니즘에 힘입어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을 조금씩 사들이며 그곳에 정착촌을 만들어가던 유대인들은 1차 대전 후 벨푸어선언(영국정부가 전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정부 건설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빌미 삼아 영국의 묵인아래 속속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점점 늘어나던  유대인 인구는,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총리에 오르고 나치정권의 유대인 박해기세를 떨치면서 그 유입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당시 나치의 박해를 피해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던 유대인들을 기꺼이 받아주는 유럽국가는 없었고 미국 또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이들을 선별하여 받는 입장이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동정론이 대두되는 한편, 몰려드는 유대인 문제로 골치가 아파진  서양 강대국들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은 그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으로 부상했을지도 모른다.


 1930년대 중반, 유대인의 이주와 토지매입 등으로  유대인과의 마찰이 잦아지면서 위기감을 느낀 아랍인들은 총파업과 무장투쟁 등으로 맞서지만 이미 이스라엘과 한 편인 영국은 합심하여 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의 불만이 점점  거세지고 곳곳에서 폭력사태가 끊이질 않자, 골치가 아파진 영국은 지키지도 못할  예의 그 공수표를  남발한다. 

 

1939년 발표한 『팔레스타인 백서』가 그것이다. 

 “유대인 이민자 수를 앞으로 5년간 해마다 1만 5,000명으로 제한하고, 5년 후에는 금지시킨다”


그것은 지키지도 못할 비현실적인 내용이었고, 결과적으로 아랍인들은 다시 한번 영국에게 속은 셈이 되었다.


 영국의 이와 같은 조치를 못마땅하게 여긴 건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8년, 유대인 극우 테러단체는 영국의 행정중심지가 있던 킹 데이비드 호텔을 폭파함으로써 영국이 더 이상 팔레스타인 문제에 개입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참혹한 테러(영국인 포함 91명이 죽고, 45명이 부상)를 감행한 이유는, 당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미국을 염두에 두고, 이빨 빠진 호랑이로 추락한 영국의 위상을 이미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의 국제 질서 변화에 대한 분석은 맞아떨어졌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심한 피로감을 느낀 영국은 결국 이 문제를 UN에 떠넘기며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아예 손을 떼버렸다.


1947년, 유엔은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영국의 위임통치를 끝내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로 나눠야 한다"


 결국 1947년 11월, 유엔 총회에서는 '유엔 총회 결의안 181호'에 따라 팔레스타인을 분할하기로 결정하고 영토의 56%를 유대국가로, 44%를 아랍 국가로 나누되,  예루살렘은 유엔의 신탁통치 아래 양쪽에 모두 개방된 국제도시로 둔다는 것이 분할 안의 뼈대였다.

당시 인구 비율이 아랍 7, 유대인 3이었던 점을 떠올리면 이스라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도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논의도 의미가 없었다. 이스라엘 무장 조직은 그 무렵 이미 팔레스타인 땅의 4분의 3을 점령한 상태였다.

 

1948년 5월 14일 기습적으로 건국을 선포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어쩌면 오랜 기간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쫓겨나야만 했던 87만 아랍인들의 피눈물 위에 세워진 '피의 국가'였다.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선포한 다음 날, 이라크,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등을 포함한 아랍 연합군이 일제히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제1차 중동전쟁(이스라엘 독립전쟁)발발했, 하지만 결국 이스라엘이 승리함으로써 그들은 유엔에서 결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땅(팔레스타인 지역의 약 77%)차지했고 10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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