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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an 14. 2024

새벽배송에서 저녁배송까지...

끝없는 배송전쟁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어제 오전에 문자 하나가 왔다.

신처는 최근 들어 애용하기 시작한 쿠팡이었다.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그곳 밥을 영 못 드신다기에 주기적으로 식사 대용품들을 배송시키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주문한 갈비탕 세트가 업체가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배송되었나 보다.


 사실 요즘 온라인 마켓에서 주문한 물품들이 워낙 빨리 배송되다 보니 급하게 써야 할 일이 아니면 날짜나 시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업체 입장에선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만들어진 내부 규정이 있었는지 직접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자체 캐시로 보상했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 쿠팡에서 일회용 밥이 싸게 나왔길래 서울에서 자취하는 아들에게 두어 상자 부쳐준 일이 생각났다. 다음날 물건이 일부 품절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문 앞에 한 상자만 덩그러니 배달된 사진이 전송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예의 사과 메시지와 함께 보상 캐시도 전달받았는데 물건도 싸게 구매한 데다 예상치 못한 수익까지 발생하기분이 좋아진 나는, 고객 서비스가 너무 좋다며 큰 횡재를 한 듯 흡족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또 다른 경험도 있다. 이전에 G마켓을 이용할 땐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지인의 추천으로 쿠팡을 이용하면서 화면을 통해 빠르게 배송철차를 터치하던 나의 손가락을 멈칫하게 만드는 구간을 만나게 된 것이다.

 바로 '새벽배송'을 선택하는 구간이 그것이다.

굳이 새벽에...? 그 정도로 급한 건 아닌데...

사실 내가 주문하는 물품들은 촌각을 다툴 만큼 그렇게 빨리 배송되어야 할 것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유난 떨 것 없이 새벽배송이 아닌 다른 시간을 선택하고 주문절차를 완료하면 그만인데, 난 그 구간을 마주할 때면 자꾸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위 쿠팡맨들의 사망기사들이  떠올랐다.

 내가 새벽배송을 선택하지 는다고 해서 그들 중 누군가가 새벽일을 나가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 시간에 집에서

편안하게 잠을 청하는 것도 아닌데...

 아침 일찍 깨거나 졸음을 참아가며 남들 다 자는 밤에 늦게까지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 나에게도 피하고 싶은 고역임을 알기에, 매일 새벽, 마땅히 누려야 하는 잠이라는 인간의 기본권마저 반납하고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 배송맨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새벽배송'이란 말이 유난히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상 얼마나 빨라야 할까? 

 물론 시각을 다투는 일에 쓰일 물품이나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제품은 배송이 빠를수록 좋은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새벽배송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탓할 일은  더욱 아니다. 제 각각의 사정들이 있고, 갈수록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한 끼라도 제대로 차려 먹으려는 사람들이 이왕이면 업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활용하겠다는데 그 누가, 무슨 자격으로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타업체와의 경쟁에살아남기 위해 그들만의 차별화로 고심한 끝에, 세상에 없던 서비스로 속도전을 선택한 기업은 어떤가?

 오래전 '새벽배송'이란 새로운 개념의 배달 서비스로  스타트업의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는 마켓컬리 김슬기 대표와의 인터뷰를 내보낸 방송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나 자신도 감탄하며 그녀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받고 말겠다는 듯,  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못했었다.

 하지만 , 온오프라인 마켓 업체들이 너나없이 로켓배송이니 총알 배송을 내세우며 배송전쟁에 뛰어들면서 시간을 분을 넘어 초까지 쪼개가며 속도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금의 현실이다.

  이에 죽어나는 것은 배달하는 만큼 수익을 받아간다는, 얼핏 들으면 합리적인 조건 같은 이 무한 전쟁에 몸을 던진 배송맨들이다.

 


 

 소비자는 또 어떤가?

은혜로운 배송전쟁덕에  갖고 싶은 것을 더 빨리 손에 쥘 수 있는 감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어제까지 2~3일은 충분히 기다렸던 사람들이 이젠 더 이상 1분, 1초의 지연을 참아낼 수가 없다.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 중에 하나인 인내가 점점  소멸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건 비단 나뿐일까?


 급기야 새벽배송에 이은, 더 강도의 서비스를 요구하고 나설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결국 기업들은 근시안적인 상술로 그 어떠한 지연도 참아내지 못하도록 소비자를 훈련시킨 꼴이 되어, 각자가 낸 상처로부터 발생한 출혈을 또 다른 방식의 생채기로 막아야 하는 결과로 귀결된 셈이다.


 두서없는 글이라도 쓰려고 인터넷으로 참고 자료를 검색하던 나는 관련 기사의 제목을  접하고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점심에 주문하면 저녁 도착”... 마켓컬리, 새벽배송 넘어 ‘저녁배송' 도전장

 괴연 또 다른 혁신일까, 아니면, 누군가는 죽어야 끝이 나는 치킨 게임일까?

 무한 서비스라는 미명하에 소비자들의 인내심을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까지 치닫게 만들 그들의 또 다른 전쟁 서막을 목격한 것 같아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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