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기쁨이었을 테지만 그것도 잠시, 누구나 그렇듯 녀석 또한 내심 두둑한 월급을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몇 달이 흐른 지금, 월급은 그저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세간에 회자되는 말처럼, 정작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아들이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이때다 싶어 그동안 미뤄두었던 숙제를 꺼내듯 조심스럽게 '금융' 또는 '경제'를 대화의 화두로 올리기 시작했다.
주중엔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는 아들이지만, 사실 처음에는 타인과 함께 방을 써야 하는 기숙사 생활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는 기숙사에 대한 흉흉한 소문에 더욱 손사래를 쳤다.
군대복무 후 6개월의 단기 하사 시절부터 이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혼자 자취를해온 아들은퇴근해도 회사의 연장일 것 같은 기숙사 생활이 영 못마땅했을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한 달을 꾸려가는데 5만 원이면 충분한 회사기숙사에 비해, 자취를 하게 될경우발생하는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몇 년 동안 두 아들의 자취 생활비를 감당해 온 나의 미천한 경험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우선 개인적으로 방을 구할 경우, 비싼 보증금과 월세는 기본이며 아무리 없이 지낸다 해도 기본적으로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세간살이들과, 관리비를 포함한 도시가스, 전기, 인터넷등 각종 공과금들을오롯이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뿐만이아니다. 회사 근처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하루 세끼를 다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자취를 할 경우, 출퇴근 시간도 만만찮을뿐더러 한 두 끼라도 해 먹거나 사 먹으려면 높아진 물가 탓에 그 비용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기숙사를 포기하는 순간, 최소한 100만 원이상의 가욋돈이 나간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올 3월, 일주일간의 회사연수를 앞두고 아들이 집에 들렀다.뒤이어 그동안 기거했던 자취방을 정리한 짐들이 하나 둘 택배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구색만 갖춘 짐이라도 거의 2~3년의 살림을 함께 한 흔적들이었다.앞서 남편이 차에 빼곡히 채워 한 번 실어 나른뒤였지만 나머지 짐들이 족히 우체국 대형 택배 박스 5~6의 분량은 되었다.
우리는 아들이 집에 머무는 동안 녀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은근 고집이 있는 편이고 이제 어엿한 성인이고 보니 다그치지는 못하고 모든 가능성들을 열어두라고 조언하듯 말했다.
당장 자취방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연수 후 바로 발령을 받으면 회사 분위기도 익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는 지도 볼 겸, 일단 기숙사 생활을 한 번 해보고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넌지시 의견을 제시했다.
처음엔 자기가 알아서 하겠노라고 손사래를 치던 녀석이 자신도 이것저것 생각을 해보았지, 아니면 더 이상의 논쟁은 피하고 싶어서인지 순순히 알았다고 대답했다. 자신도 아직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일단 연수부터 받고 자세히 알아본 후 결정하겠노라고 한 발짝 물러서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연수를 무사히 마치고 아들은 지금 회사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비록 허름하고 침대 두 개만으로도 꽉 차는 좁은 공간이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하며 지내는 것 같다.
다행히 자기 계발과 운동으로 부지런한 룸메이트가 자주, 그리고 일찍 방을 비워주는 덕분에 출근 준비도 혼자 여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아들이 기숙사 생활을 택한 중요한 이유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회사 식당 밥이 너무 맛있다는 거였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을 포함해 근 10년이라는 바깥밥 생활에 물렸는지, 자신의 품을 빌리지 않고, 무얼 먹을까 고민하지 않으면서 그래도 하루 세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그 사실에 마음이 움직였던 모양이다.
언젠가 이 또한 물리겠지만 우선 우린 아들의 미래 재정 상태의 첫 번째 빨간불은 피한 것 같아 일단 한숨을 놓았다.
하지만 웬걸....
곧이어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경제관념에 무감각한 아들마저 자신의 재정상태에 한숨짓게 만든 이번 문제의 해결방안을 과연 우린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