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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Sep 01. 2024

가족, 1년만에 뭉치다.

나의 여름 이야기(1)

 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이 무더위 마저 무색하게, 난 내가 벌여놓은 일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보내고 있었다.




 여름휴가로 코타키나발루 여행을 선택한 건 정말이지 즉흥적이었다.

" 우리 이번 휴가 때 해외여행 갈까?"

6월에 잠깐 집에 들른 큰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휴가 일정이 정해졌다는 녀석의 말에  순간 어디에 숨겨놓았었는지 마음의 한 조각이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작년에 베트남 여행 갔을 때 말이야, 1년에 한 번 해외에서 보자고 했던 말 기억나?"

 문득 그때의 일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한 올 한 올 생생하게 피어올랐다. 추억이란 씁쓸했던 기억들 조차 함께한 사람들 사이에선 또 다른 흥미로운 얘깃거리로 회자되는 법, 어느새 낯선 여행지에서의 사소한 실수마저 깔깔거리며 나눌 수 있는 밥상 위의 맛깔스러운 찬이 되곤 했다.


 

 이제 성인이 되어  뿔뿔이 흩어져 사는 두 아들을 한 자리에서 마주한다는 것이 1년에 한 번도 하기 힘든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다. 대학생인 둘째를 차치하고라도 이제 큰아들까지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 품을 수 없는 크나큰 욕심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충동적으로 뱉은 말이었지만  매번 다양한 형태로 발현될 뿐, 그 말 곳곳엔  간절함을 담은 내 마음의 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어 무의식 어느 구석에서 곰삭고 있었음이 분명다. 그리고 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한 말들은 중력이란 무게가 덧씌워탓일까? 그냥 없던 일로 치부하기엔 그 묵직한 존재감이 어떤 식으로든 사람의 신뢰에  흠집을 낸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상대방의 동의허락되면 어떻게든 실행에 옮기려고 애쓰는 것이 어느새 자영업자로써의 내 습성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이 진행되기 위해선 누군가가 나서야 했다. 무덤덤한 남자 셋을 일으켜 세워 한 발자국이라는 떼게 하려면, 소위 총대를 매야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 임무는 늘 오지라퍼인 내 담당이었다.



 

 한 달 전 스치듯 주고받은 대화였기에 다른 가족들은 염두에 두고 있않았겠지만 난 그때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 부부가 운영하는 학원  방학을 전적으로 아들의 휴가 일정에 맞춰야 했다. 이전 같았으면 씨도 안 먹힐 일이었다. 감히 생업의 일정을 개인사에 맞추다니... 하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올해 우리 네 가족이 완전체로 모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 우리 일정을 조금만 조정하면 아예 안 되는 일도 아니었기에 큰맘 먹고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다음은 경기도에 있는 작은 아들을 불러들이는 일이었다. 올해 입학한 학교 옆으로 자취방을 구해 떠난  2월이고 보면 거의 6개월 만에  보는 셈이다.

 둘째에게 방학 계획을 물어보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우리가 정한 휴가기간 일주일 전에는 내려오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가족의 모든 일정을 확보한 후, 난  방송과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7월 말은 극성수기라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여행 상품이 있다 해도 우리의 일정에 들어맞기가 쉽지 않고,  맞는 상품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홈쇼핑에서 방송하는 상품들은 꽤 있었지만 역시나 그 기간엔 가격이 최고치였다. 강제 쇼핑을 끼고 있어서 그렇지 그나마  인터넷에 올라온 상품이 나은 것 같았다.

 

 사실  당시 우리에게 여행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일 년에 겨우 한 번 모이는데 이왕이면 그 기간을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고  늦게나마 가족만의 추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사실 집에서 함께 보낼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생활이란 게 뻔했다. 저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하루에 밥 한 끼 겨우 함께 할까 말까,  그러고 나선 휴대폰을 들고 각자의 공간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하루하루가 눈에 선한데 어렵게 얻은 귀한 시간을 그렇게 흐지부지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돈을 주고서라도 낯선 공간에서의 소중한 추억과 시간을 사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장소로 굳이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를 고집한 건 아니었다. 비록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재작년 우리 부부가 1년을 쉴 때 한 달 살아보기로 계획했던 곳이 말레시아였고,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섬들에 대한 막연한 로망과 그 이름에서 풍기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의 손가락을 저절로  움직이게 했을 뿐이다.

그리고 다행히 그 날짜에 , 성수기치곤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코타키나발루 여행 패키지를 찾을 수 있었는데,  순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행운이었을 뿐이다.


코타키나발루!!

그렇게 올해 우리 가족이 찐한 추억을 쌓을 곳으로 그곳을 선택하게 되었다.

여행이 끝나면 뒷감당을 하느라 어느 정도의 후유증은 겠지만 우린 이렇게 함께 보낸 일주일로 가족임을 느끼며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1년을 버티며 살아갈 것이다.



 

 음식이 맞지 않아 힘들긴 했지만 함께해서 즐거웠던 여행을 마무리할 때, 우린 우스갯소리로 이젠 동남아 말고 다른 곳으로 가볼까 하며 서로 웃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들이지만 그로 인해  내 마음속엔  또 하나의 작은 꿈이 자리 잡게 되었다.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몸도 열심히 단련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할지 모른다. 결코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뎌야 할 1년짜리 꿈을 선물 받고,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자식들의 여건허용되 한, 우리 몸이 허락할 때까지

나의 꿈 아니, 우리들의 꿈이 계속되길 또 한 번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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