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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Apr 11. 2024

3월의 끝자락, 화분에 물을 주며(2)

아들의 취업에 즈음해서...

 밥벌이랍시고 늦은 나이에 벌인 생업에 고군분투하면서 부모노릇에 자식노릇까지 하느라 바빴던 나날... 

 한숨 돌리고 나니 어느새 축 처진 몸뚱이로 3월의 마지막 주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즈음에 큰아들의 졸업과 작은 아들의 입학 있었다.

 겨우  놈을 끝내나 싶었는데 어느새 그 틈을 비집고 작은놈이 또 다른 시작의 포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그것도 아무 연고 없는 경기도에서...

 큰아들의 졸업식 참석에 이어 둘째의 자취방을 구하고 정리해 주느라 우리 부부는 주말을 틈타 한 동안 뜸했던 아래, 윗지방 나들이를 번갈아 감행했고, 해가 바뀔수록 저하되는 체력으로 난 또 한바탕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리고, 몸이 낫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이번에는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가  득달같이 전화를 해댔다. 기운도 입맛도 없다며  탕수육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시더니 겨우 외출 날짜를 잡고 나니 장어로 메뉴를 바꾸는 변덕을 부리셨다.


 이리저리, 그저 알음알음 배운 대로 부모노릇, 자식노릇이랍시고 내는 내고 지만 세월이 지나도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한 느낌은 여전했.



 

 토요일 오후,  아직 몸살기는 가시지 않았지만 완연한 봄기운에 이끌려 오랫동안 방치했던 화분들에 물을 주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빴던 사이, 요놈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직 생명이 붙어있는 놈, 아예 손을 쓸 수 없는 놈, 어쩌면 다시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은 놈, 그리사이로 파릇파릇 생기가 넘치는 놈 하나가 새로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독 나의 손길을 머물게 하는 요 녀석은 따끈따끈한 신상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큰아들과 관계된 뜻깊은 손님이었다.




 작년 7월, 대기업에 우연히 넣은 서류가 통과되는 바람에 예상치도 못한 취업 면접을 보러 서울에 다녀온 아들은 아무 준비도 없이 치른 까다로운 면접에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

 최종 탈락 후, 뜻한 바가 있었는지 한 동안 우리에게도 쉬쉬하며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을 목표로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한 모양이다. 

 까다로운 서류준비부터  몇 번에 걸친 온라인과 AI 면접까지 거친 후 마지막 본사 면접을 앞두고서야  녀석은 우리에게 그동안에 고생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첫째이기도 거니와 고등학교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서 유독 독립심이 강했던 녀석은 무엇이든 혼자 결정했고 큰 무리가 없는 한 우린 믿고 지지하는 편이었다.


 졸업 후 그저 지역 이점과 전공을 살려 지방의 작은 공기업에라도 취직하면 감사한 일이다 싶었는데 녀석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이번에 안되더라도 1년 정도는 더 도전해보고 싶다며 녀석이 조심스럽게 내뱉은 목표가 꽤나 높아서 우린 내심 걱정을 했지만, 딱히 뭐라 내색은 할 수 없었다.


 한동안 서로 그 화제는 에둘러 피하며 벙어리 냉가슴 앓듯 설날을 보내고 난 어느 날, 전화기 너머 녀석의 흥분된 목소리를 통해 뜻밖의 큰 선물 같은 합격의 감격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자녀분의 입사를 축하드리며
...
자녀분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헌신과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부모님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생면부지의 회사에서 우리의 노고를 치하하는 감사의 말이 담긴 꽃다발을 받고, 꿈을 꾸는 듯 비현실적인 기분에 취해있을 즈음, 이번엔 팀장 편에서 보냈다며 연이어 도착한 녀석이 바로 나의 눈길을 연신 붙잡고 놓지 않는 요 신상 화분이다.


 아들이 입사한 지 한 달쯤 지난 지금, 처음의 그 벅차오르는 감격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에 감사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화분에 물을 주며 어쩌면 지금쯤 현실의 벽을 넘고 있을 아들을 생각했다.

 

녀석이 무슨 큰 포부나 꿈이 있어서 그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란 걸 안다. 절약이 미덕이었던 우리 세대와 달리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는 세대이기에 쪼들리고 궁상맞게 살기는 무엇보다  싫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취업 전까지 허울 좋은 대학생 딱지를

붙이긴 했지만 극도로 첨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모에게 용돈을 타쓰면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반백수 처지인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수없이 했으리라.


 가끔씩 돈 없이 한평생 아등바등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던 녀석... 초라한 용돈을 받으며 알바를 하며 그 궁색한 여건 속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고가의 물건은 하나씩 사곤 했던 아들이었다.


 마치 아들의 분신인양 화분에 정성 들여 물을 주며 생각했다.


 아들아,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감격과 환희는 점차 희미해지고  곧 냉혹한 현실을 맞이하게 될지도 몰라. 남보다 많은 급여가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회사는 그 이상의 것을 너에게 요구할 것임을 너도 곧 알아차리리라 생각한단다.

 어쩌면 너의 귀한 시간과 자유를 담보로 주어지는  혜택이니 만큼 결코 헛되이 낭비하지는 말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감사한 마음만은 늘 간직하렴.

열심히 한다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은 아니니 너의 노력에 못지않게 억세게 좋은 운에 늘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너의 생활을 이끌어 가길 바래.


누군가 말하더라.

직장이든 가정이오래 유지하려면 올인하면 안 된다고.

자신을 위한 10%의 여유는 남겨놓으라고.

회사생활 외에 네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서 힘들 때 숨 쉴 구멍 하나 정도는 준비했으면 좋겠구나.


 엄마, 아빠가 윗대에서 보고 배운 것처럼 무조건 안 쓰고 절약만 하는 생활을 결코 권하고 싶지는 않아.

 한 번뿐인 인생, 열심히 일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것도 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무엇보다 바란단다.

 하지만 가끔씩 미래를 생각하며 가치 있는 삶에 투자하는 현명함도 잊지 았으면 해.

 아마, 우리 아들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슬기롭게 잘 헤쳐나가리라 생각해.




 한 번씩 집에 들를 때면 어느새 직장인의 애환이 스며든 아들의 고단한 어깨를 보며 너무 이른 나이라 안쓰럽기도

다.

 하지만  우리 또한 그러했듯 그렇게 또 한 단계를 넘으며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고 있는 녀석을 보며  부모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늘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묵묵한 지지와 응원을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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