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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Oct 02. 2024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1)

일, 사랑, 놀이 그리고 연대하라...

 한 차례의 폭풍이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일상의 번잡함이 잦아들 왠지 모를 공허함 그 빈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3박 5일의 가족여행과 갑작스럽게 닥친 이사로 두어 달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마냥 훌쩍 지나갔고, 그 여파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즈음 학원 일도 부침이 많았다.

 이래저래 영혼이 탈탈 털린 자리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허무함이란 녀석, 갱년기가 데리고 온 불청객이려니 했더니 그 이유만으로는 뭔가 2% 부족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손절했던 독서로 인해 생긴 금단증상이라는 걸 깨달은 건, 아래로 가라앉기만 하던 기운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수면을 향해 발돋움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사 오면서  많은 짐을 버렸다.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름 살아남은 소량의 책들 중에서  다시금 허한 마음을 파고드는 제목의  한 권을 뽑아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힘겨울 때면 늘 떠올리는 화두지만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은 딜레마이기도 했다.   

 

  막상 보금자리를 새로운 곳으로 옮기고 나니 낯설어서 그런지 다시 백지상태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사업을 한다고 어찌어찌 도시 외곽으로 흘러들어 온 나... 처음의 렘과 달리 정말 어떻게 살 것인지 막막한 기분에 지푸라기라도 잡듯 집어든 책이었다.

 

 하지만 왠지 낯선 느낌, 예전에 분명히 읽었는데 새로운 책을 접한 때의 이 생경느낌은 뭐지? 이번엔 제대로 독파하고 말리라. 오기가 생긴 나는  형광펜까지 부여잡고 어떻게든 의 비밀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듯 사명감에 불탄 독립투사처럼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유시민 작가는 처음 이 책의 집필을 의뢰받았을 때 적잖아 당황했다고 한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유용한 지식을 가공하여 독자가 알기 쉽게 전달하는, 자칭 지식소매상일 뿐인 자신이  이런 주제를 쓸 자격이 있는지 주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10여 년의 직업 정치인 생활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느라 자기 검열 습관이 글에 배여 버린 점 또한 작가를 머뭇거리게 한 요인 중 하나였다.


내 인생을 관통한 목표와 원칙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 내 삶을 지배한 감정과 욕망은 어떤 것이었는지, 과연 나는 내게 맞는 삶을 살았는지...

 

 

 당시 나와 비슷한 나이인 50대 초중반의 작가는 앞으로 남은 짧지 않을 자신의 삶을 위해서, 더불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1,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삶의 방법론에 있어서 이 책을 관통하는 작가의 생각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삶이다.

 현대사의 가장 아픈 시대를 몸소 겪으며 지나왔던  작가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잇는 군부 독재 시절, 조국이 처한 현실에 열심히 저항했고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원한 삶의 방식은 아니었다고 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보다 능동적으로 세상과

부딪치지 못하고, 굴복과 체념을 강요하며 자신에게 부딪쳐온 세상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과 품격은 지키고자 저항과 반항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그 이외의 것은...(중략)... 그 이후의 일이다. 그것들은 장난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로 대표되는 카뮈는 삶은 불안하고 허무하며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 찼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인간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  자살과 반항이다.

 부조리를 인식하고 세상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며 체념하고 자살할 것인가? 해결할 수 없는 부조리임에도 끝내 화해하지 않고 반항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선택에 앞서, 인간은 삶이 과연 살 가치가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조그마한 실마리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그때부턴 세상의 부조리에 온몸으로 반항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까뮈 또한 반항적인 인간의 삶을 택했다.


 오십을 넘긴 이 나이에 어떻게 살까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자살과 반항을 선택하기 위한 것이든, 이미  하나로 결정하고 철저히 반항하기 위한 과정이든, 변함없는 사실은 삶에 대해 여전히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이다.


 작가는 젊은 시절 그저 유행하는 멋으로 실존주의를 접했을 때의 심드렁한 반응과 달리, 나이가 들어서는 실존주의가 던진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부조리와 한계에 천착한 문제의식에 크게 공감한다고 혔다.


까뮈를 빌려 작가는 항변한다. 그냥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고,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하고, 오늘 하루 그 의미를 충족하는 삶을 살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살다 보면 상처받지 않은 삶은 없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인데,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작가는  삶에 힘겨워하는 사람들, 청년들에게 보내는 섣부른 위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단지 삶의 환경을 조금 덜 냉혹하게 느끼게 만들 뿐 실제 삶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에게 위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들여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마틴 셀리그만이라는 임상심리학자는 숱한 관찰과 상담사례를 통해 알아낸 삶의 위대한 세 영역으로 일, 사랑, 놀이 들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 셋으로 삶을 채우며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다고 한다.

작가는 여기에 '연대'라는 개념을 덧붙였다. 동일한 가치관과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서로 공감하며 살아가는 것,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같은 것을 꿈꾸며 함께 한다는 것, 나 역시 나이가 들수록 필요성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영역들을 추상적이고 지향해야 할 목표로만 여기지 말고 지금 이 순간부터 실천하며 살아가길 권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하며  삶과 세상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적은 수의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소위 취미로 여겨지는 많은 놀이들을 더 적극적으로 하며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더 넓게 연대하며 살리라.

자신 또한 이제껏 외부에서 규정한 틀에서 벗어나 내면에서 솟아나는 욕망을 긍정적으로 표출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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