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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Feb 16. 202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고

'난쏘공'의 조세희 작가를 추모하며

 

 작년 12월, 매스컴을 통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유명한 조세희 작가의 타계소식을 들었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흔히 '난쏘공'으로 불리며 대학 필독서 목록에서, 그리고 연극으로도 접한 경험이 있는 작품이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흐려져 철거민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것 외에 달리 떠오르는 없었는데 작가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저마다 작가를 애도하는 방식일까? 도서관에선 조세희 작가의 '난쏘공'이 모두 대출 중이었다. 예약을 하고 한 달쯤 지난 시점에야 책은 돌고 돌아 내 손에 들어왔다.


 다시 읽게 된 '난쏘공'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인상적인 책이었다.

에필로그를 포함해 12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들 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란 제목의, 단편치곤 꽤 긴 내용의 이 소설은 목차에서 4번째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난쏘공'에 수록된 소설들이 각각 별개의 이야기일 거라는 나의 추측과는 달리 모든 작품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녹아드는 연작 소설집이었다.


'난쏘공'의 목차

  작가의 심오한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서로 얽히고설킨 흡인력 있는 이야기들이 어쩌면 그중 대표작만 읽고 책을 덮으려 했던 나의 얄팍한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난쏘공'은 서울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살고 있던 한 가족이 갑작스러운 시의 재개발 계획으로 강제 철거를 당하면서 쫓겨나야 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난장이인 아버지와 어머니, 큰 아들 영수, 작은 아들 영호, 막내딸 영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던 아버지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힘겨워하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된다.


 철거민의 고달픈 삶과 개발 논리만을  앞세워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회의 무자비한 폭력적 행위를 다루고 있는 '난쏘공'속 인물들은 책 속의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등장해 그들의 삶을 계속 이어간다.


  무허가촌에서 쫓겨난 난장 가족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와 '은강방직'이란 직물공장에서 새로운 노동자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양 바뀐 자본의 논리가 열악한 노동자활을 영위해 나가는 그들의 삶을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 맘 놓고 자행하는 환경오염 등 무자비한 자본의 횡포에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누릴 수 없는 여건 속에서 난장이의 자식들은 불합리한 노동 환경에 눈뜨게 되고 큰아들 영수는 마침내 선두에 서서 자본가의 핵심 인물인 회사의 사장을 살해하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조세희의 소설에서는 이러한 노동자의 시선뿐만 아니라 철저히 자본가를 대변하는 입장의 작품도 등장한다.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란 소설 속 사장의 막내아들인 경훈은 자본을 대물림하는 과정 또한 얼마나 혹독하고 비인간적인지, 어려서부터 노동자를 보는 시선이 어떻게 교육되고 단련되는지 주인공의 리묘사를 통해 잘 드러난다. 심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법, 비정한 자본의 논리는 피라미드의 상위에 있는 그들조차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악몽을 꾸는 자본가들 조차 맘 편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구조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그 외 다른 소설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중간자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인물 또한 존재한다. 자본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열악한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끝없는 내적 갈등을 겪으며 그 어느 영역에속하지 못한 자신의 존재에 괴로워하는 그들 또한 자본주의라는 사회적 체제의 희생양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등단 이후 10여 년간 펜을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척추라 생각했던 귀중한 가치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시대에, 가족이란 또 다른 짐을 짊어지기 위해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야 했던 자신의 비겁한 생활을 회개하듯  털어놓았. 작가는 어느 날, 재개발 지역에 사는 지인과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철퇴로 대문과 시멘트 담을 쳐부수며 들어오는 철거반과 맞닥뜨리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과 싸우고 돌아오는 길에 조그마한 노트를 하나 사며, 그는 이 소설 '난장이 연작'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또 짐승처럼 맞고 끌려가는, 다시 말해 인간의 기본권이 말살된 '칼'의 시간에 작은 ‘펜’으로 작은 노트에 글을 써나가며, 이 작품들이 하나하나 작은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파괴를 견디고' 따뜻한 사랑과 고통받는 피의 이야기로 살아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나는 했었다.


 자신의 책이 100, 200, 300쇄를 찍을 때마다 괴로워했다는 작가는 이제는 먼 과거의 이야기로 치부되어야 할 자신의 작품이 스테디 소설 목록에 오르내리며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통용되는 오늘날의 현실을 개탄스러워했다.


 소설을 쓰지 않는 동안에도 사진기를 들고 핍박받는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을 늘 찾아 헤맸다는 조세희 작가야 말로 배웠다는 사실을 원죄의식으로 품은 채, 자신의 소설과 한 몸이 되려고 부단히 몸부림쳤던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 아닐까?  

 

 늦었지만 시대의 아픔을 함께 껴안으려 애쓰셨던 조세희 작가님께 이 자리를 빌려 작별인사를 전하고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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