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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Dec 12. 2023

[D-20] 계획된 감동

346번째 글

감정, 감성, 기분, 느낌, 감동, 이런 것들은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들 한다. 어쩌면 가장 비논리적인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것들은 왜 느껴지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고, 다시 재현해 내기도 어렵고, 워낙 변덕스러워 어떤 법칙을 찾아내기도 어렵고, 편차도 크고, 예외도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쉽게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음악을 통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감동을 느낀 적이 아주 많다. 3분도 안 되는 짧은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고, 엄청난 감동이 쏟아져 들어와 충격에 몸이 마비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 적도 있다. 예전에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Echoes를 처음 들었을 때 그랬다. 그 노래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좋은 의미로. 충격적으로 다가올 만큼 그 노래는 내게 감동을 주었다. 듣고 난 직후 너무나도 어안이 벙벙해서, 나는 그 23분이나 되는 난해한 곡을 곧바로 다시 재생했었다. 그렇게 두 번을 연달아 듣고 난 뒤에도 세 번째로 또 듣고 싶었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으면 처음의 그 깊은 감동이 사라질까 봐 재생 버튼을 다시 누르지 못하고 꾹 참았었다. 왜 그 곡이 그렇게까지 내게 감동을 주었는지 설명하기란 어렵다. 왜 내 가슴은 그 곡을 듣고 뛰었는지, 왜 그 곡은 나를 흥분시켰는지, 왜 멍한 충격을 남겼는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저 감동을 받았고 충격적이었다,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재미있는 부분은 내게 이런 비이성적인 감동을 안겨준 이 노래가 사실은 엄청나게 논리적이고 계획적으로 설계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들은 수많은 고민 끝에 이 노래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멜로디를 어떻게 전개시킬지, 사운드는 어떻게 구성할지, 리듬은 어떤지, 이 순간에 기타를 어떤 식으로 연주할 것인지, 이 음은 어떤 악기를 가지고 낼 것인지, 정확히 몇 분 몇 초 정도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것인지 등등 그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 부분들을 고려해서 곡 하나를 완성해 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 기술적인 요소들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런 논리적, 계획적 과정을 거쳐서 곡이 만들어졌고, 나는 그걸 들으면서 감동을 받는다. 비논리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감정들을 겪으면서.


이 감동은 내가 노래를 구조적으로 분석했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노래가 음악사적으로 갖는 의미 때문에 감동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 감동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한 것이지만, 그 중심에는 논리적 사고의 결과물인 음악이 있다. 이렇듯 논리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성 속에는 비합리가 숨어 있다. 내가 듣고 감동을 받은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 뮤지션들이 그 음을 그 순간 그 방식으로 배치해야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감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아주 계획적이고 치밀한 사고와 고민이 필요하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창작물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냉정한 고민을 해야만 한다. 감동을 주는 연출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하고 분석해 보아야만 한다. 이성과 감성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건 모두 뒤섞여 있다, 나의 머릿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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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2일,
버스에 앉아 누군가가 이어폰 음량을 키워 놓아 내게까지 들리는 희미한 음악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Brian Erickso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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