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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Dec 17. 2023

[D-15] 결정을 보류해야 할 때

351번째 글

나는 결정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심사숙고해서 내리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결단력이 없고 우유부단하다. 그래서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한번 제대로 마음을 먹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정신력을 쏟아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내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빠르게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내 감을 믿고 보다 즉흥적으로 결정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하나 따져 보기보다는 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결정해 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수많은 고민과 저울질 끝에 결정을 하지만.


내 이런 성격 때문일까, 나는 즉각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결단력 뛰어난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사극에 나오는 장군들처럼 어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어떻게 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그러나 이렇게 빠르고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나도 결정을 보류하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하나 있다. 바로 내가 감정적이라고 느껴질 때다. 감정적일 때에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아주 감정적인 사람으로 살면서, 내가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거다.


감정적일 때는 나를 괴롭히고 파괴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때의 충동적인 결정은 내 감을 믿고 저지르는 충동적인 결정과는 다르다. 감정적일 때는 내 기분을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된다. 그래서 감정적일 때 내리는 결정도 그런 식이다.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내가 얼마나 속상한지, 내가 얼마나 슬픈지, 내가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표출하는 것이 우선이 되는 거다. 그래서 판단력은 흐려지고 나중에 후회할 만한 선택을 하게 된다.


감정적인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을 후회하곤 하는 이유는, 그건 나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이 나를 집어삼키면 나를 잃게 된다. 나보다 감정 자체가 앞서게 된다. 그래서 이때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려버리면, 나다운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된다.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감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럴 때는 잠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류해야 한다. 보류한 채로 감정이 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거다. 잠을 자거나, 뭔가 기분전환이 될 만한 일을 하거나. 그러고 나서 조금 차분해지고 나면 나다운 결정을 내릴 수가 있다. 즉흥적인 결정이든 심사숙고한 결정이든, 적게 후회할 만한 나다운 결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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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7일,
소파에 기대앉아 TV 다큐멘터리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Khamkéo Vilaysing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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