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앱으로 만난 ''150억원 자산가"

망한 연애 이야기 02

by 탱자

n번째 연애를 망치고,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라는 생각에 냅다 시작한 데이팅 앱.


국내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아 소수의 외국인/유학생이 이용한다는 앱에, 등록된 모든 남자와 자겠단 커다란 포부를 안고 닥치는 대로 swipe right* 했다.

* 데이팅앱 상에서 상대의 프로필이 마음에 들면 오른쪽, 싫으면 왼쪽으로 화면을 넘김(swipe)


수많은 남자들과 의미 없이 던져지는 질문과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을 때 즈음,

사는 곳이 가깝고 너무 구리게 찍은 셀카와 유료구매한 꽃 세 송이 선물이 귀엽게 느껴진 남자와 대화를 시작했다.


몇 번의 데이트 후 자연스럽게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는 그의 차에서 거의 뛰쳐 내린 후 버럭버럭 화내는 그와의 인연은 그 날로 끝일 줄 알았는데,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락이 와 이래저래 하다 보니 관계가 지속됐다.

그때 사이코라는 걸 알아봤어야 하는데...ㅠ


가상화폐 투자가 본업이었던 그는 가상화폐 세금이 없는 우리나라에 잠시 살러온 재미교포였고,

이래저래 소개팅에서 자주 보는 번듯한 직장인 한국 남자(나도 평범한 직장인 한국 여자)와 다른 점들이 흥미롭고 재밌었다.


당시 가상화폐시장이 soft market이었던지라, 시간과 돈이 많이 남아돌았던 그는 나를 쫓아다니며 애정공세를 퍼붓는 데에 시간과 돈을 썼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새 꽃을 집으로 사 보내고, 1억 원이 넘는 "우리가 같이 탈" 차를 리스해 줬고,

이유 없이 명품 선물을 하고, 럭셔리 호텔 스위트룸으로 여행을 가고,

직장 동료들을 위한 귀여운 선물과 함께 나의 회사를 찾아왔다.



매일 사랑 노래를 보내고, 나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가 보살펴줄 테니 발리에 살러가자고 했고,

아기를 갖기에 내가 너무 말랐다며 비싸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줬다.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던 그에게 나는 여러 방법으로 생활에 도움을 많이 주며 사랑에 보답했다.


항상 비트코인 차트와 X(구. twitter) 소식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도파민에 중독돼 있었던 그는,

무료함에 온갖 자극을 쫓으며 술에 취해 다른 교포 친구들과 어울리며 각종 사고를 치고 다녔다.


취객과 싸워 상대방 코뼈를 날리기도 했고, 우리나라의 우수한 블랙박스 시스템에 익숙치 않아 음주운전 후 뺑소니를 치기도 했는데

내 앞에서는 나를 두고 미국으로 추방될 수 없다며 100kg 넘는 거구로 질질 짰고

나는 경찰서와 법원에 드나들며 그의 통역사/변호사 역할을 무료로 해줬다.



자기의 일상이 너무 심심한 나머지 그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계속 일부러 머리 아픈 일을 만드는가 의심이 갈 정도로 바람잘 날이 없었다.



몇 개월 잘 지내다 그가 본래 색깔을 드러내며 우리는 하루 걸러 크게 싸웠고,

덩치가 나보다 두 배가 됐던 그와 싸우다 나는 수차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You f*cking b*tch! You b*cking c*nt!!!"

소리를 지르는 것은 물론, 치욕스러운 폭언을 하고 (진짜 난생 처음 들음..), 소리지르는 나를 밀치기도 했다.

운전 중 싸우다 심각한 난폭운전을 해 나는 진짜 살기 위해 하고 싶은 말을 참고 그의 비위를 맞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르시스트를 떠나지 못했던 건,

자동차를 큰 차, 납작한 차, 흰 차 정도로 구분하던 내가 ‘우리를 위해’ 내 명의로 자동차를 리스를 했던 점, 그리고

잠깐 사이가 안 좋았을 때 내 관심을 유발하려 "산" 강아지가 너무 귀여웠던 탓도 있지만,

그가 나에게 제공했던 돈으로부터 오는 자유와 안정감을 놓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얘기하는 것처럼 많은 문제들이 돈으로 해결됐고, 사람들의 태도가 달랐다.

월급을 받아 생활했던 부모님의 절약이 자라면서 가끔 어린 날 짜증 나게 했는데


그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어떠한 선택을 할 때에 가격이라는 요소가 사라졌고,

모든 게 쉽게 두 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여러 상황에서 상대적 우월감을 느꼈고, 나는 비교적 살만한 집안에서 자라 월급도 꽤 주는 직장을 다녔음에도 차원이 다른 자유로움이 좀 달콤했다.

자칭 150억 원의 자산가라며 꽤 오랜 기간 자수성가 형 부자였던 그는,

돈으로 상황을 어떻게 조종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았고,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그의 manipulative*한 성격은 환장의 조합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교묘히 조종하는 기술. 보통 막내들이 이런 기질을 가지고 있다 함^^


어디까지 갈 것인가... 매번 갱신하던 그의 사이코틱한 만행과,

어디까지 받아 줄 것인가... 하던 나의 사이코틱한 자애로움이

다행히도 우리는 내 가상화폐 계좌를 사용하여 본인 자산을 인출하겠다는 그의 돈세탁 요구를 거절하면서 끝이 났다.



이 유사 범죄좌를 만나며, 경제적 자유를 내 힘으로 이뤄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돈 때문에 이딴 새끼한테 끌려다녀?


나름 괜찮은 수저 들고 컸던 나는 너무나도 분했지만

한 달에 차 리스비를 120만 원씩 낼 돈도, 강아지를 내 품으로 데려오기 위해 이사를 하거나 유치원에 보낼 돈도 현실적으로 여유롭게 있지 않았다.


세상이 돈이 아니라지만 너무나 많은 부분이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고,

정확히 말하자면 돈이 주는 자유로움이 정말 무엇인지 알게 됐고 갖고 싶어졌다.


유튜브를 보며 공부하던 경제적 자유를 살짝이나마 맛봤기에, 더 갈증이 생겼다.

일단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해 작은 수익이라도 있었고, 계속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데에 동기부여가 되는 망한 연애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새끼가 했으면 나도 당연히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기에 어찌 보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다만 정신적, 육체적으로 오랜 기간 나를 괴롭히고, 기만했기에 절대 그에게 좋은 일이 벌어지길 바라진 않는다.

하던 대로 되는대로 살다 잘 가길...(골로)

작가의 이전글서울 아파트를 사게 만든 남자와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