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2015
질감 거친 마분지 위에 펜이거나 연필이거나 끄적거리는 소리 들릴 듯한 흑백 영화. 그 위에 말할 듯 말 듯 망설이는 동주의 얼굴이 그려지고, 시가 쓰여집니다. 그의 입술은 망설이지만, 그의 손길은 유연하게 원고지 위에서 또박또박 걷습니다. 흑백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 뒤에는 여러 가지 이유나 의도가 있을 수 있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색깔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별이 더 이쁘게 빛납니다. 그래서 좋았던 영화 ‘동주’입니다.
‘동주’는 이준익 감독이 만든 저예산 영화입니다. 스탭 구성, 필름 등에서도 과감하게 예산을 줄였고, 유아인의 출연 요청도 같은 이유로 거절하여 ‘동주’라는 역할은 강하늘에게 흘러갔답니다. 이 또한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얼굴이었다는 생각이 거듭 듭니다. 윤동주의 사진과 완벽하게 싱크가 맞는 비쥬얼은 아니지만, 수줍음과 머뭇거림을 강하늘이 너무나 잘 표현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웃는 모습은 윤동주 같이 순수해 보입니다. (거기다 사도와 조태오의 얼굴에 윤동주의 얼굴까지 오버랩 시키는 건 좀 아니지 싶습니다.)
‘씨네21’에 실린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이 영화를 만들기 전 사명은 느꼈을 지 언정 자신은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견 이해가 갔습니다. 즉, 송몽규의 등장에 대한 필연성(?)의 맥락에서 말이죠. ‘송몽규’ 없이는 윤동주의 얘기를 풀 수 없을 것 같았다는 말, 실제로 영화계가 그간 윤동주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는 말을 듣고 보니 ‘그러네’ 하고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윤동주에 대해선 그 흔한 유명인의 일화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던 듯 합니다. 시로만 얘기할 뿐 그 외 시간엔 어딘가에 꼭꼭 숨어 지냈던 듯이 극적인 흔적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 송몽규가 함께 하게 됩니다. 그가 있으면 윤동주를 끄집어 내 말하게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는 내성적인 윤동주의 곁에서 윤동주가 고민하도록, 행동하도록, 부끄러워하도록 극적 기동의 역할을 합니다.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가 인용되면서도 송몽규가 반복적으로 보여집니다. 실제 송몽규가 윤동주의 자화상으로 시상에서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를 미워하기도 하고 가여워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그는 거울 같은 우물 안에서 찾을 수 있지만, 나와 따로 움직이는 ‘나’입니다. 우물 속에 혹은 거울 속에 갇힌 ‘내’가 나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 나는 그만큼의 괴로움을 짊어지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본 송몽규는 그런 ‘나’였다는 느낌이 듭니다.
윤동주에게 시를 쓰는 자유를 주고도, 송몽규는 ‘왜 문학 뒤로 도망치네’ 하고 함경도 사투리로 꾸짖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때 동주는 강하게 항변합니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문학을 수단으로 보려는 송몽규의 눈에 시(詩)는 발부리에 치이는 돌멩이보다도 못한 무기일 수도 있겠죠. ‘문학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 사랑할 때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동주는 송몽규를 설득하지 못합니다.
그 지점이 동주의 부끄러움이 싹튼 곳이겠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아끼는 사람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는 안타까움.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연모하는 사람이 소위 ‘문명국의 합법적 절차’에 의해 짓밟혀질 때 혼자 자유롭게 그 사랑을 키우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나 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를 계속 쓰고, 이 영화는 그 시를 읊어줍니다. 이 영화를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가상일 지라도 ‘윤동주의 목소리’로 시 듣기.
그런 부끄러움을 잊고 윤동주가 밝게 웃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도 너무 설레어 빙그레 웃을 수 밖에 없었죠. 전차 안에서 쿠미상과 자신의 시집 엮는 문제를 얘기하던 윤동주는 더없이 행복하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자신의 앞을 응시하며 웃습니다. 그리고 또 영화는 시를 읊어줍니다.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차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가수는 노래를 따라 간다고 했던가요? 시인도 그러한가 봅니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본 리뷰는 스포일링을 최소화 하고 여러분의 영화 관람 선택을 돕기 위해 작성 됐습니다.
예술적 재미 : ★★★☆☆
예술적 표현의 과격성 : ★☆☆☆☆
상업적 재미 : ★★★☆☆
감동 : ★★★★☆
스토리 구성 : ★★★★☆
엔딩의 충만함 정도(허무하지 않은 정도) : ★★★★☆
허드서커 상상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