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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미소 Aug 05. 2016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동주, 2015

질감 거친 마분지 위에 펜이거나 연필이거나 끄적거리는 소리 들릴 듯한 흑백 영화. 그 위에 말할 듯 말 듯 망설이는 동주의 얼굴이 그려지고, 시가 쓰여집니다. 그의 입술은 망설이지만, 그의 손길은 유연하게 원고지 위에서 또박또박 걷습니다. 흑백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 뒤에는 여러 가지 이유나 의도가 있을 수 있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색깔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별이 더 이쁘게 빛납니다. 그래서 좋았던 영화 ‘동주’입니다.


‘동주’는 이준익 감독이 만든 저예산 영화입니다. 스탭 구성, 필름 등에서도 과감하게 예산을 줄였고, 유아인의 출연 요청도 같은 이유로 거절하여 ‘동주’라는 역할은 강하늘에게 흘러갔답니다. 이 또한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얼굴이었다는 생각이 거듭 듭니다. 윤동주의 사진과 완벽하게 싱크가 맞는 비쥬얼은 아니지만, 수줍음과 머뭇거림을 강하늘이 너무나 잘 표현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웃는 모습은 윤동주 같이 순수해 보입니다. (거기다 사도와 조태오의 얼굴에 윤동주의 얼굴까지 오버랩 시키는 건 좀 아니지 싶습니다.)


‘씨네21’에 실린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이 영화를 만들기 전 사명은 느꼈을 지 언정 자신은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견 이해가 갔습니다. 즉, 송몽규의 등장에 대한 필연성(?)의 맥락에서 말이죠. ‘송몽규’ 없이는 윤동주의 얘기를 풀 수 없을 것 같았다는 말, 실제로 영화계가 그간 윤동주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는 말을 듣고 보니 ‘그러네’ 하고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윤동주에 대해선 그 흔한 유명인의 일화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던 듯 합니다. 시로만 얘기할 뿐 그 외 시간엔 어딘가에 꼭꼭 숨어 지냈던 듯이 극적인 흔적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 송몽규가 함께 하게 됩니다. 그가 있으면 윤동주를 끄집어 내 말하게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는 내성적인 윤동주의 곁에서 윤동주가 고민하도록, 행동하도록, 부끄러워하도록 극적 기동의 역할을 합니다.


영화 포스터/스틸컷 출처 : 제작 : (주)루스이소니도스, 배급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가 인용되면서도 송몽규가 반복적으로 보여집니다. 실제 송몽규가 윤동주의 자화상으로 시상에서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를 미워하기도 하고 가여워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그는 거울 같은 우물 안에서 찾을 수 있지만,  나와 따로 움직이는 ‘나’입니다. 우물 속에 혹은 거울 속에 갇힌 ‘내’가 나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 나는 그만큼의 괴로움을 짊어지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본 송몽규는 그런 ‘나’였다는 느낌이 듭니다.


윤동주에게 시를 쓰는 자유를 주고도, 송몽규는 ‘왜 문학 뒤로 도망치네’ 하고 함경도 사투리로 꾸짖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때 동주는 강하게 항변합니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문학을 수단으로 보려는 송몽규의 눈에 시(詩)는 발부리에 치이는 돌멩이보다도 못한 무기일 수도 있겠죠. ‘문학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 사랑할 때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동주는 송몽규를 설득하지 못합니다.


그 지점이 동주의 부끄러움이 싹튼 곳이겠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아끼는 사람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는 안타까움.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연모하는 사람이 소위 ‘문명국의 합법적 절차’에 의해 짓밟혀질 때 혼자 자유롭게 그 사랑을 키우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나 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를 계속 쓰고, 이 영화는 그 시를 읊어줍니다. 이 영화를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가상일 지라도 ‘윤동주의 목소리’로 시 듣기.


그런 부끄러움을 잊고 윤동주가 밝게 웃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도 너무 설레어 빙그레 웃을 수 밖에 없었죠. 전차 안에서 쿠미상과 자신의 시집 엮는 문제를 얘기하던 윤동주는 더없이 행복하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자신의 앞을 응시하며 웃습니다. 그리고 또 영화는 시를 읊어줍니다.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차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가수는 노래를 따라 간다고 했던가요? 시인도 그러한가 봅니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본 리뷰는 스포일링을 최소화 하고 여러분의 영화 관람 선택을 돕기 위해 작성 됐습니다.

예술적 재미 : ★★★☆☆

예술적 표현의 과격성 : ★☆☆☆☆

상업적 재미 : ★★★☆☆

감동 : ★★★★☆

스토리 구성 : ★★★★☆

엔딩의 충만함 정도(허무하지 않은 정도) : ★★★★☆

허드서커 상상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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