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텔 올먼 지음. 『시험 잘 보며 세상 바꾸기』
이 책은 다른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어 읽었다.
한때 ‘마르크스’가 들어간 책을 판매 금지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의 다른 제목은 『시험 잘 보며 세상 바꾸기』이다.
저자는 “35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험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것들을 가르쳐줄 마음이 별로 없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자본주의, 즉 우리 사회의 부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체제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인데, 그 주제에 끌리는 학생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험에 관한 도움말은 듣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래하자. 여러분이 나의 자본주의 이야기에 귀를 열어준다면, 시험을 최대로 잘 보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점들을 말해주겠다.”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이야기와 시험 잘 치는 요령을 한두 단락씩 번갈아 가며 전개한다. 시험 잘 치는 요령 첫머리에 ‘§’기호로 구분했지만, 활자체 구분이 없어서 전부 읽어야 한다. 저자는 “과일을 맛보려면 반드시 너트를 먹어야 한다.” 이게 좀 불공평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를 옥죄는 거대한 불공평에 눈을 뜨고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당장 조금 불공평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는 인류를 계급투쟁의 산물로 만들었다. 소수의 자본가가 다수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인류의 행복을 위한 제도이다’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서 사회주의는 불가능하지만, 민주주의가 존재하고 그것이 미치는 범위를 사회 전체로 넓히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가능하다. 예컨대 소련이나 중국처럼 이런 조건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들의 모든 경험은 지금 이 나라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르침으로서 완전히 무의미하다.
만일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게 아주 적다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물질적으로 이미 풍요로운 데 단지 분배가 잘못되었다면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산업화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지만, 산업화된 곳에서는 가능하다. 사회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경쟁하는 여러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다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지만 대부분이 임금이나 봉급 생활자여서 기본적으로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 가능하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되면 현재 대학에서 총장과 이사회가 내리는 결정, 직장에서 사장이 내리는 결정, 건물주가 내리는 결정, 신문이나 TV 방송국, 영화사, 스포츠팀 등의 소유주가 내리는 결정, 각급 정부 관료들이 내리는 결정에 여러분도 직접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삶을 규정하는 돈의 독재, 그 돈을 거의 다 가지니 사람들의 독재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이다. 소수를 위한 이윤의 극대화라는 목표는 사회적 필요에의 기여라는 인간적인 목표로 모든 곳에서 대체될 것이다.
시험 잘 치르는 요령에 관한 첫 번째
§ 시험은 크게 네 종류가 있다. 사실암기시험(O,X형, 선다형, 빈칸 채우기형, 단답형)과 논술시험, 구술시험, 실기시험이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시험공부의 일반적 요령뿐 아니라, 네 가지 유형 모두에 대한 도움말을 보게 될 것이다.
§ 오엑스문제에서 정답이 뭔지 실마리조차 안 보일 경우엔 다음의 통계가 답을 추측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진위를 가리는 문항의 진술 중 ‘모든(all)’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은 다섯 중 넷을 거짓이고, ‘아무도(아무것도, 조금도) … 않다(none)’이란 말이 들어간 것도 다섯 중 넷이 거짓이며, ‘항상(always)’이라는 말이 들어간 진술은 넷 중 셋이 거짓이라는 통계가 있다. 반면에 ‘일부(some)’라는 단어가 들어간 진술을 다섯 중 넷이 참이고, ‘일반적으로(generally)’라는 단어가 들어간 진술은 넷 중 셋이 참이라고 했다. 또한 진술이 길수록 참일 가능성이 높았다.
§ 논술시험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번째 자신 있는 문제를 맨 먼저 푸는 것이 현명하다. 가장 잘 아는 문제에 먼저 달려들면 너무 길게 쓰느라 다른 문제들을 위한 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다. 논술시험에서는 약간의 워밍업을 거쳐야 머리가 풀리기 때문에 가장 자신 있는 문제를 두 번째로 남겨두면 더 좋은 답을 쓸 가능성이 커진다.
1983년에서 1997년 사이에 미국 노동자의 생산성은 17% 상승한 반면 부의 점유율은 3.1% 하락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적게 얻은 것이다. 부의 85.5%를 전체 인구 중 가장 부유한 상위 1%(그중 재산이 10억 달러 이상인 사람만 268명)가 챙겼다. 전체 주식 및 채권의 88%가 그들의 수중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200명의 재산은 지난 4년 사이에 두 배로 늘었다고 유엔보고서가 밝혔다. 이 슈퍼 부자들 재산의 1%만 기부해도 전 세계 모든 초등학교에서 무상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
§ 오엑스문제에는 대개 거짓 진술보다 참 진술이 많다. 그럴 듯 하면서 거짓인 진술을 생각해내려면 시간과 상상력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항상 바쁘고 특히 시험을 출제하고 채점할 때는 더욱 시간에 쫓긴다.
로스앤젤레스 지진은 그 도시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지진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을 뿐 아니라 수십억 달러어치의 재산을 파괴하고 수천 개의 가계와 기업을 망가뜨렸다. 하지만 지진 재건 과정에서 공공투자와 민간투자로 150억 달러가 투입되었고, 지진 이전부터 실업자이던 많은 사람에게 직업과 수입을 안겨주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기적 중 하나다. 파괴는 유익하다!
한때 전쟁은 우리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했다. 그러나 현재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소규모 전쟁은 너무 작고, 무기 수준을 고려할 때 제2차 세계대전처럼 정말 큰 전쟁은 지구에 너무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에 비해 지진은 파괴력의 정도가 아주 적당해 보인다. 이걸 나라 전체에 좀 더 공평하게 퍼뜨릴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선다형 시험을 포함한 ‘사실암기시험’에서는 대개 처음 쓴 답을 고수하는 편이 낫다. 틀렸음을 확신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긴가민가해도 처음 고른 답이 나중에 바꾼 답보다 정답일 확률이 더 높다.
§ 혹시 시험을 망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옥스퍼드대 학생 스크리블레루스 레디비부스가 쓴 『낙제의 기술』(1835)을 보면 된다. 시험을 망치는 법을 알려주는 한편, 흡연, 사랑, 당구, 소설, 보트 레이스, 음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나태’를 장별로 나누어 다룬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큰 거짓말(Big Lie)’ 이론을 소개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작은 거짓말들을 하고 그래서 그런 거짓말을 들을 때 쉽게 알아챈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 큰 거짓말을 할 정도로 대담하거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큰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냉소적인 사람은 별로 없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작은 거짓말보다는 아주 큰 거짓말을 하고 무사히 넘어갈 확률이 더 높다.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그것은 세계적인 규모의 본격적인 자본주의다. 세계화는 과거의 모든 규제와 금지가 철폐되었거나 철폐되고 있는 시대의 자본주의이고, 뚜렷한 경쟁자가 없기에 타협하거나 사과할 필요가 없는 아주 자신만만한 자본주의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소수의 부의 증가와 다수의 빈곤 심화 간의 연관성에,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와 정부 정책 간의 연관성에, 그리고 돈과 자유, 가난과 무력함의 연관성에 주목해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 같은 관찰 결과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적용할 이론이 없기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눈을 돌리거나, 방금 무엇을 봤는지 잊어버리거나, 자신의 혼란을 ‘역설’이라 부르면서 고상하게 합리화한다.
성적과 돈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돈과 성적은 우리 사회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역할을 한다. 돈은 서로 아주 다른 물건들을 가격을 가지고 비교할 수 있게 한다. 성적은 아주 다른 사람들을 글자 하나로 비교할 수 있게 한다. ‘상품화’란 물건이 가격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의식주 등 구체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이 시장에 이르고 나면 주로 가격을 기준으로 고려되고 평가된다. 성적은 학습 과정의 상품화를 상징한다. 성적은 온갖 종류와 수준의 지식을 대변한다. 성적은 엄청나게 다양한 인간 재능과 성과를 단 하나의 차원으로 환원하여 측정한 다음, 결국 학생과 교사, 일반 대중의 의식에서 그것을 대체한다.
§ 시험 볼 때 어디쯤 앉는 게 좋을까? 앉는 자리가 빚는 차이는 아주 작아도, 삶의 모든 과정에서 그렇듯이, 시험에서도 종종 미세한 차이가 패자를 승자로 바꾸어준다. 선생님과 가까운 자리에 앉으면 대갠, 시험지를 가장 먼저 보고 가장 늦게 제출하게 되므로 답안 쓸 시간이 1분 정도까지 늘어날 수 있다.
미국의 유머작가 제임스 서버에게 한 친구가 물었다. “자네 부인은 요즘 어떤가?” 그러자 서버가 되물었다. “무엇과 비교해서?” 우리가 살면서 내리는 대부분의 판단에는 이런저런 종류의 비교가 들어간다. 그럴 때 적절한 비교 대상이 무엇인지가 항상 분명한 건 아니다. 또한 비교 대상의 선택은 종종 다른 대안들에 대한 고려 없이 무의식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선택된 비교 대상은 우리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한 사회를 판단할 때 그 사회가 지닌 유리한 여건들을 두루 활용하여 이루어낼 수 있는 모습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는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정 적절한 판단 기준이기도 하다.
딱딱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재미있게 풀어쓴 작가의 재능이 부럽다. 시험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은 시험 잘 치르는 요령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책 소개
『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버텔 올먼 지음. 김한영 옮김. 2012.09.10. 모멘토. 293쪽. 13,000원.
버텔 올먼. 1935년생. 미국 뉴욕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변증법적 방법론과 사회주의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위스콘신대,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하고 정치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좌파 전널 『먼슬리 리뷰』 창립자. 저서,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 『사회혁명과 성혁명: 마르크스와 라이히에 관한 글들』 등.
김한영. 강원도 원주 출생. 서울대학교 미학과 졸헙, 서울 예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