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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경미 Mar 22. 2022

외로운 오줌 싸 배기의 하루

집통. 밥통. 똥개. 머저리

꺄아악!!!”

귀신이라도  걸까공포영화에서나 들릴 법한 날카로운 비명이 3학년 어느 교실을 흔들었다교실 안에는 잠시 적막이 흘렀지만 이내 무언가 흥미로운 이벤트가 생겼음을 직감하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니?” 깜짝 놀란 선생님이 다급하게 소녀에게 다가간다흥미로운 표정들이  소녀를 주목했다소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로 옆에 있는 짝꿍을짝이 입고 있는 바지를그리고 왁스질이 잘된 반들반들한 교실 나무 바닥을 차례로 주목했다교실의 모든 시선이 그녀를 따라 순서대로 이동한다그들이  것은 자포자기한  고개를  떨군 아이의 목덜미마치 물든 리트머스 종이가   같은 그녀의 바지그리고 톡톡톡 눈치 없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그것’ 때문에  이상은 반질거리지 않는 나무 바닥이었다그랬다모든 시선이 10나에게 쏠리는 순간이었다.

뭐야!!!” 호기심 가득한 시선은 경멸의 눈빛으로 금세 바뀌었다 눈빛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강렬한 쉰여섯 개의 눈이 ‘시선이라는 돋보기   모여 절망의 빛으로 나를 전부 태워버릴  같았다 순간나는 속절없이 타들어 가는 얇디얇은 종이가 되어 연기와 함께 사라져가는 중이었다어쩐지 지금도 타는 냄새가 나는  같다  교실은 다른 이유로 부산하다친구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삐뚤어진 책상 열을 맞추고는 혼란 속에 어질러졌던 교과서를 다시 펼쳤다.

10 . ‘참아야 하겠지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 분명히 싫어하실 거야참아보자…….’

5 . ‘…….’

3 . ‘ 되겠어말해야겠어.’

1 . “ … ….”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신다 보신다나를…. 선생님이 나에게 이렇게 집중해준 적이 있었던가기분이 좋으면서도 부끄럽다천성적으로 내성적인 나에게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볼이 발그레해진다하지만  기분도 잠시생리현상은 감격할 시간 없다며 긴급하게 나를 재촉한다. ‘하필 이럴  이런 창피한 말을 해야 한다니…….’ 절망스럽긴 해도 용기를 쥐어짠다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거의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실에….”라고 웅얼거렸다변해가는 선생님의 못마땅한 표정에 주눅 들어 입술을 깨물었다선생님은 1 뒤에 벌어질  표정의 대가를  턱이 없었다.

10 . ‘역시  되는 거였어괜히 말했나 참아야 하는 건가…….’

1 . ‘어쩌지어쩌지?’

엉덩이에 힘을 주기도발을 꼬기도 하면서 제발 새어 나오지 않길 무작정 바라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작고 작았을  방광의 긴장은 한층 고조되었다결국  오줌은 펄펄 끓어 넘치는 용암처럼 분출되고 뜨거운 마그마가  허벅지를 녹여버리겠다는 듯이 흘러내렸다 아랫부분이 뜨거우면서도 따뜻해진다마침내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졌지만 다른 의미에서 나는 평온을 찾았다바닥 왁스질을 얼마나 잘했는지 나의 오줌은 부드럽고도 우아하게 퍼져나갔다조그만 방광에 그렇게나 많은 양의 물이 담겨 있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다그것은 결국  짝꿍의 핑크색 실내화 주머니까지 침투하였다그리고 마침내  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다녀오라고 했잖아.” 얼음 수천 개를 나에게 뒤집어씌운들 이보다  차갑게 느껴질  있을까이후 나의 사고는 잠깐 동안 마비되었다한참  성인이 되어 그날을 생각하다가마음 저편 타다만 종잇조각이 혼자 닦아내기엔 버거운 양이었던 것과 치덕치덕한 휴지가 기분 나쁘게 손에 묻어있던 장면을 보여주었다내가 꺼낼  있는 기억의 조각은 거기까지였다또렷이 기억하는  선생님이 종례를 마치고 잰걸음으로 교실을 나서는 장면이다 순간만이 또렷한  ‘나를 도와주러 와주실까.’라는 어린 기대가 좌절된 순간이어서일 거다귀찮게 오줌싸배기를 케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으셨겠지그러려고 교사가   아닐 테니까참으로 야박하다.

 

집통밥통똥개머저리!!’

 상태로 집에 걸어가야 한다니끔찍하다흥건하게 쌌으니 금방 마를  없는 바지가 엉덩이 사이에 자꾸  걸음걸이조차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수돗가에서 아예 바지를  적셔볼까누가 물어본다면 “물에 빠졌어요.”라고 해맑게 웃어라도 볼까어린 마음에도 수치심을 면해보려고 나름 머리를 굴려보지만발길은 이미 학교 밖을 나가고 있었다비라도 오면 좋으련만 나에게까지 영광스러운 행운이  턱이 없다운동장에서 축구 하는 오빠들도아이들 하굣길을 오매불망 기다렸을 문방구 주인아저씨도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 아줌마도 모두 나를 보며 한마디씩 하는  같다공상 과학 영화의 주인공 소머즈가   세상의 모든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집통밥통똥개머저리!’

 

어린 나는 바지가 무거운지마음이 무거운지 어느 가게  입구에 잠시 앉기를 선택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그냥 앉아있는 아이로 보겠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따뜻한 바닥에  젖은 바지가 조금이라도 마를까엉덩이를 비비적거렸다얼마쯤 지났을까여유마저 느낀 시간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래 앉아있어 바지가 찐득하게 궁둥이에 붙었다붙은 바지를 조금이라도 떼기 위해 엉덩이를 만지는 순간나는 무언가 크게 잘못됐음을 느꼈다찐득한 물기 사이로 바닥의 미세한 먼지와  부스러기 가지의 녹색 잎들이 축축한 바지에 들러붙어 있는  아니겠는가떼어내려고 엉덩이를 만지면 만질수록 그것들은 서로 밀리고 뭉칠  떨어지지 않았다오줌이 이리도 강력했었나본드도 이런 본드가 없다책가방을 엉덩이에 매다시피하고 터벅터벅 걸었다내가 앉아 있던 가게 입구에 하트 모양 비슷한 엉덩이 자국을 남겨두고…….

 

스파이더맨의 스판도 이보다 벗기 편할 것이다나는 겨우겨우 끈적한 불행의 심벌을 벗어버렸다쭈글쭈글 대추가 되어버린 엉덩이에 대충 물을 끼얹었다실크를 입는다면 이런 느낌일까서랍장에서 꺼내 입은 팬티의 촉감은 부드러움  자체였다그제야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집에 아무도 없을 시간이다엄마와 아빠는 일하러 갔고언니와 동생은 오는 길에 내가 방금 지나온 포장마차 떡볶이를 먹고 오느라 늦을 터였다아직  한편에 흉물스럽게 놓여있는  바지와 속옷을 그들이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빨래통에 넣는다면 오늘 있었던 바보 같은 짓이  들통날 거야.’ 나는 얼룩지고 눅눅해진 바지와 속옷을 세숫대야에 넣고 물을 정성껏 담았다나를  무참하게 만든 더러운 먼지들이 드디어 바지와 이별하고 있었다. ‘엄마가 오면 옷에 물을 흘렸다고 해야지오늘 나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설레는 마음에 물먹은 무거운 바지를 어설프게 한두   헹구어둔다왜인지 엄마를 속이는 일에 어마어마한 흥미가 생겼다.

 옷을 도대체  여기 담가놨는지 물어보겠지?’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엄마의 동선을 살폈다. ‘언제 엄마의 시선이  더러운 통에 닿을까그걸 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할까.’ 수수께끼 같은  세숫대야를 보며 결국엔 ‘경미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구나.’ 생각하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겠지그럼 나는 천연덕스럽게 바지에 물을 흘렸다고 웃어 보여야지혼자만의 상상만으로 심장이 쫄깃해진다오늘 하루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빨래 돌리는 소리가 들린다윙윙거리는 고물 세탁기는 요란하게 떠들어대는데 기다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분명히 엄마는  옷을 봤을 텐데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옷을 여러  헹군  잘못이었을까주변이 천천히 어둡고 고요해진다나는 위로 받을  없는 존재인가 보다처음으로 선생님친구들그리고 엄마에게 배신감이 든다.

그날 저녁덕분에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은 착한 아이가 되었지만 소박한 거짓말도  하는 어린 서러움이 밀려 왔다그렇게 10살에 처음 맞은 절망적인 하루는 밀려오는 서러움 속에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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