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바라던 중년이야.

이글이글 내리쬐던 젊음이여 이제 신나게 안녕.

by 작은경미

뽀얀 떡국을 먹는 것은 유난한 일이 아니었다. 서른 넘어서부터는 뒤돌아볼 없이 앞으로 나아가 화려한 성취물을 획득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했기에 야금야금 나이 먹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도, 이유도 없었다. 적어도 중년의 의사가 나에게 지독한 진실을 말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로운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첫날은 성가시고 귀찮았다. “안녕. 나는 김경미야. 나는 노란색을 좋아해. 사이좋게 지내자.” 친구의 인사말을 반복하고 후다닥 자리에 앉았던 학기 그때처럼, 상담은 앞선 의사들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시작할 테니 말이다. 이쯤 되면 자기소개 패턴 하나쯤 생겨도 좋으련만 첫입을 떼기는 언제나 어렵다.

나를 뭐라고 정의해야 하지? 나는 누구지?’

항상 망설이는 이유는 정체성을 설명할 적당한 문장을 여전히 찾지 못해서다.

내가 누군지 몰라서 여기에 왔는데, 나를 알려달라고 저렇게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구나.’ 깍지 손끝에 힘을 주며 왜소한 어깨를 살짝 움직여 보이는 의사는 재촉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몸소 보여주었지만, 모순적이게도 이제 시작해야 시간이라는 암시를 동시에 주고 있었다. 나는 눈치가 빠르다. ‘무슨 말로 시작할까.’ 눈을 보이지 않게 이리저리 굴렸다. ‘ 아이의 엄마라는 것은 나를 나타내는 최고의 단어가 아니니 패스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대뜸 사업을 한다는 말도 겸손해 보이지 않으니 패스한다. 그래, 이게 가장 무난하지.’ 드디어 적당한 첫마디를 끄집어냈다.

중년이라고 말하긴 그런 마흔네 살입니다. 이제는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도 모르겠어요.” 나이 하나 말하는데 이렇게 구구절절했을까. 젊은이에 비하면 한없이 늙었고, 노인과 비교하면 더없이 젊은 마흔넷의 의미를 쉽게 정의할 없었기에 어쩌면 똑똑한 의사에게 답을 청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말을 듣자마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흔네 살이면 중년입니다. 나이면 확실히 중년이죠.”

어지러웠다. 이상한 나라의 폴이 구멍에 빨려 들어가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것처럼 순식간에 이곳은 비현실적 공간이 되었다. 의사가 정의한확실한 중년 확실히! 나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나는 중년 여성을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난감했다. “, 그렇군요.” 아무렇지 않은 짧게 대답하고 정면으로 바라봤다. 의사가 진지하게 얘기하는 건지 깐족거리며 말하는 건지 당최 상황 파악이 됐다. 저렇게 단호하게 말하니 묘하게 기분이 나빴지만,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너무 순수하게 믿었구나. 중년이란 타이틀은 불쾌하구나. 나이가 되도록 인정하고 있지 않았구나.’

현재 진행형으로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만, 그것과 중년 됨을 선언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앞에 앉은 아저씨. 젊어 보이려고 검은 뿔테 안경 너머 거무튀튀한 피부에 바싹 마른 얼굴의(아마 기분을 반영한 기억의 오류일지도 모르겠다.) 의사 정도 돼야 중년이라 불릴 만하지 않은가.

내가 그렇게 나이 먹었다고? 어이가 없어서. 어딜 봐서 중년이지?”

추가된 올해. 오히려 그의 말이 계속 신경이 쓰여 동안 유지해온 머리 색을 라이트 골드 브라운에서 다크 초콜릿으로 바꿔 물들였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자를까 고민도 해봤지만,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미용실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 부동산이라고 쓰여있는 유리문에 모습을 살짝 비춰봤다. 머리에 후드티, 발목까지 오는 베이지색 치마에 흰색 양말, 금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젊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꼴사납게 보이면 어떡하지?’ 혼란스럽다. 작년보다 .

내가 생각한 중년은 50대부터였다. 그러나 씩씩거리면서 검색한 결과, 중년은 40대부터라고 정의하고 있었으니 빼빼 마른 의사가 맞았다. 어느 각도에서 바라봐도 나는 중년이었다. 아직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단어지만중년 새내기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젊음의 터널 끝을 지나와 나이 듦의 시작을 이어주는 중년이라는 나이. 마흔다섯인 내가 중년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이날을 오래오래 기다려왔다.

이십 때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하루빨리 중년이 되고 싶었다. 누구나 이룰 있는 소박한 꿈을 말하면 듣는 사람마다 의아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는 진지하게 갈망했다.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해. 당장. 큰일 났네. 정말 죽겠어. 당장 보내봐.”

무슨 일인데.”

어떡하니, 어떡해. 지금 당장 필요해. 오백만 원만 넣어봐. 미치겠네.”

오백만 ? 내가 그렇게 큰돈이 어딨어?”

어떻게 가불이라도 안돼? 엄마 지금 미치겠어.”

좁은 고시원에서 사계절을 나며 돈을 아껴도 하이에나가 무참히 뜯어가는 막을 길이 없었다. 이상 즙을 짜낼 없을 정도로 껍질만 남은 나에게 오백만 원이라니. 절절한 엄마의 목소리가 진저리나면서도 무시할 없었다. 결국 철벅철벅 갯벌에 빠진 무거운 발을 억지로 꺼내 기어가다시피 사장실 앞에 도착했다. . . . 문을 열고 들어갔을 조그마한 내가 쪼그라들어 흙탕물에 나뒹굴다 볼품없는 생쥐가 되었다. 사장이 나를 발견한 신기할 정도였다.

경미 , 무슨 일이야?”

“…….”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나는 한동안 가만히 바닥을 응시했다. 사장은 나를 뚫어지게 봤다. 아마도 퇴사 얘기를 하나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마침내 입을 벌린 순간, 온몸에 하고 금이 갔다.

가불 있을까요?”

해야 대신 벌어진 입에서 꺼억꺼억 침이 흘렀다. 아팠다. 아팠다. 참아볼수록 괴상한 소리가 났다. 온갖 동물이 한꺼번에 울면 소리와 비슷해질까. 울음을 멈추는 일은 나도 어떻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당황하는 사장 앞에서 뭉개지고 있었다.

결국 동안 육십몇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가불금을 갚았다. 그마저도 약탈을 감내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도 인생은 전속력으로 내리닫고 있었다. 참담한 심정이라는 말은 이럴 쓰는 건가. 돈이 나를 인질로 붙잡고 있었던 20대에 내가 기대할 있는 것은 시간이 빨리 지나는 것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열심히 산다면 50대의 나는 여유 있을 거야.’

이렇게 죽어라, 노력하면 50대의 나는 걱정 없을 거야.’

끈기 있게 살아내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거야.’

그때는 비로소 잘살고 있을 거야.’

지금처럼 참고 살아가면 언젠가 안에 거대한 수문이 활짝 열릴 거야. 갇혀있던 황금 물이 콸콸 소리 내어 쏟아지면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발아래 찌꺼기들을 씻으며 척박한 땅을 황금도시로 바꿔줄 거야. 그때는 하늘의 구름처럼 돈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찾아올 거야. 드디어 삶의 절정의 순간에 도착하겠지. 앞으로 험난한 고생을 해야 남은 20대와 30, 그리고 40대까지 견뎌주면 진주 목걸이를 주렁주렁 중년의 부잣집 여자가 되어있을 거야. 나는 그때야 비로소 치유될 거야. 년을 참아야 하지? 그래, 이십여 년만 참으면 거야. 그럼 거야…….’

빨리 살이 되어야

고통을 훌쩍 뛰어넘고 싶은 마음이 더없이 간절했던 나의 20. 중년의 나를 상상하며 잠드는 것만큼 안전한 현실도피는 없었다. 하나. ‘결국엔 잘될 거야. 견딜 있을 거야.’라는 초월적인 믿음만이 어두운 삶의 방파제 구실을 해내고 있었다.


드디어 거의 왔다.

다행스럽게도 나이를 향해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다. 내가 원하는 황금도시는 아직이지만, 시궁창 냄새가 나던 발아래 찌꺼기가 거름이 되어 푸르른 초록색 위에 있게 해주었다. 젊은 심어두었던 눈물은 씨앗이 되어 아름드리 수양버들 나무가 되었다. 이제 그늘에서 잠시 쉬려고 앉았다. 미풍이 분다. 그토록 원했던 중년의 모습이 갖춰지고 있는 같아 자못 감동적이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진다.

어차피 이렇게 그때도 알았더라면 여정은 가볍게 걸어올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20대의 나와 비슷한 사정의 젊은이들이 많겠지,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외면하고 싶다. 절망, 분노, 공허가 가득한 세상 한복판에 있는 이들에게어차피 이렇게 거다. 그러니 웃어도 된다.’라고 감히 말할 있을까. 희망을 준들 기운이 날까. 아직도 몇십 년을 견뎌야 올지 모를 이날의 평온함을 위해 참으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온 자의 자만이고 이기인 같아 감히 한마디도 없다.

우주에 인공위성이 일만 대가 있다지만, 지금 있는 곳이 삶의 목적지와 얼마나 떨어진 곳인지 알려주지 못하니 쓸모가 없다. 언제까지 기다리라고 말할 있을까.

내년부터는 나이로 나이를 잰다. 생일이 11월인 덕분에 아마도 내년 이맘때쯤은 마흔여섯이 아니라 의사를 만났던 나이, 마흔네 살이 것이다. 생각해보니 작년 그를 만난 운명이었다.

마흔네 살이면 중년입니다. 나이면 확실히 중년이죠.” 어쩌면 정신과 의사는 누군가의 입을 대신해서 내게 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네가 그토록 원하던 중년이야. 생각도 하고 있는 같더라. 축하해. 여기까지 왔어.’

이글이글 내리쬐어 막히던 젊음이 지나갔다. 수양버들 나무 사이로 조각조각 금빛 햇살이 비추고 투명한 바람이 분다.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본다. 삶이 차분하다. 그날이 온다. 오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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