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이유로 흉터가 생기다
분명 봄이라고 배운 4월인데 벌써 한여름 인양 땀이 삐질 났던 며칠 전 일이다. 설렁설렁 글 쓰는 시늉만 하다 탁- 타닥- 알지도 못하는 모스 부호를 흉내 내듯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이 한심해서 평소보다는 이른 시간에 퇴근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퇴근은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프리랜서를 했을 때도 늦은 편이었지만, 회사를 설립하고 대표로 있었던 지난 9년 동안 정점을 찍었다.
'사장들은 좋겠다. 놀고먹어서.' '같은 동업인데 김실장은 빨리 퇴근하네.' 이런 생각이 1도 안 들게 해야 하는 것은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만큼이나 막중한 임무였다. 나에게 그런 불명예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것으로 타인이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섬뜩해 식은땀이 날 정도다. 정신 회로에 문제가 생겨 오늘내일하다가 창업한 회사를 자의로 물러나고 나서야 스스로 옭아맨 타인의 시선과 추적당하듯이 쫓겼던 시간에서 해방되었지만 몇십 년 동안 굳어있던 근육이 쉬이 잘 펴지지가 않듯 해가 있는 시간의 퇴근은 아직도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아. 잘 나왔어. 이 시간을 즐겨>
마음의 근육을 이완시켜 주는 것이 오늘의 마지막 업무였는지 방금까지 하얀빛이었던 그녀가 감미로운 붉은 황금빛 색조로 바뀌며 따뜻하게 비춰주었다. 지하철로 향하던 발길을 잠시 멈추어 나와 같이 이른 퇴근을 준비하며 뉘엿뉘엿 지고 있는 해를 향해 서있다가 '오랜만에 엄마 노릇이나 해볼까'란 생각에 서둘러 택시를 불렀다. 대견하게도 자신의 꿈을 향해 이제는 나보다 더 바쁜 일상을 보내는 딸을 데리러 가기 위해서다. 역시 대한민국에는 안 막히는 시간이 없지. 생각보다 막힌 도로 사정에도 워낙 일찍 나온 탓에 아이가 나올 때까지 여유가 있었다. 학원 근처 신호등 앞에 있는 이디야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 그때. 상상이나 했을까. 잊고 싶었던 과거의 나와 숙명적인 만남을 갖게 될 줄을.
카페 안은 술 한잔 아니 한 병씩은 마시고 온 것 같은 아주머니 세 분만이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 시간엔 손님이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주문하기 위해 카운터로 가보니 에구머니나. 이게 무슨 일이람. 카운터 앞 기억자로 꺾인 왼쪽 공간에 사람들이 미뤘던 약속을 한 곳에 잡은 듯 꼬깃꼬깃 앉아있던 것이다.
아줌마 1 : "오야가 잘랐어야지."
아줌마 2 : "그래서 다음날 바로 잘랐잖아!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어."
아줌마 3 : "그러니까. 언니야 내 말이 뭔 말인지 알지."
카페에 들어온 지 5초도 안돼서 왜 사람들이 저 넓은 공간을 놔두고 한쪽 구덩이에 바득바득 끼어 앉아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적어도 스물네 개의 의자를 약탈한지조차 모르는 그분들은 호그와트 마법학교 출신인지 신비한 마법봉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이 작은 카페를 웅변학원으로 만들었다가, 시끌벅적한 포장마차로 변신시키고, 나중에는 전통 불한증막의 게르마늄 방안에 있는듯한 착각까지 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웅웅 거리는 소음을 피해 할 수 없이 망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노트북을 켜놓거나 평온히 책을 읽고 있었다.
분명 오랜만에 누리고 있을 자유가 방해받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동요 없이 차분히 할 일을 하는 그들은 하필 이데야에서 의형제를 맺으며 결의를 다지는 세명의 삼국지 주인공들과 대조되며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사람들로 보였다. 하긴 누군가 용기 내어 컴플레인을 한다 해도 어느 때보다 사기가 충만해 있는 그들의 말발과 위협적인 술빨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카페에 있는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뜨끈한 맥심 커피 이외의 음료는 잘 먹지 않는 나는 자리값에 해당하는 밀크티를 시키고 이재민 피난소의 남은 한자리. 선택의 여지없이 카운터 앞자리에 앉았다. 머리가 희끗한 사장이 만든 밀크티를 받아 들고 아이가 오는 동안 뭐라도 쓸 요량으로 노트북을 켜면서도 교양스럽지 않고 시시껄렁한 대화나 주고받는 세명의 아줌마들이 계속해서 떨떠름했다. 아마 적어도 내 삶에서 '오야'라는 단어를 쓸 일이 없다고 확신하는 알량한 존재의 우월감이었으리라.
그가 왔다.
진한 얼그레이 향이 진동하는 차를 입술에만 적시며 글쓰기에 집중하기를 몇 십분. 오늘은 정말 날이 아닌지 집중력은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너희 이제 집에 안 가니?" 반가운 그들의 대화에 '이제 좀 조용해지겠구나.' 안도하던 그때. 호리호리한 체격에 헐렁한 옷을 입은 젊은이가 진한 갈색 앞치마를 메고 불쑥 나타나 이제 막 나간 손님의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오는 아르바이트생인가 보다.
"누구 씨 일로와 봐."
영문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아르바이트생은 몸을 돌렸다. 머리가 희끗한 사장님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불친절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다년간 사장이었던 나는 직감적으로 불길한 기운을 받았고 그건 기우가 아니었다.
"이걸 이렇게 해야 하겠어. 안 해야겠어. 생각을 해봐."
띵땅. 스테인리스가 부딪히는 소리를 시작으로 극은 시작되었다. 아르바이트생이 기계를 잘못 작동시킨 모양이었다. 사장의 목소리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솔'음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름대로 기분을 억누르고 남의 집 귀한 자식에게 차분히 실수를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분명히 그래 보였다. 하지만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말이 길어짐과 동시에 '솔'음은 위태롭게 이탈되고 있었다. 또박또박 "네. 네."라고 대답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대답에는 거짓된 자신감과 힘없는 경계심이 묻어있었다. 겉보기에 착실해 보이는 그는 그렇게 한소리를 듣고 나서 잠시 한숨을 돌리듯 내 근처. 내가 보기에는 깨끗해 보이는 테이블을 다시 닦기 시작했다. 내 느낌인지 몰라도 그의 허리가 더 구부정해진 것 같았다. 혹여나 머쓱할까 알바 생쪽으로는 미동도 하지 않은 체 가뜩이나 굽어진 내 거북목을 더 뽑아 간신히 몇 줄 쓴 텍스트에 집중하는 척했다. 아쉽게도 평화는 얼마 지속되지 않았다. 그는 "이로 와보세요."라는 사장님의 짧은소리에 아예 체념하며 마른행주를 접었다. 카페의 바닥은 분명 에폭시로 마감되어있는데 어디선가 삐걱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너보다 2주 늦게 시작한 애는 벌써 이거 다 끝냈어."
"이거 하는 순서 말해봐."
사장은 이왕 시작한 김에 그동안 참았던 감정을 한꺼번에 꺼내어 몰아붙이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전개되는 상황이 점점 극의 하이라이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밀을 하나 말하자면 나에겐 속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온 신경을 집중하면 상대방의 세포 하나하나를 읽을 수 있고 그 사람이 멀리 있다 해도 그것은 통했다. 믿지 않을진 모르지만 이런 신비한 재능으로 밝혀진 사장의 마음은 이랬다.
<나는 감정을 빼고 팩트를 말하고 있어. 알잖아. 나는 꽤 합리적인 사람이야.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 너도 내가 많이 참고 있었다는 거 인정하지?> <백번 참고 지금 한번 말하는 거니까 나는 죄책감이 들 필요 없어. 나는 카페를 위해서 할 일을 하는 거야.> 사장 속마음이 기세 등등하다.
"티는 몇 종류가 있지?"
"이것은 왜 여기 있는지 알아?"
"잉글리시 블랙퍼스트가 밀크티를 만들 때 쓰는 거야."
"이건 거품기라고 해."
"내가 제조된 양이 모자라면 얼음량으로 조절하면 돼."
"이거 만드는 순서가 어떻게 되지?"
그 순간 카운터는 경계가 아주 삼엄한 지역의 바리케이드로 변했고 사장은 군부대 검문소 담당자 같았다. 감정 없는 표정으로 뭔가가 나올 때까지 차 안을 뒤지는 그들처럼 사장은 알바생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며 빠져나오지 못할 덫을 계속 놓고 있었다. 긴장감이 감돌고 상황은 훨씬 심각해졌다. 관음증이 있는지는 몰라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느껴져 독일산 셰퍼드처럼 귀를 쫑긋 세웠지만 "언니야 내 말이 뭔 말인지 알지"의 소음이 오토리버스처럼 반복되는 바람에 그들의 대화를 놓쳐버렸다.
알바생은 왜 아직 제대로 못하는 거지? 궁금증이 들어 이디야 메뉴판에 눈을 돌렸다. 각각을 떼어놓고 보면 50가지가 넘는 생각보다 방대한 메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사장은 풀기 힘든 암호 같은 레시피를 줄줄 말하며 알바생과 그저 손님인 나의 정신까지 혼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걸 어떻게 다 외우라는 건지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감히 도전할 수도 없는 일 같았다.
"왜 계속 틀리냐고! 아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고!"
사장은 결국 화를 내기에 이르렀다. 보이진 않지만 사장 머리에 뿔이 돋은 게 분명했다. "다시 순서대로 얘기해봐!"라는 단호한 말에 아르바이트생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얼음 넣고, 얼음 넣고.." 같은 말을 우물거리며 반복하고 있었다. 그 순간 불안에 사로잡힌 것은 아르바이트생만이 아니었다. 궁지에 몰려 옴짝달싹 못할 바에야 사장을 향해 눈을 번득이며 독침을 뱉어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지켜보는 나로서도 더없이 긴장된 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필 얼마 전에도 이런 일을 겪었다. 얇은 판막이로 막혀 있는 공용 사무실 벽 건넌방에는 사장으로 보이는 이가 일하고 있었다. 소리에 민감한 나는 운이 좋게도 평소에는 몇 번의 전화통화 빼고는 하루 종일 내 신경을 건드릴 일없이 조용한 이웃을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날은 전혀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아니 왜 이렇게 화나게 해.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이게 힘들어? 말이라도 해봐. 변명이라도 해보라고. 아니 이런 일도 안 하고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입장 바꿔 생각해봐. 내가 할 말이 없잖아."
아마도 다른 인격을 입고 출근했는지 평소 조용하던 남자는 전화기에 대고 불을 내뿜고 있었다. 일방적인 대화를 텍스트로 쓰다 보니 서슬이 퍼렇게 느껴지겠지만 실제로 들은 그 사람의 어투는 오히려 황망하고 슬픈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기관총을 쏘는 것처럼 다다다- 쏘아붙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변명조차 하지 않는 전화기 너머 그 사람은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판막이 건넌방 주인 생각이 꼬리를 물던 그때. 카페 안으로 손님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왔다. 이 상황을 끝내 버리고 알바생을 구출하기 위한 대규모 원정대가 파견된 것 같았다. 덕분에 바리케이드 안의 검문은 일시 중지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이건 찬물에도 잘 녹으니까 너무 정성껏 젖지 않아도 돼."
"이걸 빨리 해야지 다음 손님 기다리잖아."
마치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흐릿한 눈동자와 불확실한 아르바이트생의 손끝을 보고 사장은 더 작은 소리로 읍소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몇 명의 손님들이 더 들어와 마음을 졸이던 사장은 뻣뻣이 굳은 채 잘 움직이지 않는 아르바이트생의 몸짓까지 초단위로 조절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냥 내가 하는 거 봐."
결국 사장은 본인도 원하지 않았을 직원의 멘털을 갉아먹는 약탈자 역을 포기했다. 그제야 모두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잠금장치를 제거한 수류탄
주문이 많이 밀린 바람에 커피를 뽑는 기계음의 소란함이 계속되었다. 반복되는 같은 파동의 기계음이 나를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마침내 저 사장에게 나의 모습이 투영되려고 하자 깊숙이 넣어 두었던 아픈 기억들이 검은 날개를 뻗쳐 내 주변을 정신없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네가 그만둔 회사의 사장들은 어떻게 다 너를 좋아해?"
직장을 그만둘 때마다 필요한 인력을 구하지 못한 회사는 주변 프리랜서를 소개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때마다 친구 여진이가 많이 도와주었다. 여진이는 나의 전 직장에 나가서 며칠 일을 하거나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장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내가 너무 신기했는지 이렇게 물어보곤 했다.
나는 많은 부족함을 갖고 있지만 오직 일에 있어서 만큼은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훈장처럼 생각하고 불도저처럼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일을 한번 시작하면 휴식이란 없었고 스스로 쉽게 만족하지도 않았기에 자신에게도 참을성 없이 닦달하고 몰아붙이길 잘했으니, 짠 연봉으로도 이렇게 일한 나를 그들이 싫어할 리 만부 하지 않은가. 그래도 무언가를 잘한다는 것은 수많은 돌덩이 사이에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이 사는 이유였기에 긍정적이기까지 했으니 세상 이런 직원이 없을 거라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였다. 이런 내가 가장 높은 자리라는 사장이 되었으니 회사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처음 회사를 설립한 사장의 마음이 그렇듯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고리타분한 방식은 집어치우고 요즘식의 자유로움을 표방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원들이 나의 성향처럼 일해주었을 때의 얘기였다. 20년 경력의 노련함을 이제 막 시작한 친구에게 바라는 건 얼토당토 하지 않지만 내 입장에서만 보자면 얘기했던 것과 희한하게 전혀 다른 작업물을 내는 어떤 직원의 작업은 도통 이해하기 어려웠고, 부족하면 노력하면 될 것을 그렇지 않아 보이는 모습은 나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카페 사장처럼 시간이 없으니 가져와 신규 같은 수정을 하는 일이 반복되기라도 하면 나는 잠금장치를 제거한 수류탄으로 변신했다. 그럴 때마다 내 성격을 아는 공동대표들이 서둘러 다가와 잠시 나가서 바람 쐴 것을 권유했다. 그럼 억지로 걸음을 옮겨 폭발물을 속으로 삭히고 원시적 충동을 다스리고 들어오길 반복했었다.
특히 시간관리를 능률적으로 하기 위해 질서 정연함을 유지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통제'였다. 반성적 고백을 하자면 내 진두지휘 하에 모든 전열이 착착 가다듬어지는 짜릿한 쾌락에 빠졌다. 통제의 객관적 성공은 또 다른 이면에 있던 독선적인 인격을 휴면 상태에서 깨어나게 한 것 같았다. 한참 뒤에서야 직원들의 기분까지 통제하려 드는 나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본 후 스스로에게 질려버렸다. 애초에 갖었던 헌신적이고 싶은 마음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노력하고 싶은 마음은 통제의 과욕에 다 사로 먹혀 버렸고 그렇게 스스로를 지옥불에 빠뜨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잘해줬는 데를 시전 하며 좁고 깊숙한 골짜기에 있는 것처럼 소외감에 몸서리치며 자기 연민에 빠졌던걸 보면 사람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아니면 나만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나를 보는 것 같아 납량 특급 스릴러보다 더 무서운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프로그램은 보스들의 자발적 자아성찰 프로그램을 표방한 프로그램이다. 예전에 어떤 직원이 그 프로그램에 나가보라며 웃으며 대화했던 기억이 있다.
"사장님도 성공했으니 '사장님 귀는 당나귀'에 나가 보세요~"
"에이. 지금도 욕 많이 먹고 있는데 굳이 거기까지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웃으며 대답한 말에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의 반응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갸우뚱 거리는 그녀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오버스러워서 잠들기 위해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도 계속 그녀의 표정이 맴돌았다. 그녀는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그 표정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한참 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프로그램을 그녀의 말이 떠올라 용기 내어 시청하기로 했다. 패널들과 시청자를 기겁하게 만드는 휘황찬란한 갑질을 하면서도 당사자인 사장은 느끼지 못하는 답답함이 나를 보는 것 같아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던 중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드디어 그녀의 오묘한 표정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 것이다.
'너의 모습을 네가 객관적으로 한번 확인해봐!' '
네가 얼마나 갑질을 하고 있는지 평가받아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던 것이다. 몇 분 뒤 그녀가 오묘한 표정을 지은 이유까지도 들리기 시작했다.
'너도 네가 욕 많이 먹는지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도 그래?'
나의 신비한 능력이 이번에는 꽤 늦게 작동했다. 그녀 입장에서는 통쾌하게, 내 입장에서는 보기 좋게 한방 먹은 샘이지만 짜증은 날지언정 억울하지 않아야 한다.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프로페셔널한 밝은 목소리로 응대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목소리에 넋 놓고 있던 정신이 깨어나며 검은 날개 덩어리를 사방으로 날려 보냈다. 후후. 깊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날의 나와 이별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사장과 알바생은 아직까지 아무 말이 없어 보였다. 두 입장을 모두 겪었기에 직원에게도, 사장에게도 유대감이 동시에 들었다. 서로가 필요에 의해 공생하는 관계인데도 그 둘의 이해를 합치는 것은 종교를 융합하는 것만큼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을 거다. 지금 이디야 아르바이트생이 남보다 늦게 커피를 만든다고 해서, 찬물과 뜨거운 물의 순서를 틀렸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닐 테지만 사장 입장에서도 하루하루가 생존이기에 자애롭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이유로 흉터가 생긴다. 어쩌면 인생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데스 게임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아 기력이 바닥날 때 즈음 딸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딸은 매력적인 드라마 주인공이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열일곱 살이 되면 알바를 해서 용돈을 벌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가당찮은 판타지의 힘이다. 이제 막 도착해서 모라도 먹을까 메뉴판을 바라보는 딸에게 무정하게도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 하아. 드디어 이 공간을 떠난다. 입술만 닿은 밀크티를 그대로 남겨놓고, "내 말이 뭔 말인지 알지."라는 말을 절대 쓰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다음에 아이를 데리러 가더라도 그 커피숍은 적극 피하고 싶다.
'그 카페 아르바이트생은 오늘도 출근했을까?'
괜히 그 카페를 선택해서 엄한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올해를 통틀어 가장 불편했던 순간이었지만 나에게 상처받은 직원을 보는 것 같아 며칠 내내 그 아르바이트생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사장에게 무자비한 테스트를 몇 주째 받고 있는 그 카페 아르바이트생은 오늘도 출근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지 않아 이데야 알바 후기를 찾아 읽어봤다. 정성스레 적힌 블로그에는 이디야 레시피는 다른 카페에 비해 비교적 쉬운 편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렇다면 사장 말대로 그는 레시피만큼은 낙제생이 맞았던 걸까.
바닐라라테에서 '닐'을 '일'로 바꿔 파우더 '한 개'를 넣는다.
에이드는 중간에 '이'를 기억하고 '두 번' 넣는다.
블로그 주인은 이런 식으로 응용해서 외우고 있었다. 요령이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이 블로그를 그 청년에게 전달해준다면 돈이 필요해서 구했을 알바 자리를 좀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지는 않을까. 주책스런 아줌마의 참견은 거기까지였다.
지금이야 방관자로서 모든 상황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너무 큰 차이가 있기에 과거를 씻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사장이 된다고 해도 괜찮은 사장 노릇은 더 이상 자신이 없다. 나를 안다.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는 웬만한 정신을 부여잡고 있기 힘들어 언제든 제정신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타인과 함께 살아갈 지혜와 인격은 어떻게 해야 성장하는 걸까. 나는 왜 그것이 그토록 참기 힘들까.
수줍게 고백하자면 나의 마지막 꿈은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지만 타인과 일하며 다시 상처를 주고받다가 고통스럽게 자른 뿔이 다시 재생되어 튀어나오는 나를 상상하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싶다.
남에게 상처 주는 것을 멈추고 싶다. 타인에게 상처받는 것은 더더욱 싫다. 결국 당분간은 외로움을 빙자한 안정감을 느끼며 혼자 앉아 글을 쓰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제일 안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