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길'에 대해 생각해보다
2023. 7. 31. 막 잔지바르를 떠나 남아공에 도착했을 무렵 잔지바르에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고 글로 남겼다.
'잔지바르앓이'라고 스스로 부를 정도로 임팩트가 무척 컸던 매력적인 곳이었다.
내 최애 여행지는 항상 바뀌는데, 늘 최종 여행지가 가장 좋았다… 남아공 막 도착한 참이라 아직까진 잔지바르가 최애.
참 요상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전반적인 시설이나 인프라가 거의 없다시피 하여 자연과 일상의 공간의 경계가 모호하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생생한 자연을 느낄 수 있다. 휴양지를 찾아 이 곳에 온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투어상품을 판매하러 들러붙던 삐끼들도 조금 귀찮았지만 그립다.
오래 있을수록 많이 보이고, 많이 보일수록 더 궁금해지고 정이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신혼여행 97일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잔지바르가 당분간 최애 여행지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게 뭐냐고 묻는다면, 잔지바르 와서 가장 먼저 머물렀던 능귀의 해변 가는 비포장 길. 흙이랑 커다란 돌이랑 뒤섞여 있고 굉장히 울퉁불퉁한 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건 내게 새삼스러운 사실을 번뜩 생각나게 해줬다. 내가 한국에서, 우리의 일상의 공간에서 다니던 길은 다 사람이 다듬고 정돈하고 가꿨기 때문에 평탄하고 깔끔하고 편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이런 흙길을 최근에 내가 본 적이 있나? 한국에도 산이나 정말 깊은 시골 가면 비포장 길도 있지만 요즘은 산이나 시골에도 포장된 길이 많다. 나 어릴 때, 90년대의 벌교를 떠올려봤다. 아무리 비포장 길이더라도 얼추 고르게 평탄화 작업이 된 길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정말 자연 그대로인채로 사람과 동물과 바퀴의 흔적만 단단하게 쌓여있는 흙돌길은 내 인생에 그닥 보지 못한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조금 충격이었다. 내가 살면서 그런 길을 본 적이 있다면 산에서 봤던 흙길이 가장 비슷한 것 같다.
길은 원래 길이 아니구나.. 그렇지. 그랬겠네..
지구가 생겨나고 바다나 산 같은 환경들이 만들어지고.
생물이 번식하고 환경이 또 바뀌고.
또 다른 생물들이 번성하고 멸종하는 걸 반복하다가 어느새 사람이 출현하고.
사람이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그게 패턴이 되면서나 최초의 길이라는게 만들어졌겠네…
정착생활을 하고 자주,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은 그렇게 단단하게 다져지고.. 바퀴의 발명 이후엔 더 편리하게 오가도록 돌도 추려내고 웅덩이도 메꾸고 길도 더 확장시키고..
그렇게 길이란 게 사람의 손길에 의해 가꿔져 갔겠네.
이런 생각을 곱씹다 보니 ‘길’이라는게 참 흥미롭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생활 공간과 아닌 곳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데다, 일상의 포장길과 흙길을 같은 ’길‘의 카테고리 안에서 인식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길은 내 일상에서 발견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잔지바르에서 일상의 공간인 마을에서, 그것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 해변 마을에서 바위가 흙 바닥 속에 박혀 있고, 조심히 걸어야 하는 거칠고 자연스러운 길을 걷게 되니 이분화 된 두 이미지가 부딪치며 내 머릿 속의 “길”이라는 개념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시원한 경험을 했다. 이게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찌나 걷기 힘들었던지, 사진 찍을 생각도 못하고 조심히 걸었다. 덕분에 그 거친 첫 인상은 머릿 속에만 남아 있는 걸로… 그나마 찍은 사진들은 걸을만하니 찍은 것들 뿐이다.
잔지바르에서 인상 깊었던 것들은 또 차차 기록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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