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찬란하고도 찌질했던
계절의 시작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던 나이 속으로.

by 한자루




나는 국민학교를 막 졸업하고 열네 살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열네 살은 어리다고 하기엔 너무 크고, 다 컸다고 하기엔 한참 모자란 애매한 나이였고, 어른과 아이 사이의 비무장지대 같은 나이였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시절의 기억은 가끔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희미하다.

내가 자란 곳은 서울의 행정구역이 끝나는 지점이자, 경기도의 논밭이 시작되는 애매한 경계였다.

사람들은 그곳을 도시에서 밀려난 것들과 시골에서 놓치고 온 것들이 어정쩡하게 쌓여 있는 곳이라 말하곤 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의 그 동네는 나에게는 우주의 중심과 같았다.

갓 구워낸 붕어빵의 냄새와 주유소의 매캐한 기름 냄새, 그리고 골목을 하얀 안개의 미로로 만들며 사라지던 소독차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다정한 풍경으로 얽혀있는 찬란한 은하계였다.

내 이름은 정서진, 단군 이래 가장 시끄러웠던 그해 봄, 지구를 지키던 로보트 태권 V의 명랑한 주제가를 버리고,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는 영웅본색의 비장한 총성으로 향하는 문턱에 서 있었다.


1988년의 대한민국은 들떠 있었다.

뉴스에선 새 정부가 들어섰다는 내용과 금리가 내리고 경제가 좋아졌다는 기사 났고, 대학 가에서는 대학생들이 호헌 철폐와 직선제를 두고 열띤 이야기를 했다.

텔레비전에선 호돌이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를 외치며 온 나라를 올림픽 열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닥친 진짜 재앙은 따로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 할머니가 떡볶이 한 접시를 150원에서 200원으로 전격 인상한 사건이었다.

그 50원의 인상은 나의 매콤 달콤한 마지노선을 파괴하는 대재앙이자, 국가 경제의 호황과는 상관없는 경제의 절망이었다.

시대의 소란함과 떡볶이의 비극 사이에서, 열네 살이 된 나에게 중요한 건 딱 두 가지였다.

중학교에 간다는 것. 그리고 옆집 사는 다연이었다.


일요일 오후, 나는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TV 앞에 엎드려 있었다.

'동물의 왕국'이 방송되고 있었다.

나는 성우 아저씨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내일, 중학교라는 이름의 야생으로 끌려가야 한다는 공포를 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아프리카 초원이 작은 TV 화면 전체를 채웠다.

해설자가 말하는 밀림의 초원은 내 방바닥보다도 더 평평해 보였다.

이제 어린 누우는 홀로 서야 합니다. 뒤를 돌아봐도 어미는 더 이상 도와주지 않습니다.

화면 속 성우 아저씨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그때 부엌에서 엄마의 하이톤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정서진! 너 TV에서 안 떨어져? 안경 쓰게 되면 안경값은 네가 벌어서 낼 거야? 그리고 맨날 티비만 보면 대학은 어떻게 가려고 그래?”

엄마는 내 시력과 6년 뒤의 대학 입학, 그리고 가계 경제를 연결 짓는 경이로운 통찰력을 지니셨다.

나는 “응.” 하고 대답했지만 내 머릿속은 안경값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

80년대 어머니들에게 교복이란 의류가 아니라 부동산에 가까웠다.

3년 내내 입어야 한다는 경제적 신념 아래 구입한 교복은 내 몸보다 두치수는 컸다.

그건 옷이 아니라 나를 집어삼키려는 검은 텐트처럼 보였다.

“엄마만 믿어. 넌 아빠 닮아서 금방 큰다니까. 내년이면 딱 맞을 거야. ”

그렇게 말씀하시던 엄마는 나의 성장보다는, 내년의 물가 상승률을 걱정하신 게 분명했다.


그때, 옆집 현관문이 철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다연이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심장은 8비트 컴퓨터에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버렸다.

잠시 뒤,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도 왔습니다.” 다연이의 오빠, 태경이 형의 굵직한 목소리였다.

태경이 형은 스무 살이었고, 우리에게 ''함의 정의 그 자체였다.

사실 태경이 형은 우리 동네에서 외계인 같은 존재였다.

동네에서 유일한 명문대학교 학생이라는 것부터가 그랬고, 철학과라는 건 더더욱 그랬다.

어렸던 내 눈에도 철학이란 단어는 취업 안됨의 고급스러운 동의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형, 철학과는 뭐 하는 데야?” 내가 언젠가 형에게 물었을 때 형은 웃으며 대답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그게 왜 쓸데없는지도 생각하는 쓸데없는 데."

그때는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린가 싶었지만, 왠지 멋있어 보여서 더는 묻지 않았다.

태경이 형은 머리를 길게 길렀고, 옷도 평범하지 않았다.

청바지는 늘 무릎이 해져 있었고, 빛바랜 티셔츠 위에는 덥수룩한 수염의 사내 하나가 강렬한 눈빛으로 세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그 얼굴의 주인이 체 게바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 나에게 그 그림은 혁명의 상징이라기보다 그저 태경이 형이라는 미지의 존재를 완성해 주는 기묘한 상징처럼 보였다.
태경이 형의 엄마는 가끔 이런 말을 했다.

“그렇게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하니?”

형은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 사람들은 원래 다 뭐라 해. 그게 그 사람들 나름의 철학이거든.”

그리고 형은 자주 집을 비웠다.
그러면 다음 날 텔레비전 뉴스에서 대학교 앞 시위 장면이 나오곤 했다.


태경이 형의 뒷주머니에는 늘 얇고, 모서리가 닳은 어린 왕자 책이 꽂혀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형. 그거 재미있어?”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형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릴 때 읽으면 동화 같고, 지금 읽으면 좀 슬퍼. 너 한번 읽어볼래?”라며 나에게 책을 내밀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얼떨결에 그 책을 받아 몇 장을 넘겨 보았다.

다행히 책은 두껍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림이 많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형의 쿨함을 완성시키는 끝판왕은 형이 클래식한 간지가 줄줄 흐르는 81년식 혼다 CB250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 오토바이는 고장난지 오래되어 더 이상 굴러가지는 않았다.

형은 항상 시간이 나면 마당으로 그 오토바이를 끌고 나와 고치고 있었다.

손에는 땀과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었고 그러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이마를 닦는 모습은 정말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해 6월, 태경이 형은 군대에 갔다.

하지만 오토바이는 여전히 앞마당에 수리용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고, 그것은 우리 동네에서 누가 진짜 ‘형님’인지 보여주는 상징 같은 것이었다.


이제 어미는 더 이상 새끼를 돌보지 않습니다. 어린 개체는 홀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TV 속에서 성우의 내레이션이 계속 이어졌다. 바로 그 순간 현관문이 쾅 열렸다.

나보다 두 살 많은 형, 정영진이다. 형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천적이자 복병이었다.

형은 마치 먹이를 본 포식자처럼 나에게 달려들어 어깨를 툭 치며 달려들었다.

"야, 정서진. 너 내일 중학교 가면 진짜 끝장인 줄 알아라. 저기 나오는 사자들보다 더 무서운 형들이, 동물의 왕국이나 보면서 침 흘리는 너 같은 좁밥은 1km 밖에서도 냄새로 알아채거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동물의 왕국이 어때서?”

형이 피식 웃었다.

“야, 저 새끼 누우 좀 봐. 몇 발짝 가놓고 계속 뒤 돌아보는 게 딱 누구랑 닮았네.”

나는 “누구?” 하고 물었다.

아차차... 묻지 말았어야 했지만 이미 형의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었다.

“저거 봐봐. 몇 발짝 가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지? 자꾸 뒤가 켕기는 거야. 다연이가 지나갈 때 너랑 똑같은데?” 형은 대어를 낚은 강태공처럼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신이 나 있었다.

"너, 아까 다연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니까 귀가 쫑긋하더라. 내가 다 봤다. 야. 그냥 가서 '다연아. 나 내일 중학교 가는데 너무 무서워. 뽀뽀 좀 해줘.' 하고 부탁이라도 해봐. 하하하"

"아, 닥쳐. 아니라고!!"


다연이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먼 과거부터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이정표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같은 담벼락을 공유했고, 같은 국민학교를 다녔으며, 때로는 같은 반 책상에 앉아 같은 공기를 마셨다.

물론, 우리 사이엔 소소한 사건도 있었는데, 아마 여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해 질 녘 골목 어귀에서 소꿉놀이를 하다 벌어진 그 짧고도 황홀했던 사고 같은 입맞춤 사건.

하지만 아홉 살을 기점으로 우리 사이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세워졌다.

말을 섞는 일은 드물어졌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서로의 발끝만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통 방식이 되었다.


“누가 뭐래?” 형은 혼자 신이 나 있었다.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혼자 흥분하고 난리네.”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뭐라고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형은 한 번 더 TV를 보더니 마지막으로 못을 박듯 말했다.

“야, 솔직히 말해봐. 너 다연이 좋아하지?”

나는 “아니라니까!”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형은 이미 결론을 내린 얼굴이었다.

“그러면 뭐냐... 형님이 조언 하나 해주지.”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야, 인생 그렇게 복잡하게 살 거 없어. 그냥 가서 빡 하고 입술 도장 한 번 더 찍으면 상황 종료야. 그날로 바로 다연이는 너의 여자친구가 되는 거라고. 이 형님의 연애 전술은 말이지, 백전백승의 실전 데이터에서 뽑아낸 아주 귀한 정보니까 토 달지 말고. 내 덕분에 인생에 봄날이 오면, 상담료는 계란 두 개 넣은 라면 한 그릇으로 깔끔하게 퉁쳐줄게.”

그때 부엌 쪽에서 엄마 목소리가 날아왔다.

“영진아!” 형이 고개를 들었다.

“동생 놀리면 못 써. 어서 씻고 밥 먹을 준비해라.”

형은 “그래도 넌 좀 심하게 찌질하긴 하지. 내가 다연이라도 너한테는 끌리지 않을 것 같긴 하다.”라고 마지막 펀치를 날리며 방으로 사라졌다.

아마 엄마가 한소리 하지 않았다면 형의 놀림은 저녁 뉴스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을지도 모른다.

보통, 형과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끝났다.

TV 속 성우의 내레이션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어미는 새끼가 떠나는 순간을 지켜보기만 합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말이 어쩐지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엄마, 오늘 아빠가 많이 늦네요?” 형이 저녁상을 치우는 엄마에게 물었다.

“내일 바이어와 미팅이 있어서 준비해야 한다고 나가셨잖아. 일요일에도 출근했으니 많이 피곤하실 거야.”

오늘따라 엄마의 식탁 정리가 유난히 조용했다.

엄마는 접시를 포개며 형과 나를 번갈아 한 번씩 봤다.

그 눈빛은 설명이 아니라 부탁에 가까웠다.

“오늘은 저녁은 아빠가 편히 쉬게 해 드리자. 서진아 뉴스 좀 틀어봐라. 시위가 심한가 보네. 차가 많이 막히려나..."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 서울 도심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시위가 이어졌고, 경찰과의 충돌로 주요 도로가 한때 통제됐습니다.

화면 속에서는 헬멧을 쓴 전경들과 피켓을 든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잠시 후 철컥하며 현관문이 열렸다.

“왔다.” 아버지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도 이 한마디뿐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아버지들은 밖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역군이었지만, 집에서는 침묵의 기적을 시연하는 마술사들이었다.

그들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권위를 세웠고, 침묵함으로써 가장의 무게를 증명했다.

아버지는 신발을 벗고,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고, 넥타이를 아직 풀지 않은 채 거실을 가로질러 걸어왔다.

그 걸음걸이에는 하루치 최루탄 냄새와 만원 버스의 피로, 그리고 이름 모를 상사에게 굽혔던 허리의 뻐근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왔어요?” 엄마가 물었다.

아버지는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차가 한 시간이나 안 움직이더라.”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그 짧은 한마디에 모든 정보가 들어 있었다.

'길이 막혔고, 시위가 있었고, 나는 지금 무척이나 피곤하니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마라.'

아버지는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작은 소주잔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형은 그걸 보고 TV 볼륨을 낮췄고, 엄마는 조용히 저녁 식사 때 덜어 놓은 김치찌개를 데웠다.

나는 TV를 보는 척하면서 아버지를 흘끔흘끔 봤다.

아버지는 뉴스도, 우리도 보지 않고 탁자 위에 소주잔만 보고 있었다.

“오늘은...” 엄마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버지가 말했다.

“괜찮아.”

그 말은 괜찮다는 뜻이 아니었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때,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형이 눈치 없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빠, 서진이 내일 중학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서슬 퍼런 눈빛이 형의 입술에 꽂혔다.

형은 즉시 입을 다물었고, 거실엔 다시 무거운 진공 상태가 찾아왔다.

아버지는 소주잔에 소주를 한잔 따른 후 다시 물끄러미 소주잔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일했고, 우리를 먹여 살렸으며, 그 신성한 노동의 대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듯했다.

우리의 역할도 명확했다.

아버지가 소주 첫 잔을 다 마실 때까지 아무 말도, 아무 질문도, 아무 감정도 꺼내지 않는 것.

우리는 아버지가 소주 첫 잔을 넘기길 숨 죽여 기다렸다.

아버지가 드디어 잔을 비웠다.

“으으음-”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아버지의 미간이 살짝 펴졌고, 그제야 거실을 짓누르던 납덩이같은 공기도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창틀에 턱을 괴고 앉아 차갑게 내려앉는 골목의 어둠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날들은 요란한 폭죽 소리 대신, 지독할 정도의 고요함으로 우리를 인생의 다음 단계로 밀어 넣기도 했다. 나는 벽면 옷걸이에 걸린 내 생애 첫 교복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내가 내년이면 기아자동차의 한기범 선수만큼 클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가득 차 계셨지만, 덕분에 나는 두 치수나 큰 교복을 입고 중학교라는 야생에 들어갈 운명이었다.

이 거대한 텐트 속에 갇힌 꼴로 다연이와 마주 칠 생각하자, 차라리 아까 TV에서 본 누우 떼가 우리 집 거실을 가로질러 나를 짓밟고 지나가 주길 바랐다.

야생의 누우 떼에게 밟혀 죽는 것이, 짝사랑하는 소녀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몰골로 서 있는 것보다는 훨씬 존엄한 죽음일 테니까.

하지만 시간은 내 자존심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갔다.

TV 속 새끼 누우가 악어가 득실거리는 강을 건넜던 것처럼 나도, 내일 아침 선진운수라는 파란색 글자가 박힌 153번 버스를 타고 선정중학교를 향하는 강물에 몸을 싣게 될 것이었다.

그 강 너머에 굶주린 사자 떼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면 푸른 초원이 펼쳐질지 모른 채로 말이다.

그렇게 나의 열네 살, 그 찬란하고도 찌질했던 계절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