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룻밤 사이에
다른 종족이 되어버린 소녀

입학식 아침

by 한자루




저기 정류장 앞, 삐딱하게 서서 카세트 플레이어 요요의 이어폰을 한쪽만 꽂고 있는 저 녀석은 내 절친, 박기남이다.

기남이는 홍콩 코미디 영화 속 주인공같이 실속 없는 허세로 무장한 녀석이었다.

국민학교 6년 내내 주산 학원에 다녀서 그런지 산수하나는 끝내주게 잘했지만 다른 과목은 완전 젬뱅이 었다.

기남이는 중학생이 된 기념으로 아버지가 사준 ‘타이거’ 운동화 대신,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굽 높은 영에이지 구두를 신고 있었다.

“야, 정서진. 이거 한번 들어볼래?”

정류장에 먼저 와 있던 기남이가 나를 보자마자 대뜸 자기 허리춤을 가리켰다.

그곳엔 대우전자에서 야심 차게 내놓은 카세트 플레이어, 요요(Yo-Yo)가 당당하게 매달려 있었다.

은색 락카를 대충 칠한 듯한 투박한 몸체 위로 AUTO REVERSE라는 문구가 금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기남이는 오렌지색 솜이 씌워진 이어폰을 한쪽만 낀 채, 마치 홍콩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나는 가방끈을 꽉 쥐고 있던 손을 풀고, 마치 전설 속의 유물을 발견한 고고학자처럼 입을 벌린 채 녀석에게 다가갔다.

“야... 야, 박기남! 이거 진짜 요요 맞냐? 그 광고에서 보던, 뒤집지 않아도 노래가 계속 나온다는 그... 오토 리버스?”

나는 녀석의 허리춤에 코가 닿을 정도로 몸을 숙였다.

기남이는 내 오버스러운 반응에 만족한 듯,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요요의 뚜껑을 딸깍 열어 보였다.

“에헴, 뭘 이 정도로 놀라고 그러냐? 이게 바로 중학생의 품격이라는 거다. 잘 봐봐. 이 테이프 돌아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지? 이게 바로 대우의 기술력이라는 거란 이 말씀이지.”

사실 그 안에서는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지 않아 끼익- 끼익- 하는 쇳소리가 비명처럼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우리에겐 그 소음마저도 도시의 세련된 비트처럼 들렸다.

“야, 기남아! 한 번만... 이어폰 한쪽만 줘봐. 한 번만 들어보자. 나도 스테레오로 노래 듣는 게 소원이었거든. 진짜 이거 끼면 세상에 나랑 음악, 둘만 남는 기분이야?”

기남이는 선심 쓰듯 오렌지색 솜이 씌워진 이어폰 한쪽을 내게 건넸다.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모터 돌아가는 진동이 뇌세포까지 전달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지지직거리는 소음을 들으며, 우리가 드디어 어른들의 세계에 한 발짝 발을 들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을 듣다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기남이를 보며,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 것으로 의심되는 헐거운 영에이지 구두가 과도하게 커 보였기 때문이다.

벗겨질 것 같은 위태함과 싸우며 발가락에 엄청난 힘을 주며 꼼지락 거리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기남아, 근데?... 그 신발 네 것 맞냐? 니네 아버지 구두 신고 온 거 아니야?”

“얌마. 넌 아직 여백의 미를 모르는구나. 신발을 여유 있게 신어야 키가 크는 법이야. 내 180Cm 키를 위한 예약 같은 거지. 좀 넉넉한 신발을 신어야 키가 큰다는 과학적 원리를 어디서 읽었거든. 근데... 솔직히 아까부터 발가락 끝에 감각이 없긴 하다.”

기남이는 까치발을 들며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모습이 우습게 보였지만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비웃을 수 없었다.

내 바지 밑단은 이미 정류장의 모든 먼지를 청소하며 지나가는 중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이라는 과정을 견뎌내고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 야야. 저기 다연이 아니야?”

기남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봄바람을 타고 다연이가 슬로우 모션처럼 내게로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 햇살은 다연이의 머리카락 끝에 걸려 부서졌고, 교복은 다연이를 위해 맞춤 제작된 화려한 드레스처럼 눈부셨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나는 이 촌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아니 이 먼지투성이 서울 변두리에서 가장 운이 좋은 녀석이라고 말이다.

이 눈부신 아침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나와 내 옆집 친구 다연이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보다 더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 진짜네. 다연이네.”


어떤 아이들은 자라면서 천천히 변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하룻밤 사이에 다른 종족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어제까지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던 꼬맹이 다연이는 간데없었다.

하얀 칼라가 빳빳하게 선 교복을 입은 다연이는, 마치 흑백 영화 속에서 방금 걸어 나온 여주인공처럼 정류장의 지저분한 풍경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아... 다연이가 고개를 들어 우리 쪽을 보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예쁜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피어올랐다.

다연이가 나타나는 순간, 기남이의 요요는 약속이라도 한 듯 철컥! 소리를 내며 멈췄다.

오토 리버스 기능이 작동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조악한 기계는 반대편 노래를 틀어주는 대신 테이프를 우적우적 씹어먹기 시작했다.

기남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나는 내 소매 속에 숨긴 손을 어쩌지 못해 쩔쩔맸다.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는 그렇게 지지직거리는 소음과 씹혀버린 테이프, 그리고 너무 큰 교복 사이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안녕, 서진아. 어? 기남이 너... 카세트 플레이어 샀어?”

다연이가 웃으며 다가왔을 때, 기남이는 필사적으로 요요를 등 뒤로 숨기며 대답했습니다.

“어? 아... 이거? 그냥... 영어 공부를 시작해 볼까 해서 말이야. 하하.”

하지만 운명은 늘 잔인하다.

기남이가 애써 웃어 보일 때, 녀석의 등 뒤에선 끼이익 하는 테이프 꼬이는 소리가 정류장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곧 다가올 우리들의 사춘기가 결코 매끄럽게 돌아가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경고음 같기도 했다.


그때, 정류장의 공기를 가르는 요란한 웃음소리와 함께 영진이 형이 나타났다.

형은 교복 단추를 서너 개쯤 풀어헤치고, 그 안에 당시 서울의 모든 짝퉁 시장을 점령했던 메이드 인 이태원표 88 올림픽 호돌이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형은 내 어깨에 마치 쌀가마니를 얹듯 묵직하게 팔을 걸치며 다연이를 향해 느끼한 미소를 날렸다.

“오, 이게 누구야? 옆집 꼬맹이 다연이 아니야? 너 이제 보니까 제법 아가씨 같네? 교복 입혀놓으니까 사람 됐네. 옷이 날개구만.”

그러더니 기남이의 요요를 쓱 훑어보았습니다.

“야, 박기남. 너 그거 어제 내가 고장 나서 버린 거 아니야? 테이프 씹히는 소리가 정류장 밖까지 들린다. 그리고 구두는... 너희 아버지 오늘 맨발로 출근하신 거 아니야?”

기남이가 얼굴을 붉히며 “형. 이건... 여백의 미라고요!”라고 변명했지만, 형은 이미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다연이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다연아, 우리 서진이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면 나한테 말해. 나 오늘부터 중3이다. 알지? 근데 얘가 좀 찌질해서 매점 셔틀이나 안 당할지 모르겠다. 야, 정서진! 오늘 형 딸기 우유 하나 사놔라. 잔돈은 네 주머니에 넣어두고. 알았냐? 자식 찌찔하기는...쯧.”

형은 순식간에 다연이 앞에서 나를 보살핌이 필요한 불쌍한 동생으로 정의 내려 버렸다.

형은 우리에게 짐짓 어른스러운 척 '학교에서 보자!'라는 인사를 남기고는,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정류장 저편으로 사라졌다.

“형, 제발 좀...!”

내가 뒤늦게 허공에 대고 항의했지만, 형은 이미 멀리서 손을 흔들며 가버렸다.

다연이가 작게 키득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영진이 오빠는 여전하네. 서진아, 근데 너 바지가 좀 커 보이는데 내가 옷핀이라도 줄까?”

"괜찮아, 다연아! 이거... 일부러 이렇게 입은 거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바지가 좀 커야 키가 쑥쑥 큰데. 지금 옷핀으로 집어버리면 내 성장판이 그 안에 갇혀서 키가 안 클 수도 있다는 과학적 원리를 어디서 읽었거든. 이건 내 키를 위한 예약 같은 거야."


말을 마치기 무섭게 선진운수 153번 버스가 검은 매연을 뱉으며 정류장에 멈춰 섰다.

나는 마치 보물을 지키는 수전노처럼, 혹은 바지 속에 숨겨둔 수줍은 성장판이 달아날까 걱정하는 겁쟁이처럼 엉거주춤하게 버스 계단을 올랐다.

기남이는 한술 더 떴다.

녀석은 영에이지 구두가 길바닥에 버려지는 참사를 막기 위해, 발가락을 잔뜩 오므린 채 뒤꿈치를 질질 끌며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쇠사슬에 묶인 채 유배지로 향하는 죄수 같았다.

세상은 우리에게 '손에 손잡고' 벽을 넘으라고 노래했지만, 정작 그날 아침의 우리는 바지춤과 구두 뒷덜미를 붙잡느라 서로의 손을 잡아줄 여유조차 없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찌질한 자존심을 움켜쥐고 그 낡은 버스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선진운수 153번 버스는 학교를 향해 출발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 선정중학교는 당시 대한민국이 그러했듯, 낡은 전통과 성급한 현대화가 뒤섞인 기묘한 공간이었다.

우리 학교는 동네에서 드물게 ‘남녀공학’이라는 근사한 간판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공학이란, 남학생과 여학생을 한 울타리에 가둬두되 절대로 섞이지 않게 분리하는 정교한 격리 시스템을 의미했다.

운동장은 같이 썼지만 교실은 철저히 달랐고, 복도 중앙에는 보이지 않는 휴전선이 그어져 있는 것 같았다.

같은 공기를 마시되 서로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는 곳, 그것이 1988년식 남녀공학의 실체였다.

버스는 그 실체를 벗기기 위해 과격하게 달리고 있었고 급정거할 때마다 사람들은 거대한 파도처럼 한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그 파도는 기적처럼, 혹은 저주처럼 나를 다연이의 바로 앞까지 밀어 넣었다.

코끝에 다연이의 비누 냄새가 스쳤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내 두 손은 여전히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사수하느라 바빴다.

“... 서진아, 차가 흔들리는 저기 손잡이라도 잡아.”

다연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선택해야 했다.

다연이의 말대로 손잡이를 잡고 흔들림 없는 멋진 중학생의 포즈를 취할 것인가, 아니면 자존심과 함께 흘러내리는 바지를 붙잡고 찌질한 생존자로 남을 것인가.

결국 나는 후자를 택했다.

사실 내 오른쪽 어깨에는 내 몸집만 한 가방이 위태롭게 걸려 있었고, 그 가방끈은 매끄러운 새 교복 원단 위에서 미끄러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방끈을 놓고 손잡이를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방이 어깨에서 흘러내리며 내 바지까지 끌고 내려가면서 영구처럼 변한 내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은 훨씬 더 비극적인 일이었으니까.


“괜찮아... 난 원래 이렇게, 가방을 쥐고 타는 게 습관이라서.”

나는 바지춤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버스가 다시 한번 크게 휘청였고, 내 몸은 중심을 잃고 다연이 쪽으로 쏠렸다.

내 몸이 다연이에게 닿았다.

아니, 정확히는 무방비 상태였던 내 몸이 다연이에게 부딪쳤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내 왼손은 바지를, 내 오른손은 가방을 사수하느라 혼잡한 버스에서 다연이를 밀쳐낸 것이다.

다행히 다연이는 손잡이를 잡고 있어서 한 두 걸음 정도 비틀거리다가 다시 중심을 잡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정류장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뒤였다.

저 멀리 뒷좌석에서 영진이 형의 목소리가 버스 안을 울렸다.

“야, 정서진! 너 지금 다연이 때린 거 아니지? 주먹 좀 풀어라, 인마! 아주 때릴 기세네!”

형의 짓궂은 농담이 형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바지춤을 쥔 주먹에 하얗게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연이를 향한 주먹이 아니라, 좋아하는 다연이를 앞에 두고도 손조차 내밀 수 없는 내 찌질한 상황에 대한 소심한 분노였다.

153번 버스는 그렇게 내 첫사랑의 무력함을 싣고, 학교를 향해 과격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교문을 지나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 기남이와 나는 진짜 어른들의 세상으로 한 발을 디딘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웅장한 기분과는 별개로 입학식은 입학식답게 지루했다.

교문 한가운데에는 ‘중학교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강당 안은 수백 명의 신입생이 뿜어내는 긴장감과 나프탈렌 냄새, 그리고 오래된 나무 바닥의 삐걱거림으로 가득 차있었다.

우리는 줄을 맞춰 서 있었지만 이미 생각은 모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마이크 앞에 섰고, 그 순간 고장 나서 닫히지 않는 강당 유리창을 통해 한줄기 바람이 불면서 플래카드가 살짝 흔들렸다.

그게 입학식에서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88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국가의 미래, 그리고 민주시민의 자질이라는 거창한 단어들 사이를 끝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야, 서진아. 나 발가락에 마비 온 것 같아.”

옆에 선 기남이가 힘겨운 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녀석의 야심작이었던 영에이지 구두는 중학생의 간지를 세워주는 대신, 녀석의 발가락을 굴비 엮듯 조여놓은 모양이었다.

기남이는 까치발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고통을 분산시키려 애썼지만, 그 모습은 마치 화장실이 급해 춤을 추는 두루미 같았다.


지루함이 정점에 달해 천장의 먼지 입자 개수를 세고 있을 때쯤, 드디어 교가 제창이라는 해방의 종소리가 울렸다.

수십 명의 삐약이들이 각자 배정된 반으로 흩어지는 아수라장 속에서, 나의 안테나는 오직 한 곳, 다연이가 속한 1학년 7반 쪽을 향해 있었다.

“가자, 기남아. 작전 개시다.”

“야... 나 일단 이 구두 좀 버리면 안 되냐? 진짜 발가락 터질 것 같아.”

기남이의 엄살을 뒤로하고 우리는 1학년 7반 복도를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복도는 이미 우리 같은 하이에나들로 가득했다.

누군가는 센 척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앞니 사이로 찍찍 침을 뱉었고, 누군가는 창문에 붙어 아는 얼굴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치 이 복도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7반 뒷문을 지나쳤다.

그때 창가에 앉아 교과서를 정리하던 다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 서진이랑 기남이네! 너희는 몇 반이야?”

다연이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 순간 복도의 소음은 진공상태처럼 사라지고 오직 다연이의 목소리만 들렸다.

하지만 로맨틱한 분위기를 박살 낸 건 내 뒤에 서 있던 기남이의 비명이었다.

“아악! 내 발! 누가 내 발 밟았어!”

뭐가 급한지 복도를 달려가던 2학년 형 하나가 기남이의 구두를 정통으로 밟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 형은 "야... 미안."이라는 한마디만 주억거리고 복도를 쏜살같이 달려 사라졌다.

기남이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구두를 움켜쥐었고, 나는 다연이 앞에서 폼 잡는 친구 대신 상처 입은 두루미를 치료하는 수의사가 되어야 했다.

우리는 멋진 중학생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꽉 끼는 구두와 너무 큰 교복, 그리고 눈치 없는 친구 사이에서 표류하는 열네 살의 부유물일 뿐이었다.

“기남아... 괜찮아?”

걱정스러운 다연이의 물음에 나는 기남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얘가 오늘 너무 기뻐서... 온 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중이야. 입학 축하해, 다연아!”

나는 기남이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복도 끝으로 도망쳐 기남이와 함께 배정된 1학년 1반 교실로 향했다.

우리의 진짜 중학교 생활은 그렇게, 광대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과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

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