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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Mar 26. 2023

알고 싶지가 않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드러나는 일들

연길에서 3년 동안 함께 근무해 온 L 밥을 먹다 우연히, 우리 둘 다 같은 한 남자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바로, 2년간 함께 근무하다 작년 귀국하신 K 선생님.


부장도 아니었고 대단한 미남도, 모두를 도와주는 홍반장이나 분위기 메이커도 아니었다. 우리 중 누구와 특별히 친한 것도 아니었다. 나 역시 그 분과 업무 이외의 일로 세 마디 이상 길게 이야기 나눠 본 기억이 없다. 그저 늘 맡은 일+알파를 묵묵히 해내시 조용한 분이었다. 큰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자신의 업무를 다른 동료에게 분배하는 법이 없다. 반 학생이 단 한 명인 학급을 맡을 때도 학생이 30명인 학급을 맡았을 때와 다름없이, 매 시간 업을 꼼꼼히 준비하고 칠판에 단원명과 공부할 문제를 반듯하게  놓으셨다. 동성이거나 이성이거나, 나이가 많거나 어리거나, 직위가 높거나 낮거나, 같은 교회에 다니거나, 같은 교육청 소속이거나, 대학 동문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깍듯한 높임말을 쓰시며 공정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셨다.


계실 때는 몰랐는데 최근, 사무실의 이런저런 소인배들(나 포함), 형님 서클과 골프 클럽의 행패, 그리고 그분이 맡았을 때는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던 업무가  차례 펑크 고 보니, 계실 때는 계신 줄도 몰랐던 그분이, 귀국때는 너무 어려운 사이라 작별 인사할 생각조차 못했던 그분이, 새삼 떠오르는 것이다. 그분이 계셨기에 그 어려운 업무가 원활하게 돌아갔던 거였다. 그분이 계셨기에 동료들끼리 서로 얼굴 붉히며 언성 높이는 일들이 없었던 거였다. 이제야 그분의 인품과 역할이 크게 다가온다. 감탄하고 그리워하게 된다. 40대 초반의 나이로, 우리와 교육경력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그분은 어떻게 그런 흔들림 없는 원칙과 인품을 갖추게 되신 걸까. 작년에도 늘 그분 생각이 났는데 올해 속상한 일들 많아서 일까, 그분 모습이 더욱 눈에 선하다.


반면, 올해 2월에 귀국한, 인기가 아주 대단했던 선생님도 있었다. 잘 생긴 외모에 사교적인 성격, 만능 스포츠맨에, 돈도 잘 빌려주고 늘 주위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접하던 분이었다. 특히 몇 후배들을 이름으로 부르며 공사(公私) 구분 없이 살뜰히 챙기셨다. 누구나가 사람 좋다고 칭찬하던 사람, 우리 조직에 없어서는 안 될 것 같던 사람, 관리자의 총애가 차고 넘치던 사람, 한 달 내내 송별회 스케줄이 꽉 차 있던 사람. 그분이 떠난 지 겨우  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 이제 그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사람조차 없다. 경비실에는 그 선생님 앞으로 온 택배가 한 달 넘 굴러다녔다고 한다. 사실은, 모두가 그저 그랬던 거였다. 사실은, 지긋지긋해하면서 참고 있었던 거였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다 드러난다.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지, 그저 좋은 척하는 사람이었는지. 


생육신 중 한 사람이었던 신숙주. 세조 시절에는 그를 공신이라 칭했겠지만, 사람들은  변하는 녹두나물에 '숙주나물'이라 이름 붙이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질근질근 씹어 먹고 있다.


남송의 명장 악비(岳飞),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고도 재상 진회(秦桧)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살해당한다. 항주에는 진회 부부 두 사람을 딱 붙여 꾹 눌러 납작하게 구워 먹으며 악비의 복수를 대신한다는 의미의 총오회(葱包桧)라는 음식이 아직도 전해오고 다.


항주의 총빠오회, youku, 奇妙之城 第二 季, 第一期 캡처


북송의 시인 소동파(苏东坡). 재상 장돈(章惇)의 모함으로 유배를 간다. 당시에는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재상이었건만 지금 그를 기억하는 중국인은 거의 없다. 반면, 소동파는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지금까지도 그의 시를 즐겨 암송하고, 그가 정쟁에서 지고 지방관으로 참담하게 떠돌 틈틈이 계발한 동(东坡肉)이나 동(东坡) 등의 음식을 즐기며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소동파 시인이 계발한 동파육, 百度 캡처
소동파 시인이 계발한 동파병, 百度 캡처


내가 떠나고 나면, 이곳 연길의 일터에서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할까. 이동미(이 동네 미친년)? 투덜이 스머프? ㅆㄴ? 영영 알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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