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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May 25. 2023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정(情) 부자 A, 나도 처음엔 다른 사람들처럼 그가 정말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 누구에게나 다정한 태도, 사람을 홀랑 빠지게 만드는 재치 있고 논리적인 말솜씨, 독실한 기독교 신자, 만능 스포츠맨, 우리 학교뿐 아니 교민사회의 오지라퍼,  A선생님.


그는 나처럼 존재감 없는 사람에게도 그의 전문 분야인 '운동'에 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업무상 이런저런 작은 일들도 기분 좋게 도와주었다. 늘 그에게 밥이라도 한번 사야 할 것 같은 '빚진 마음'다.  마음이 저절로, 같은 동료임에도 그의 의견이나 결정에 쉽게 이의 제기하지 못하는 '주눅 든 마음'으로 발전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특히 나이 어리고 그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은 다들 나처럼 '빚진 마음-주눅 든 마음' 고리에 빠져있는 듯했다.


연길에서 근무한 연차가 나와 같은 A에게는, 어쩐 일인지 '친한 형님'이 많았다. 학교운영위원도 형님이고 반 아이 학부모도 형님이었다. '너 힘드니까 우리 와이프한테 아이 상담도 공개수업도 가지 말라고 했다~'는 학부모 형님 자랑 했다. 또 A에게는 챙겨줘야 할 사람도 많았다. 같은 대학, 같은 교육청, 같은 고향 출신 후배들, 같은 교회 신자, 같이 축구하고 골프 치는 사람, 와이프수다클럽 회원들, 들의 자녀들,  자기 아이 선생님 그 가족들... 좁은 한인 사회에서 거미줄처럼 엮 촘촘한 인간관계는 그의 든든한 정보망이자 탄탄한 기득권의 원천 끝까지 책임져야 할 사명이기도 다.


작년, '허허' B부장이 그의 골프 버디였을 때가 가장 하이라이트였다. 학교의 중요사안은 주말에 둘이 골프 치며 이미 결론이 난 상태로, 다른 부원에게 '협의'라며 통지되었다. 올해 업무 분장이나 수업시수, 학급 배정에서도 누구나가 A의 강한 개입을 느낄 수 있었다. 개교이례로 이렇게 가벼운 업무, 이렇게 적은 수업시수를 가진 교사는 없었다. 하지만 A의 안색을 살피며 누구도 이의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만의 끈끈한 (情) (公) 사(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다.


수업 시간을 지키지 않고,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이 헬로키티 프린트물 색칠만 하는 등 문제 많은  외부강사의 수업에 몇몇 담임교사들이 이의를 재기하자, A의 이해할 수 없는 무마노력이 이어졌다.  사가 처음 하는 해외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며 너무 적은 급여불만이 많다고 했다. 또 어린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 우리 담임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녹화해 주는 등 도와주자고도 했다. A가 왜 저러지? 했더니, 강사는 그의 오랜 맥주 버디였던 거였다. '형제의 정'에 빠지면 사람이 저렇게 자신의 본분 잊고 부끄러운 말도 당당하게 지껄이게 되는구나, 크게 깨닫게 된 날이었다.  


직장에서는 일 못하는 사람만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A를 보며, 정 많은 사람도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직장에서는 '언니''형님'도 '베프'도 만들면 안 된다. 나랑 합이 맞든 안 맞든 팀 내 모든 동료들 간의 거리가 비슷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개인적 친분으로 인해 무고하게 배제되고 소외되어 불이익당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교회 다니지 않고 친교와 스포츠 싫어하고 젊지도 예쁘지도 고분고분하지 않 사람, 즉 A와 교집합이 전혀 없는 사람, 그의 오지랖 클럽 아닌 사람들이 부당한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편 가르기', '무리 짓기', '내 편 챙기기', '공사(公私) 뒤섞기' 등이 그 조직을 서서히 갉아먹게 된다. 내가 '언니, 언니, 우리끼리 살짝?' 하며 편의와 특혜주고받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안 친해서 배제'되는 당사자가 되고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생각 없이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알 것 같다.


A는 정이 많고 의리를 중시하며 자신의 사람은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다.  사람을 가족이나 친구 둔 사람들은 참 좋겠지만 그게 아닌 나는, 그가 참 불편하고 싫다.

직장에서 정 많은 사람 X


닮지 말아야 할 사람 리스트에 한 줄을 더 추가한다. 이렇게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나는 무럭무럭 자란다'.

(<나의 해방일지>, 염기정의 대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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