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을 떠나오기 전, 올 겨울 관광지로 하얼빈이 대박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중국 내수 관광 경기가 본격적으로 풀리면서, 겨울에도 눈을 보기 어려운 중국 남방 젊은이들이 가성비 좋은 겨울왕국 하얼빈에 폭발적으로 몰렸다고 한다. 둥베이인(东北人) 답게,대부분이 장신인 하얼빈 사람들은 이들 남쪽에서 몰려온 '아담한' 관광객들을 ' 남방 작은 감자(南方小土豆)'라 부르며 친근히 맞이했다고 한다.
북방큰고구마(北方大地瓜)와 남방작은감자(南方小土豆), 百度 캡쳐
눈과 얼음을 보러 여행을 간다니!올해 하얼빈 빙등제 작품들이 역대 최고라는데도, 고속철로 네 시간이면 도착하는 지척(?) 거리인데도 하얼빈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영하 20도 연길에서 영하 40도 하얼빈을 왜 제 발로 찾아가겠는가. 연길에서극한 추위와 눈에 이미 충분히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찾아온 이곳은따뜻한 남쪽 도시, 난닝(南宁), 남쪽의 안녕.
베트남이 가까워서 그런지 온 도시에 베트남 느낌이 물씬 난다(베트남을 가 본적은 없지만). 특히 도로 반, 디엔동차(电动车)반이라 거리의 행인들이일상적으로위협받는 저 풍경들...
그리고 이곳에서 하얼빈 사람들이 '남방 작은 감자' 라부르는 남방형 중국인들을 실컷 만난다. 늘 보던 한국인, 연길의 둥베이 사람들과 정말 다르게 생겼다. 남자도 작고 그 남자의 아내도 작다. 남녀노소 모두가키도 작고 얼굴도 작고 허리도 얇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안에 탄 성인 남자 7명 중 5명이키 165cm인 나보다작고 2명이 얼추 나와 비슷한 것 같았다. 같은 동양인도 인종이 여러 가지라는것을 비로소 실감한다.여기서는그 사람이 외지인이라는 걸 누구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이상한 억양의 중국어를 구사하고 나이 들수록 쌍꺼풀이 점점 더 처지고 진해지는 나에게 이곳 사람들이 자꾸만신장(新疆)에서 왔냐고물어본다. 칭찬인지, 욕인지.
처음엔반팔차림으로 다니는 몇몇 사람들을 보고 '이 겨울에 반팔 차림이면 여름엔 아예 맨 몸으로 다니겠네' 하며 깔깔대다가, 결국엔 나도 반팔 차림으로 청수산(青秀山)을다녀왔다. 20도 안팎의 선선한 기온이 딱 좋았다. 나중엔 나도 행인들을무시하며 부아앙 (20km/h의 속도로) 내달리는 공유 디엔동 라이딩에맛을 들였다.
결혼처럼 여행도, 결국은 자신 내면의문제였던 것이다.나는뼈시린 추위와매일 입는 검정 롱패딩이 지겨워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왔고, 겨울에도 반팔 티셔츠에 발가락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이곳젊은이들은 혹한 추위와 눈을 경험하러 하얼빈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신기루 같은 각자의 결핍을 채우러 반대 방향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의일상이 그들의 여행이 되고 그들의 일상이 나의 여행이 되었다. 나의 일상이 나의 여행이 되고 그들의 일상이 그들의 여행이 될 수는 없었을까.
언젠가 인생의 내공이 쌓이면,내면의 번잡한결핍들이옅어지고 잔잔한 평안으로 채워진다면,안방에서도 우리 동네에서도여행 온것만큼이나기쁘고설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