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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Feb 01. 2024

여행지에서 긴 비를 만나면

광시성(广西省) 베이하이(北海)를 가다


4년간 연길시린 추위에 시달려온 내가 중국 남쪽 바닷가 베이하이를 았을 때는, 이런 장면을 상상했더랬다. 마침 생일도 끼어있어 나에게 토닥토닥 따뜻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百度 캡쳐


근데, 이건 뭐지?


베이하이에 도착한 부터 계속 비가 내린다. 온화하던 아열대 기후가 갑자기 5도 이하로 떨어지고 황색 강풍경보까지 내려 시내를 걸어 다니기조차 힘들다. 베이하이를 오가는 모든 배편, 항공편이 취소되었다는 소식 들린다.


째날. 오전 내내 호텔 방에서 비멍 때리다 안 되겠다 싶어 호텔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그렇게 길고 아름답다는 은탄(银滩) 해변가를 '무리해서' 걸었다. 30분 남짓이었지만 몰아치는 강풍과 속에, 빌린 우산이 뒤집히고 손과 발이 빨갛게 얼어붙었다. 저 멀리, 강풍을 피해 정박 중인 육중배들이 보다. 그렇게 비를 흠뻑 맞고 얼음장이 되어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배달앱으로 해물볶음면과 굴구이, 바지락 무침을 켰다. 먹다가 지쳐 잠이 들었.


강풍경보가 내려 인적 드문 은탄 해변가
강풍경보로 임시 정박 중인 배들


 째날, 밤새 내리고도 그치지 는 비. 빗속에 어렵게 차를 불러 타고 구시가지 역사문화의 거리 갔다. 우산을 쓰 100년 역사 콘크리트 이끼 낀 상가 건물들 사이를 걸었다. 빗 속에서 분투하며 이 거리의 명물 새우병(虾饼)과 단물(糖水)도 사 먹었다. 너무 추워서 오래 걸을 수는 없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껍질 깐 사탕수수 막대기를 샀다. 히터를 틀어놓고 바람 부는 창밖을 바라보며 근질근 씹어먹었다.


작은 배들도 강풍경보에 모두 정박중


그리고 넷 째날, 오늘. 비는 그쳤지만 강풍과 추위는 여전하다. 잠시 후, 12시 30분 기차를 타러 베이하이 역으로 가야 한다. 짐을 다 꾸려놓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흐린 바다풍경을 눈에 꾹꾹 눌러 담 있다.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베이하이 여행, 이렇게 미진한 마음으로 베이하이를 떠난다.


길이 끝나는 곳에 언제나 바다가 있다, 3면이 바다 베이하이


문득, 공자를 떠올린다.


勿意 勿必 勿固  勿我



늘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극강의 낙천주의자 공자. 그에게 없는 것이 네 가지 있었으니,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편견이나 해석, 의도(意)가 없고,  해야하는 것(必)이 없고 고집(固)이 없고 ''(我)가 없었다고 한다. 날씨 때문에 망쳐버린 계획, 할부가 끝나기도 전에 잃어버린 아이폰, 변심한 연인, 불합격 소식 등에 속상해하지 않았던 거다. 어차피 싸워 이기지도 못할 이런저런 불운들 에너지 낭비하지 않았던 거다. 그럴 수 있다고 쿨하게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던 거다. 


내가 기대한 바와는 많이 달랐지만 이렇게 베이하이를 경험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여행 광고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강풍 몰아치는 회색 바다도 웅장하고 멋졌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화물선 수 백대 한꺼번에 보았다. 아무리 큰 배여도 바다두려워하며 겸손하다는 것도 알았다. 호텔방 비멍도 은근 힐링 효과가 있었다.


그냥 그럴 수 있다. 운명의 장난도, 내 잘못도 아니다. 이 길이 막혔으면 다른 길로 가면 된다.


화창한 날에도 비 오는 날에도, 여행 중에도 일하 중에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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