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시안(西安)을 가다
또 오고 말았다!
낮기온 40도, 후끈한 사막 바람 불어오는 실크로드의 시작 도시, 시안. 이번이 세 번째다. 여름에는 정말 안 오고 싶었는데 가려는 (시원한) 도시의 직항 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들르게 되었다. 게다가 뙤약볕 아래, 끝없는 입장대기줄을 기다리다 보면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솔솔 난다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로 관람 자체가 고생스러운, 그래서 일평생 한 번이면 족하다는 병마용은 더더욱 안 오고 싶었는데... S가 시안이 처음이라 '어쩔 수 없이' 다시 오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 혼자 왔을 때는 시간과 비용면에서 훨씬 저렴해 보이는 중국 여행사 1일 패키지로 병마용을 다녀왔었다. '오전 화청지+점심제공+오후 병마용' 상품이었는데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가이드를 따라다니기도 힘들고 수상쩍은 옥, 은 상점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것, 그 대가로 제공받는 현지식 무료 점심도 곤욕스러웠다. 종루에서 30元만 내면 탈 수 있는 병마용 직통버스도 운영 중이지만 구도심은 늘 차가 막히니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고 독립적으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바이두지도를 검색해 보니 편도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나온다.
느긋하게 자다가 점심때쯤, 회족거리(回民街)에 있는 숙소를 나와 호라탕 한 그릇을 호기롭게 들이켜고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종점까지 간다.
9호선으로 갈아탄 다음 화청지(华清池) 역에서 내린다. 역 밖으로 나오니 병마용 직통 613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5元을 내고 20분 정도만 타면 병마용 입구까지 간다. 두 번을 갈아타긴 했어도 여행사 대형버스보다는 덜 번거로운 것 같다. 그런데 입구에서 검표소까지 엄청 걸어야 하고, 또 검표소에서 병마용 1 호갱까지 엄청 걸어야 한다는 게 함정. 여행사 버스를 타더라도 대형버스 주차장에서부터 검표소까지 넓고 긴 길을 걸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병마용 박물관내에는 유료전기차가 운영 중이다.)
너무 넓고 복잡해서 검표소를 찾는데도 한참을 헤맨다. 두 번째 오는 거여도 그렇다.
신분증으로 검표하는데도 긴 줄을 기다린다. 살 타는 냄새,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솔솔 난다.
관람도 전에 이미 불지옥을 체험하고 사람들에 밀려 드디어 1 호갱에 들어간다.
아아...
첫눈에 훅- 엄습하는 거대함, 죽음과 권력, 그 엄중함, 광적인 의지,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엔 슬픔. 두 번째인데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압도된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로 힐끗힐끗 보는데도 먹먹해지며 울고 싶어진다. 시간이라는 가로줄과 시대의 권력 구조라는 세로줄에 갇혀, 한낱 바둑알로, 미미한 일개미로, 나 역시 저 인형들처럼 소스라지겠구나하는 비애감이 밀려든다.
사실 병마용은 이곳에서 1km 남짓 떨어져있는 거대한 진시황릉 부장품의 일부다. 고대인들은 사후에도 삶이 이어진다고 믿었는데 전국시대 6국을 통일하느라 무수한 살생을 저지른 진시황은 죽은 영혼들의 복수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불멸의 군대를 자신의 무덤 입구에 세워놓았다. 이 병마용은 1974년, 우물을 파던 현지인 농부 양씨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현재까지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며 1 호갱, 2 호갱, 3 호갱이 공개되어 있다. 베일에 싸인 실체, 이 진흙 군단의 유일한 통솔자, 진시황릉은 과학기술이 더 발전하기 전까지는 발굴 계획이 없다고 한다.
실제 사람 크기와 비슷한 8천여 개의, 얼굴, 복장, 머리모양, 수염모양, 귀모양까지 모두 다른 거대 테라코타 군단. 타의로 무자비한 권력자의 무덤을 지키고 있어서일까. 기묘하고 경탄스럽지만 애처롭고 슬프다.
이 병사들의 각기 다른 외형과 위치는 당시 최강의 군대였던 진나라 군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20개의 계급으로 구성, 오늘날의 군대 못지않게 체계적으로 운영되던 조직은 병사들의 복장과 무기로 지금도 확인 가능하다.
최전방 세 줄과 마지막 세 줄에는 가장 계급이 낮았던 노(弩) 병들이 서 있다. 원거리 활을 쏘므로 갑옷을 입고 있지 않다.
그다음엔 이들보다 높은 2급, 보병. 7m의 긴 창으로 각종 방전(方阵)을 구사하며 전쟁터 안에 성벽도 산도 만들던 노련한 장창 보병들과 1인 기량이 중요한 단창 보병들이 서 있다.
일제히 정면으로 선 대열에 특이하게도 벽을 보고 선 병사들이 있으니 이들은 측면 공격에 대비하던 수비병들이다.
3급, 날렵한 모자를 쓴 기병부대.
최소 3급 이상의 계급, 전차부대. '말 4마리+병 2명+어수(驭手 전차 군관) 1명' 1개 조로 구성된 전차병은 그 전차 한 대가 하나의 소대로,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한다.
견장 같은 앞 뒤 매듭장식, 정교한 갑옷, 소가죽판모자를 쓴 7,8급 군관, 도위(都尉).
이들 가운데 손에 뭔가 무기를 든, 갑옷도 모자도 없는 소박한 차림새의 병사들이 눈에 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극도의 위험한 임무를 맡은 특수부대다. 전쟁에서 군공을 세우는 것만이 유일한 가난 탈출, 신분 상승의 수단이었던 상무사회 진나라. 이들은 후방에 남은 가족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각오한 자살부대인 셈이다.
병마용 관람 후에는 늘 불편하고 슬픈 느낌이 오래도록 머문다. 유쾌하지 않은, 그래서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죽음과 권력에 관한 진실을 관람객들에게 확 끼얹기 때문이다.
갱 3개를 다 보고 오후 5시가 넘었어도 시안의 태양은 식을 줄을 모른다. 출구를 나와 다시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은 입구보다 더 멀다. 울고 싶다.
<참고자료>
-复活的军团(6集), 2004, 优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