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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Aug 15. 2022

스파이 패밀리의 인기 요소에 관하여

갭모에와 다중 츳코미와 아동화자를 중심으로

<스파이 패밀리>(2019)는 2022년 최고 히트 애니메이션이자 2020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의 수상작으로, 스파이, 암살자, 초능력자 세 명이 평화로운 가족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일본의 만화이다. 스파이패밀리의 설정적 요소만 놓고 보았을 때에는 현재 유행하는 양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면이 있다. 주인공이 먼치킨인 것은 맞으나, 하렘을 구축하거나 무기력증을 갖는 전형적인 라이트노벨식 주인공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이미 완성형인데다 성인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소년만화나 청년만화와도 제법 다르다.


그럼에도 이 만화가 히트한 데에는 적절한 시리어스 액션과 코미디를 오가는 적절한 긴장, 코미디를 유지하면서도 전쟁에 관한 진지한 시선 견지, 유려한 그림체와 같은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갭모에와 다중 츳코미, 그리고 아동화자를 꼽고 싶다.


갭모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에는 으, 씹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어로 번역하면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반전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말그대로 gap한 모에요소 인 셈이다. 그렇지 않을 줄 알았던 인물이 뜻밖의 모습을 보였을 때 큰 충격을 받고 뇌리에 남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예측에서 크게 어긋나는 모습에서 신선함을 느낄 수도 있고, 인물의 다면성을 통해 인간적인 측면과 친숙성을 느낄 수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스카 이래로 30년 째 계보를 잇고 있는 "츤데레"역시, 본연의 이미지와는 다른 이면이 주는 매력이라는 점에서 갭모에의 역사는 몹시도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갭함이 인물의 리얼리티를 살리고 애정을 높이는 방식임은 자명하다.


스파이패밀리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갭함을 가지고 있다. 아니, 21세기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은 그런 반전 매력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되려 평면적으로 끊임없이 악하거나 선하거나, 인간임에도 단 한 조각의 잘못됨도 없이 완벽한(완벽함이 정도를 넘어 되려 개그 요소로 쓰이는 <사카모토 입니다만?>과 같은류는 제외)인물은 이젠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인물이 추구하는바가 일관적으로 선한 편이라 할지라도(<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의 "미도리야 이즈쿠", <귀멸의 칼날> "카마도 탄지로" 외)연출이나 개그 에피소드의 삽입을 통해 인물의 다면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스파이 패밀리가 주목을 받는 것은 그 갭의 수준이 특히 크며 3군데의 양 극단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갭모에라고 부르는 요소는 두 가지 반전 요소를 갖는다. 갭모에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건어물소녀 우마루짱>이었다. 우마루는 밖에서는 아름답고 어른스러우며 성적이 좋은 우수한 여학생이나, 집에 와서 후드를 뒤집어쓰면 어린아이 같고 게으른데다 오타쿠 같은 성격으로 변한다. 이 때 인물은 동일하나, 그림체적으로 본래 우마루의 모습이 5등신이었다면, 집에 온 이후 우마루의 모습은 2등신으로 변화하는 등 시각적으로 그 갭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갭모에는 대체로 두 가지 이면만을 보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스파이 패밀리의 인물들은 세가지 요소를 보인다. 첫 번째는 그들의 진짜 직업과 관련된 요소이다. 아버지 로이드는 스파이, 어머니 요르는 암살자, 딸 아냐와 강아지 본드는 초능력자라는 비밀들을 숨기고 있다. 두 번째는 그들이 연기하는 대상이다. 혈연관계가 아닌 인물들은 각자의 사정에 의해 평범하고 완벽한 가족을 연기해야한다. 세 번째는 앞선 모든 것들과 전혀 다른 개인의 모습이다. 각자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요르로 예시를 들자면, 암살자와 평범하지만 자상한 계모 사이에 허점이 많은 괴력녀라는, 서브컬쳐에서는 다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다면적 인간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이중생활을 하는 작품들이 많음에도 스파이 패밀리가 돋보인 이유는 인물의 성격들 사이의 갭이 몹시 크면서, 다중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 인기요소는 아동화자이다. 스파이 패밀리의 주요 인기요소중 하나는 귀엽다가도 눈을 반달모양으로 뜨며 미묘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아냐의 표정이다.(물론 이 역시 갭모에의 요소로 볼 수 있다.) 아냐는 마스코트적 요소 외에도 아동의 시각에서 세상을 봄으로서 나타내는 괴리감을 제공한다.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 하자면 한 때 교과서에 주구장창 나왔던 <사랑손님과 어머니>(주요섭, 1935)에서 옥희가 화자이기에 가능했던 연출들이 있는데, 과부 재가에 대한 사회적 통념, 사랑과 부부에 관한 개념이 없는 어린아이이기에 가능했던 단순하고도 열린 사고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친구를 그려냄으로서, 성인이 주인공이었다면 도출 될 수 없었던 요소들을 짚는다. 이를테면 옥희가 아저씨에게 다가가 우리 아빠 하면 좋겠다고 말하거나, 어머니 얼굴이 왜 빨개졌는지 알 수 없다, 와같은 말을 하는 것은 어린아이이기에 할 수 있는 표현으로서 복잡한 상황을 다른 방향에서 단순하게 봐 새로운 재미를 제시하거나, 어른은 알 수 있는 요소를 아이의 시선에서는 보이지 않게 함으로서 귀여움과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식이다.


아냐의 역할역시 비슷하다. 특히 작중 가장 지성인으로 등장하는 로이드의 시선에 대부분의 상황은 몹시 진지하고 본인이 직접나서 타개할 대상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어린 아냐의 시선에, 상황들은 왜 그렇게 까지 진지한지, 애당초 복잡한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으며, 그렇기에 어린 아냐가 내뱉는 얕고 가벼운 말과 행동들, 혹은 그로 인해 촉발된 사고들은 만화에 재미 요소를 더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는 전개적 재미 뿐 아니라 둘 사이의 케미를 계속해서 보여줌으로서, 임무가 끝나면 헤어질 지도 모르는(작중에 계속해서 언급된다)두 사람의 사이에 관하여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긴장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물론 아냐의 존재는 로이드 혼자만 나왔을 때 주어지는 진지한 분위기에 개그요소를 불러일으켜 개그적 요소를 갑자기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전개 흐름 속에서 뛰어난 환기 효과를 갖기도 한다.




마지막 재미 요소는 아냐로 인해 발생되는 다중 츳코미, 즉 생각에의 간섭이다. 만화에서 동그란 말풍선을 사용해 생각을 나타내는 것은 그렇게 낯선 연출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아냐는 이러한 다른 사람의 생각에 간섭한다. 여기서 보케와 츳코미의 관계를 얘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본의 만담의 방식으로, 이렇게 말하면 일본문화에서만 나타내는 말 처럼 들리겠지만, 간략하게 말하면 허무맹랑한 소리를 누군가하고(보케) 그 말을 지적하여 웃음을 유발하는(츳코미) 전략을 의미한다. 각종 개그 요소 뿐 아니라 많은 수의 서사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아냐의 생각을 읽는 방식은 츳코미에 또 다른 츳코미 혹은 보케를 거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다시 설명하자면, 현실에서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고(보케), 로이드가 그 부분에 대해 지적하는데(츳코미), 그의 머릿속 완벽주의자 스파이의 자아는 말로 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며(츳코미의 츳코미), 그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아냐가 로이드의 생각에 대하여 반응을 보이는(츳코미의 츳코미의 츳코미, 혹은 보케) 4중 만담의 구조를 갖는 셈이다.



스파이 패밀리는 상당히 오랫만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메가히트작이라는 점에서 시사할만한 바가 크다. 물론 2010년대 후반에 들어 애니메이션 제작 화수가 현저히 줄고 그마저도 연이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전 방영분의 실적을 본 후 후속 제작이 들어감으로 인해 옛날만큼 지속적이고 거대한 팬덤을 만들기 힘들다는 점에서 스파이 패밀리의 인기 역시 빠르게 시들어가는면이 있어 안타깝지만, 작가의 오랜 무명생활 끝에 맞이한 히트작인 만큼 오래도록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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