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필름 레드>를 보다가
서브컬쳐... 뿐만 아니라 소위 예술이라 불리는 영역에서도 여성인물의 정조를 다루는 방법은 오랫동안 창녀와 성녀 프레임을 나누어 성적으로 문란한 인물과 정숙한 여성 두가지를 나누어 취급되어 왔다. 90년대 여성의 성욕에 관한 이슈가 언급되고, 2010년대 페미니즘 열풍이 거세지며 2020년대에 들어서는 창녀로 취급되지 않는, 주요 여성인물이 처녀가 아니라던가, 섹슈얼한 것들을 좋아한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고 있긴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까지도 여성향판에서조차, 여성 인물이 성적으로 문란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는 통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남성인물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편인 것 처럼 보인다. 남성 인물이 성적인 이야기를 가볍게 하거나, (요즘에는 여성혐오 문제로 나타나지 않지만) 가벼운 성희롱적 행동을 하는 장면들은 2000년대 창작물들까지만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남성인물의 성경험에 관해서도 말하는 작품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여성향 작품에서 남성의 정조에 대한 어느정도 기대는 이해할 만하다. 이들 장르에서라고 해도, 성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들만 있기를 바라는 건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적어도 문란하지는 않았을 것이 기대 받기는 한다. 금욕적인 이미지가 갖는 젠틀함, 뛰어난 자기 관리, 순애적인 면 같은 이미지들을 생각하면 수요가 있다 못해 넘칠만한 캐릭터성이긴 하고, 남녀 할 거 없이 누구든 자신(이 이입하는 대상)의 연애 혹은 결혼의 대상이 성적으로 문란한 인물이기를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이런 장르들에서의 보이는 남성인물의 정조에 대한 요구는 당연히 이해 가능한 지점이다.
다만 흥미롭다고 느낀 것은 그것이 여성향 장르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었다.<원피스 : 필름 레드>(2022)의 여주인공 우타의 캐릭터성 중 주요한 것은 '샹크스의 딸' 이라는 것이다. 이 단어를 PV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오랜 오타쿠 생활의 직감으로 친딸이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실제로 샹크스와 우타의 관계는 어렸을 때 주워져서 양아버지처럼 따랐던 존재, 인데 본인은 딸이라고 말한다. 는 설정이기는 했다.
문득 왜 내가 그렇게 받아들였지? 라는 데에 생각이 끼쳤다. 마초적인, 남자다운, 은 오랜시간 여러 여성과 성경험을 갖는, 그런 능력이 있는, 등과 연관지어져 왔다.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권력자 인물들이 양 팔에 미인을 끼고 나타나는 장면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단순한 뇌피셜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작중 강자라인에 들어가는 중년 남성인 샹크스에게는 왜 미혼의 이미지가 붙는가, 단순히 소년 만화이기 때문에? 10대를 주 타깃으로 한 만화에서 부모와 부부 정도를 제외한 인물들 간의 스킨쉽이나 성관계는 언급 그 자체가 불경시 되는 것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인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주요 인물, 특히 멋있다고 생각되는 인물들과 성경험을 연관시키고 싶지 않아하는 것은 아닌가?
만화 <은혼>이나 <골든카무이>처럼 주요 인물들 대다수가 20대인 작품들에서도 이런 경향은 확인할 수 있다. <은혼>에서는 인물들이 사창가에 갔던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미남이라던가, 무게감이 있는 인물의 경우 사창가에 가서도 밤새 술만 먹고 여자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냥 나왔다(타카스기 신스케/오가타 햐쿠노스케), 고 직접 언급이 되거나, 성경험 자체는 있을 것으로 기대되나 한 사람만 거의 한 평생 사랑했다(히지카타 토시로/스기모토 사이치), 같은 이야기들이 덧붙는다. 그런 인물들 외의 인물들은 대조적으로 성병을 달고(시라이시 요시타케/사카모토 타츠마) 살거나 여자를 과도하게 밝히는 듯(곤도 이사오/우시야마 타츠우마)한 이미지들이 붙는다.
물론 우타가 샹크스의 친딸이 아닐거라고 생각한 데에는 한국과 일본의 경이로운 혼외출산률과 연관성이 크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 대해 우리는 비정상적, 이라는 생각을 갖는 경향이 강하다. 다소 강한 단어를 말하기는 했으나,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신들의 머리에도 가엽다. 어쩌다? 같은 생각이 스치기는 했으리라 생각된다. 샹크스는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어디 결혼도 하지 않고 애를!' 이라고 한국인도 일본인들도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분류하다보니 성인 남성인물들도 여성과 비슷하게 금욕적이거나, 아이들을 지키는 아버지적인 포지션 혹은, 가볍고 문란하거나 성적인 대화를 많이 하는 인물, 이렇게 양분되어 제시 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한다. 결국 전통적인 창녀와 성녀의 이미지는 남성 인물에게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분이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