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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Mar 12. 2023

불편을 유발하는 이야기들

더 글로리와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관한 이야기들

이번 이야기는 소제목에서 언급한 두 작품의 유행 상황에 대한 1:1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미리 하고 들어가도록 하겠다. 슬램덩크는 90년대 연재당시보던 팬들도 많았고, 근래의 20대들은 어려서부터 애니메이션을 접해온 탓에 이전세대에 비해 애니메이션에 대한 거부감도 적고 덕질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 글로리와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한 맥락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 수필처럼 들어주었으면 하는 면이 있다.




슬램덩크의 인기가 20대들 사이에서 생각보다 높다. 물론 그 중에는 본래부터 <하이큐!>나 <가비지 타임>, <쿠로코의 농구> 같은 스포츠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사람들도 많지만, 이 전까지 애니메이션에 관한 큰 흥미가 없었던 이들 중에도 그 만화를 좋아하고 슬램덩크 전권을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보이고 있다.

 

문득 그런 신규 유입 오타쿠들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는 드라마를 훨씬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국 드라마를 '각 잡고 보는 것이 피곤하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애장판 24권짜리 만화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보는 것도 각 잡고 보는 것이지 않던가, 6부작, 12부작짜리 드라마를 보는쪽이 더욱 편하고 시간도 적게 걸릴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니, 최근에 나오는 국내 드라마들이 재미있고 공감도 가고 서사의 밀도도 높지만 정서적으로 피곤함을 느낀다, 는 말에 가까웠다. 서사의 밀도가 높고 잘 아는 감정이기에 공감하기도 쉬운 상황이 시청자에게 역으로 피로를 주고 있는 상황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건 조금 특이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본래 그런 감정적 소모가 큰 작품들이 보기에 어려운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전에 <더 글로리> 같은 작품이 없진 않았다. 영화 <내부자들>(2014)은 현실에 발붙이고 있으며 대중은 개돼지라는 정치권에서도 언급되어 버린 희대의 명대사를 만들었지만 거부감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로 듣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영화와 드라마가 갖는 길이적 차이를 감안해서라도 하는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 대해 현실에서 눈돌리고 싶은 생각과 암울한 현실에 대한 전망이 좀 연관이 되어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한다. 2010년대 초반까지, 한국 드라마는 거의 사랑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만 해도 <아이리스>(2009)가 방영 될 때 미국 첩보 드라마는 첩보를 하고, 일본 드라마는 교훈을 주며 한국 드라마는 연애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다 JTBC와 tvN 드라마들이 히트를 하게 되는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 드라마는 사랑보다는 현실적이고 무게감 있는 소재들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작품들이 늘어났고 그 인기도 이전에 비해 많이 커져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확실히 그런 드라마들은 긴장감이 높고, 말하고자하는 바도 확실하며, 현실의 어두운 면들을 직접 조명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논의 점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이 모큐멘터리가 아닌 성공한 드라마로 만드는 것은 그런 암울한 상황을 비현실적인 '사이다' 전개로 승화시켜 쾌감을 부여하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더 글로리>(2023)는 말 할 것도 없고, <SKY 캐슬>(2018), <부부의 세계>(2020), <펜트하우스>(2020)가 비슷한 분위기였고 더 나아가면 <오징어 게임>(2020)도 비슷한 맥락 안에 있다고 말 할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저 이야기를 전해준 이들은 소수이며 그들의 생각이 전체의 생각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평생 오타쿠 혐오를 하던 이들이 갑자기 태세 변화를 한 것에 대해 개인적인 흥미로움을 가지고 있기에 이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실사 드라마보다 거리감이 있다. 그림이라는 데에서부터 생기는 거리감, 현실보다 작위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도 수용되는 분위기, 거기에 더불어 언어와 국가적 감성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더빙, 자막 호불호와도 관련된 문제로, 그런 만화같은 대사를 한국어로 들었을 때 느끼는 부담스러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귀로 들리는 언어와 시각적으로 보는 언어가 차이가 나고 필터링이 될 때는 비슷한 감정의 강도 가진 말이라고 해도 와 닿는 느낌이 크게 다르다. 


물론 이것은 슬램덩크 그 자체가 엄청난 대작인 탓이 크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한다. 지금에 와서는 다소 클리셰적인 소년만화 인물들 (열혈 남주/쿨하고 능력있는 라이벌 포지션의 인물/스승격의 인물/개그와 무게감 사이를 적절히 오가는 감초적 조연/천재기믹의 대립역들 등)이라고 보이지만, 그런 캐릭터들을 정립한 만화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소년만화의 기틀이 되는, 뭐랄까...판타지 판에서 북유럽 설화 기반의 판타지를 정립한 반지의 제왕 같은작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인기가 단순히 사람들이 현재에서 눈 돌리고 싶을 때 때맞춰 나온 작품이기 때문, 그 하나만은 아니며, 그런 상황에서 때마침 나타난 희대의 대작이 빚어낸 신드롬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흥행 이슈 중에 적당한 거리감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빈부격차와 부에 관한 선망에 관한 이야기를하고 있지만 데스게임이 벌어짐에도 동화같은 분위기의 알록달록한 색감, 영희, 쌍문동 골목길 같은 한국적인 배경등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거리감을 주었기에 오히려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웹툰원작 드라마 <송곳>(2015)이 <미생>과 비슷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며서도 그만큼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와도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송곳>은 실제로 있었던 유통체인 까르푸와 관련된 노동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던 작품으로, 주인공 역시 실존인물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송곳>은 지나치게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로 전개 되었다. 그 현실이 녹록치 않았던 탓에 장치적 사이다는 거의 들어가지 못했고, 전개 자체가 우리 삶과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었던데다, 인물들의 나이 역시 많았던 편이기에 소년/청년물 처럼 밝은 미래에 관한 선망 같은 것도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막시즘에 의하면 모든 창작물은 그것이 태어난 사회적 배경에 발붙이고 있다. 애당초 모든 이야기는 사람과 사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것에서 온전히 눈을 돌릴 수도 없다. 극단적으로 그런 현실에서 눈을 돌리려 했던 시도가 이세계물이지 않았던가 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회빙환과 이세계물은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최근의 한국 웹소설 시장에서 이세계물은 많이 사라진 편이지 않나라고 느낀다. 기껏해야 로판이나 무협에서나 현재와 동떨어진 차원의 세계를 향할 뿐 BL, 로맨스, 판타지 같은 장르들은 현재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셜록홈즈> 시리즈가 20세기 초에 유행한 유행한 것은 1차 세계대전 이전 고도 성장기에 대한 영국인들의 향수와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 반면 고전 소설<박씨전>은 병자호란이라는 암울한 시대를 이야기하되, 현대의 말로 '사이다'적 전개를 다루었기에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다.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암울한 뉴스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현실의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때 앞으로 사람들이 더욱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보고 싶어할지, 현실에 발붙이되, 비현실적이나마 이 상황이 타개되는 이야기를 보고 싶어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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