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은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축적'이다

지루함을 '데이터 수집'으로 재정의하는 언어

by WONA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시작하고 얼마 못 가 그만둔다. 이유는 대개 비슷하다.


"지루해서요."

"매일 똑같은 것 같아서요."

"더 이상 배우는 느낌이 없어서요."


그들은 '새로움(novelty)'을 성장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어제와 같은 오늘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새로움'은 아마추어의 유희이고, '지루함'은 프로의 작업실이다.


우리는 이 지루한 반복을 '축적(accumulation)'이라는 데이터의 관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1. 반복(repetition)이 아니라 보정(calibration)이다.

똑같은 일을 매일 반복한다고 느낀다면, 당신의 해상도가 낮은 것이다. 겉보기에 같은 트랙을 도는 것 같아도, 프로는 매 바퀴마다 미세한 영점 조절을 수행한다.


저해상도(지루함)

"Read the same script again today. It's such a drag."

(오늘도 똑같은 스크립트를 읽었어. 완전 지겨워.)

→ 행위의 형태만 본다. 시간 낭비로 느껴진다.


고해상도(데이터 수집)

"My breathing was a bit off yesterday, but I tweaked the pauses today and the delivery improved by 5%."

(어제는 호흡이 짧았는데, 오늘은 끊어 읽는 구간을 바꿨더니 전달력이 5%는 좋아졌어.)

→ 행위의 디테일을 본다. 유효한 데이터가 쌓였다고 느낀다.


반복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원(circle)이 아니다.(만약 그렇다면, 그건 당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일이다.) 위에서 보면 원이지만, 옆에서 보면 서서히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spiral)이다. 당신이 지루함을 느끼는 그 순간이, 사실은 실력이 압축(compression)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구간이다.


2. 인문학적 시선: 노동(labor)인가, 작품(work)인가?

독일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Handwerk hat goldenen Boden." (기술은 황금으로 된 바닥을 갖는다)


한 분야의 마이스터(Meister)가 되기 위해 수십 년간 망치질을 반복하는 그들의 행위는, 겉보기에는 단순한 노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독일의 장인들에게 이 반복은 자신의 삶을 지탱할 '황금 바닥(기반)'을 까는 숭고한 과정이다.


철학사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labor)과 작업(work)으로 구분했다.

노동(labor):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반복. 결과물은 소비되어 사라진다.

작업(work): 세상에 남을 무언가를 만드는 창조적 행위. 결과물은 축적되어 '작품'이 된다.


당신이 지금 하는 업무를 "먹고살기 위해 하는 노동"으로 정의하면, 당신은 영원히 지루함의 굴레에 갇힌다. 하지만 이것을 "나의 커리어라는 작품을 축조하는 과정(work)으로 정의하는 순간, 지루함은 '황금 바닥을 다지는 시간'으로 바뀐다.


3. 영어적 통찰: Stuck in a rut? No, finding a groove.

영어 표현 중에 "stuck in a rut"이라는 말이 있다. 바퀴가 진흙 구덩이(rut)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 즉 '틀에 박힌 매너리즘'을 뜻한다.


많은 직장인이 반복되는 일상을 보며 "I'm stuck in a rut(나 정체된 것 같아)"이라고 한탄한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면 그 'rut(홈)'은 나쁜게 아니다.


음악에서 'groove(흥, 리듬)'라는 단어는 원래 LP판의 얇은 홈(groove)에서 유래했다. 바늘이 그 홈을 정확하고 깊게 타고 흘러야 비로소 최고의 음악이 나온다.


Boring(감정의 영역): "I feel like I'm stuck in a rut." (틀에 박혀 꼼짝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야.)

Disciplined(태도의 영역): "I'm finding my groove." (난 나만의 고유한 리듬을 타고 있어.)


남들이 지루해서 떠난 그 자리에 깊게 파인 홈(rut). 그것이 갇힌 구덩이가 아니라, 당신만이 탈 수 있는 고유의 트랙(groove)이 되고 잇는 것이다.


그러니 반복에 대해 이야기할 때, repetitive(단순 반복) 대신 iterative(개선적 반복)라는 단어를 써라.

It's an iterative process.

이 말은 당신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게 아니라, 매회 실행마다 버전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4. 임계점(Critical Mass): 영어는 직선으로 늘지 않는다

새해가 될 때마다 많은 이들이 '영어 마스터'를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3월이 되기도 전에 대부분 포기한다. 의지가 약해서일까? 아니다. 성장의 그래프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투입한 시간만큼 실력이 정직하게 오르는 '직선 그래프(linear)'를 기대한다. 어제 단어 10개를 외웠으니, 오늘 10만큼 영어가 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언어의 성장은 직선이 아니다. 지루한 평행선을 긋다가 어느 순간 수직으로 치솟는 '계단식(step-function)' 혹은 '지수함수(exponential)' 그래프를 그린다.


착각

"I'm not getting any better. I guess I have no talent."

(아무리 공부해 안 돼. 나는 소질이 없나봐.)


진실

"I'm building critical mass right now."

(지금 임계점을 향해 데이터를 쌓는 중이다.)


물은 99도까지는 끓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10도일 때나 99도일 때나 고요한 물이다. 하지만 1도가 더해져 100도가 되는 순간, 액체는 기체로 폭발하듯 변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귀가 트이고 말이 터지는 그 폭발적인 순간은, 당신이 가장 지루해하며 견뎠던 그 수많은 '99도의 시간'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대부분은 바로 그 1도, 폭발 직전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내려 놓는다.


지금 영어가 늘지 않아 답답한가? 축하한다. 당신의 물은 지금 99도다. 끓기 직전이 가장 고요하고, 폭발 직전이 가장 지루한 법이다.


5. 신뢰는 지루함에서 온다

클라이언트와 회사는 당신의 '톡톡 튀는 창의성'을 좋아할까? 착각이다. 그들이 돈을 지불하는 진짜 이유는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분이 좋든 나쁘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항상 일정한 퀄리티를 뽑아내는 그 '지루한 일관성'. 그것이 바로 신뢰(trust)의 정체다.


당신의 루틴이 지루할수록, 타인이 당신에게 느끼는 안정감은 높아진다. 타인의 불안을 제거해 주는 대가, 그것이 바로 연봉이다.


오늘 또다시 지루한 과업 앞에 섰을 때, "지겹다"는 말 대신 이렇게 선언하라.

I'm fine-tuning my craft.(나는 나의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다.)

Boring: "This is boring."(지루해.) → 수동적 감정

Fine-tuning: "I'm fine-tuning right now." (최적의 주파수를 맞추는 중이야.) → 능동적 행위

지루함은 버티는 것이 아니다. 원석을 보석으로 깎아내는 수련(discipline)의 시간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마무리: 지루함의 총량이 당신의 깊이다

화려한 결과물은 짧다. 하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 쌓아올린 지루한 시간은 길다. 독일의 속담처럼, 당신이 묵묵히 견디고 있는 이 지루한 반복은 당신의 커리어 바닥을 황금(gold)으로 바꾸고 있다.


지금 "stuck in a rut"이라고 느끼는가? 축하한다. 당신은 지금 얕은 웅덩이를 넘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깊이(depth)를 파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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