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실수
직장 생활에서 가장 어색한 순간 중 하나는 연봉 협상이다. 내 성과를 스스로 말해야 하고, 그 말이 곧 내 몸값이 된다.
이 중요한 테이블에서 많은 한국 직장인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바로 '겸손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팀원들이 한 거죠."
이 겸손의 미덕이자, 예의바른 태도가 냉정한 비즈니스 언어의 세계에서는 미덕이 아닌 '정보 누락(omission)'이 될 수 있다.
언어학자 폴 그라이스(Paul Grice)는 효율적인 대화를 위한 4가지 원칙, 이른바 '협력 원리(Cooperative Principle)'를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양의 격률(Maxim of Quantity)'이다.
"필요한 만큼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라."
(Make your contribution as informative as is required.)
당신이 밤을 새워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음에도 "별거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건, 엄밀히 말해 정보 누락이다. 거짓을 말한 건 아니지만, 상대방의 판단에 필요한 핵심 정보—당신의 기여—를 빠뜨린 것이다.
영어권 비즈니스 화법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Underselling(과소평가)'이다. 당신이 당신의 가치를 '할인'해서 말하면, 상대방(회사)은 그 할인된 가격을 '정가'로 인식한다.
생물학에 '신호 이론(Signaling Theory)'라는 개념이 있다. 공작새 수컷은 거대한 꼬리깃을 펼쳐 자신의 건강과 유전적 우수성을 암컷에게 '신호'로 보낸다. 이 신호가 약하면 선택받지 못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성과는 시장에 보내는 신호다. 신호를 약하게 보내면, 시장(회사)은 당신을 저평가한다. 겸손은 신호 강도를 스스로 낮추는 행위다.
사적인 자리에서의 겸손은 관계를 부드럽게 한다. 하지만 공적인 자리, 특히 평가와 보상이 오가는 테이블에서는 다르다.
Social Modesty(사회적 겸손): 관계를 위해 자기를 낮춤. 사적인 맥락에서 유효.
Professional Accuracy(직업적 정확성):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함. 공적인 맥락에서 필수.
회사는 당신에게 월급을 주고 노동력을 구매한다. 따라서 당신은 자신의 성과를 구매자에게 정확히 보고할 책임이 있다. 성과를 축소 보고하는 것은 제품 스펙을 실제보다 낮게 기재하는 것과 같다. 예의가 아니라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누락이다.
성과를 말하는 게 쑥스러운 이유는 그것을 '자랑(bragging)'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임포스터 신드롬(Imposter Syndrome)'이라 부른다. 객관적 성과가 있음에도 스스로를 사기꾼처럼 느끼고, 언젠가 "들통날 것"이라는 불안에 시달리는 심리 상태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현상이 문화권에 따라 발현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겸손이 사회적 미덕으로 강조되기 때문에, 자기 성과를 말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보고된 바 있다.
프레임을 바꿔라. 당신은 자랑하는 게 아니라 팩트를 전달(Delivering Facts)하는 것이다. 칭찬이나 인정을 받을 때, 튕겨내지 말고(Deflect) 받아서 사실로 연결하는 (Bridge to Fact) 화법을 익혀야 한다.
겸손이 과잉되면 이런 말이 나온다.
"Oh, no. It was nothing. I just got lucky with the timing."
(아유, 아닙니다. 별 거 아니에요. 타이밍이 좋았죠.)
문제는 당신의 노력(effort)과 역량(competence)을 '운(luck)'이라는 외부 요인으로 돌려버렸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대체 가능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셈이다.
사실 기반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바뀐다.
"Thank you. I'm glad the new strategy on A paid off."
(감사합니다. A에 대한 새로운 전략이 성과를 거둬 기쁩니다.)
'Thank you'로 칭찬을 수용하고, 'Strategy'라는 단어로 이것이 운이 아니라 당신의 설계였음을 드러낸다. 과장이 아니다. 누락 없이 전달하는 것이다.
감정에 기대면 이런 말이 나온다.
"I worked really hard on this project."
(저 이 프로젝트 진짜 열심히 했어요.)
'열심히(hard)'는 주관적이다. 측정할 수 없다. 상대방은 "그래서 결과가 뭔데?"라고 생각한다.
인과 관계로 정리하면 이렇게 바뀐다.
"I focused on optimizing the process, which cut costs by 15%."
(프로세스 최적화에 집중했고, 그 결과 비용을 15% 절감했습니다.)
패턴은 [action 동사] + [result 숫자]다. 그리고 문장의 주어 'I'를숨기지 마라. 영어권에서는 주어가 되는 사람이 책임과 공로(Credit)을 모두 가져간다.
회계 용어로 직원은 비용(Cost)이면서 동시에 자산(Asset)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별 거 없는 사람"이라고 포장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보유 자산의 가치가 낮아 보인다. 당신이 스스로의 가격표를 내리는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Magnanimity(자긍, 당당한 자기 인식)'를 주요 덕목 중 하나로 꼽았다. 그가 정의한 이 덕목은 "자신이 큰 일을 해낼 자격이 있을 때,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반대로 자격이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낮추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pusillanimity(비굴함, 소심함)'라고 불렀다. 자신의 가치를 아는 것은 오만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이번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는 '죄송합니다', '부족하지만'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마라. 대신 이렇게 문장을 시작하라.
"My contribution was..."
(제가 기여한 부분은...)
정확한 팩트를 말하는 것. 그것이 당신의 가치를 지키고, 회사의 판단을 돕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그러다 진짜 그게 당신의 몸값이 된다.
"Don't sell yourself short."
(당신의 가치를 헐값에 매기지 마라.)
'sell short'는 원래 주식 용어로 '공매도'를 뜻한다. 가격이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미리 파는 행위다. 스스로를 sell short 한다는 건, 자기 자신의 하락에 베팅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당신의 하락에 베팅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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