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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Nov 16. 2022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프롤로그

원격수업으로 새 학년을 시작하던 어느 날,
수업 중 한 학생이 나한테 "선생님, 물만두 같아요."라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학교에서 눈에 띄는 선생님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자세한 경력도, 나이도, 사생활에 관한 건 아무것도 밝히지 않아 미스테리한 선생님이다. 그렇다고 외모나 목소리가 특별하지도 않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흔한 선생님이다. 나이는 교직에서 젊은 편이지만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지도, 그렇다고 특별한 애칭이 있지도 않은, 어쩌면 학생들이 싫어하는 선생님보다 더 존재감이 없는 선생님이다.


그런 나에게, 오로지 실시간 영상으로 만난 선생님에게 한 학생이 물만두 같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처음 느낀 감정은 당황이었다. 첫 번째, 내 과목은 요리나 음식 이야기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두 번째, 갑작스럽게 생긴 애칭에 어떤 반응을 해주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물쭈물한 그 시간, 그 반 학생들은 하하하 웃으며 "물만두쌤이네" 라고 이야기했고 순식간에 나는 물만두쌤이 되었다. (지금은 불만두와 마라만두를 거쳐 만두쌤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에게 처음 생긴 애칭을 학생들의 애정이라고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사용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나를 잘 표현해주는 단어가 없는 것 같다.


물만두쌤


그렇다. 나는 물만두처럼 성격이 유한 사람이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지만 갈등을 너무 싫어하여 갈등이 생기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유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에게 갈등은 모든 것을 멈춰버리는, 관계가 파괴될 수 있는 무서운 것이다.

내가 그 문제에 대해 힘들어하는 것보다 누군가와의 갈등이 생기는 게 더 힘들다. 그것이 학생이든, 학부모든, 동료 교사든, 선배교사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아무 상관없다. 그저 "누군가와의 갈등"이 힘들다.


학생과의 수업에서도 신나게 설명해놓고 "이 표현은 조금 그런가", "이 비유는 조금 그런가"를 덧붙이는 그런 선생님이다. 아마 한 달도 안 된 시간 동안 나에게 물만두라고 하였던 그 학생이 사람 보는 눈이 있었던 것 같다.


주요우울장애


갈등을 피하고 나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상처 주는 일이다. 상처를 끊임없이 준다는 건 괜찮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을 자신의 탓을 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상처를 치유해줄 수 없으며, 치유가 되지 않은 상처 위로 다시 또 상처가 생기기 때문이다. 상처가 반복되면 곪을 수밖에 없다. 곪은 상처를 그대로 두면 썩을 수밖에 없다.


나는 오랜 시간 우울증을 앓았으며, 최근 주요우울장애를 진단받을 만큼 깊은 우울감에 빠져있다.

집에서 자살시도를 하다가 가족이 보게 되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우울해도 가르칠 수 있어요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한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


"우울증이면 학생들에게 우울한 거 전파하는 거 아닌가요?"

"우울증 걸린 선생님이 뭘 가르칠 수 있죠?"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끼쳐지는 것 아닌가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내가 맡았던 반은 항상 나와는 상관없이 학년에서 공부를 잘하는 반이었고, 진학/취업을 잘하는 반이었고,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유쾌한 반이었다.

내가 운 좋게 좋은 반을 맡았던 것일 수도 있다.(물론 아니다. 정말 힘들었다. 매해.)

하지만 단언컨대 나는 단 한 번도 학생들에게 우울감을 전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우울감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이해하였다.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해서.


우울해도 가르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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