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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림 Jul 26. 2022

도시의 얼굴

도시건축사이 #1

 거리를 걷다 보면 도시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도시 구조와 건축물의 형태보다는 간판광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골목의 간판은 기형적인 형상과 원색 계열의 강렬한 색채로 눈을 피곤하게 만든다면, 어떤 골목의 간판은 지역 특색을 살리면서 건축물의 형태, 색상과 조화를 이루어 카메라에 담고 싶게 만든다. 난잡하고 정신없는 도시와 편안하고 아름다운 도시. 그중 어떤 도시에 있고 싶은가.


 간판이란 기관, 상점, 영업소 따위에서 이름이나 판매 상품, 업종 따위를 써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게 걸거나 붙이는 표지를 뜻한다. 상품과 서비스를 다수의 사람들에게 노출시켜 상품의 인지도를 높이고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간판의 크기와 수량을 늘리고, 색채를 강렬하고 무질서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가? 그러기엔 우리는 디자인 감각이 꽤 뛰어난 민족이다.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어울리는 간판이 걸려있는 서울 망리단길과 안양 댕리단길, 간판이 아예 없거나 작은 팻말만 달린 을지로 거리와 장진우 거리 등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골목들은 각종 간판, 입간판, 현수막, 벽보 그리고 건물에 부착된 전단지들로 가득 차 도시의 경관을 산산조각 내고 있다.

(좌) 이태원 오든, (우) 동대문 하브
(좌) 동대문 스시코야, (우) 강화도 토크라피

 우리나라는 급격한 도시 개발과 상가 지역이 확대되면서 각종 간판이 난립하게 됐다. 발걸음을 내딛기 전부터 이 거리가 유흥가인지, 학원가인지, 병원가인지 알 수 있다. 분명히 가로를 지나가는 통행인에게 광고를 하기 위해 제작, 설치되었건만 오히려 가고 싶지 않은 거리만 만들어졌다. 빨강, 노랑, 파랑 등 한정된 3~4 가지 색, 고딕체 글씨 등 한두 가지 패턴으로 획일화되면서 광고효과는 떨어지고, 도시의 미관만 방해하는 문제를 낳았다.

서현역 근린상업지역
동탄호수공원 일반상업지역 

 상업, 업무, 주거의 기능을 적절히 섞으며 용도를 규제했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용도는 도시 경관을 더 망가뜨린다. 상업지역에서 간판들이 무분별하게 건물 외관을 가리는 동안 업무지역에는 메탈 커튼월 외관의 오피스 빌딩들이 밀집해 투명 유리 빌딩 숲을 만들고, 주거지역에는 단지별로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 똑같은 일반상업지역이어도 저층부에 상가를 두고 상층부에 오피스를 두면 꽤 괜찮은 도시경관을 형성한다.

문정역 일반상업지역

 뒤늦게 간판의 표시장소 및 방법, 게시시설의 설치, 유지 등을 법과 시행령 및 조례로 정하여 규제하고, 간판정비사업을 통해 가로환경을 개선하고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규제를 강화할수록 빠져나갈 허점도 많아진다. 간판의 수량을 규제하면 크기를 키우고, 크기를 규제하면 유리창 외관에 광고물을 부착한다. 가로간판에 대하여 지역의 구분 없이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규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전국의 모든 도시의 분위기가 똑같다면 우리는 굳이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지 않는다.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 있는 도시 경관을 향유하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움직인다. 우리는 다양한 공간을 걷고 싶어 하니까.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시장이 생기고, 돈을 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는 간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상가보다는 그 동네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골목으로 향한다. 내 가게가 있는 곳이 모두가 오고 싶어 하는 도시 공간이 되길 바라는 욕심.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간판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삼청동길 커피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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