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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림 Mar 22. 2023

도시독립생활

도시건축사이 #5

 서울을 벗어나 살고 싶다는 부모님의 오랜 소망덕에 나는 대학교와 직장을 거치는 시간 동안 서울에서 혼자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나갔다. 건축학과를 다니면서 6평 겨우 넘는 방에 앉아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주거공간을 설계하고 있는 현실에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대상지 주변 현황을 분석하면서 토지이용계획도에 250m마다 있는 어린이공원의 쓸모를 의심하던 대학생의 나는, 집을 보러 다니며 지하철역까지의 거리보다 공원까지의 거리를 먼저 계산하는 어른이 되었다.


  첫 자취방은 역세권 오피스텔이었다. 편리하고 깔끔하게 살았지만 행복하진 않았다. 남향의 창을 가지고서도 왕복 8차선 도로의 소음과 먼지쉽게 열지 못 했고, 방의 주도권은 침대와 책상에게 넘어가 빨래 건조대라도 꺼내는 날엔 벽이나 모서리에 찧여 멍드는 게 일상이었다. 좁은 공간이 나를 조여 오는 기분이 들 때면 총학생회실과 설계실을 떠돌다 막차 시간이 되어서야 잠을 자러 들어갔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방학에는 우울과 답답함이 찾았다.


 잠깐동안 조부모의 집에 머물렀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독립하기 위해 급하게 대학가 다가구 주택으로 들어왔다. COVID19으로 대학에서 비대면 수업이 이어져 빈집이 많았고, 덕분에 가장 큰 방을 골라서 보증금도 절반만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집에서 두 번의 봄을 보내며, 나는 살아가는 공간이란 건축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익숙한 모든 풍경임을 알았다.

 사각형 콘크리트 건물에 억지로 끼워진 삶을 살다, 온전히 나를 위한 공간을 만나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는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주말에 늦잠 자는 것보다 아침마다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일어나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고, 러닝머신은 재미없지만 바깥공기를 마시며 달리는 건 즐거워하며, 슈퍼나 체육관을 갈 때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더 걷더라도 골목으로 돌아가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공간의 무게가 달라지기도 했다. 주말에 마음을 굳게 먹고 나서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던 도서관이 집 앞 5분 거리에 놓이자 가벼운 마음으로 매일 들를 수 있었다. 책을 읽지 않아도 공부를 하러 가다 도서관에 얼마나 많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있는지 알게 되면서 글쓰기 강좌부터 유화 그리기, 드립 커피 체험 등을 돈 한 푼 내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다. 맥도날드 배달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을 '맥세권', 스타벅스가 도보 가능한 거리에 위치한 '스세권'이라고 한다는데, 나는 슬리퍼를 신고 편하게 도서관을 갈 수 있는 '도세권'이 중요해졌다.

 직주근접이 가능한 복합용도의 건축물, LIVE-WORK-PLAY가 한 번에 가능한 도시를 설계하면서 정작 나는 환승하지 않는 선에서 직장과 집은 떨어져 있는 게 좋았다. 지하철의 적당한 소음은 책을 읽기에 적합해 일주일이면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집이 멀어져도 그만큼 독서할 시간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썩 나쁘지 않았다. 집과 회사 두 공간을 건너 다니다, 휴가에는 평소 보지 못했던 평일 낮 강북의 모습을 눈에 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도시가 복잡해지고 건물이 늘어나면서 공간은 다채로워졌지만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이전의 나처럼 맞지 않는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도시와 어긋나 있진 않을까. 다비치의 강민경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강변 정남향 아파트에 살 때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다, 깊은 해가 들어오는 서향집으로 이사 오면서 영감과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자신이 어떤 빛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주변 동네분위기는 어떤지 파악하기도 전에, 남들이 선망하는 조건만 갖췄다면 좋은 집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건축이나 도시에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정답이 존재하지 않아 부동산적인 관점이나 문화적인 관점, 역사적인 관점에 따라 좋은 집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그저 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을 살아갈 자신을 중심으로 봤을 때 지금의 집과 삶을 사랑할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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