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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림 Mar 21. 2022

유명과 무명

예술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 취미는 모방이었다. RM 아닌 김남준의 일상은 흉내 내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가 본 전시와 작품을 따라 움직였다. 졸업 작품이라는 거대한 산이 설계가 아닌 모든 것들을 가로막던, 건축이 아닌 예술은 허용되지 않던 시절을 보내자마자 무언가를 함께 바라봤다는 공통의 아름다움을 좇아 전시장에 갔다.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화백부터 생소한 작가의 작품을 뒤늦게라도 비슷한 거리에서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문화예술이 나에게서 얼마나 동떨어져있었는지, 나는 얼마나 나의 전공을 배반하며 지냈던 것인지 깨달았다.


 그때, 예술은 도무지 감동이 아니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사적인 생각도 없어서, 나를 이곳으로 이끈 그가 먼저 느꼈을 감동도 알지 못해서, 나의 미술관 답사는 오로지 정복이었기에. 그가 사진을 찍은 위치에 서서 무수한 의문을 느끼면서도 결코 돌아서지 못하다, 스스로를 부정한 채 끝내 예술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그가 다녀간 전시장은 한순간에 유명해져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었다. 기진한 내가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점차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에서 스쳐 지나간 캔버스의 풍경이 마음속에 펼쳐졌다. 그렇게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찾고, 신진 아티스트 단체전을 찾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붙어있는 포스터 한 장만이 전시가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좁은 방,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5분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졌고, 직원 한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지의 세계의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색을 멋대로 느끼고 싶어 나는 혼자서 한참 동안 공간에 머물렀다. 전시 기념 티켓을 구매하려던 내게 값을 받지 않겠다던 직원의 마지막 말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봐주신 분은 처음이에요.”


 예술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기다림 위에 걸려있다. 작품은 우연히 전설로 박제되어 십만 명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눈에 담기거나, 지독한 고독 속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다 무용한 것으로 차츰 지워진다. 작품성이 뛰어나서 유명해지는 걸까, 유명해졌으니 예술적 가치를 논하는 걸까. 우리는 예술을 사랑해서 보러 가는 걸까, 유명해서 보러 가는 걸까.

 

Leonardo da Vinci, <Mona Lisa>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지라가 사라진다. 그저 그런 작품이었던 모나리자는 도난당하고도 24시간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으나, 도난사건이 보도된 순간부터 그림이 걸려 있던 빈 공간을 보기 위해 파리 시민들이 줄 지어 섰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2년 동안 유리공으로 일했던 빈센초 페루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미술상에게 팔려다가 체포되었고, 이탈리아 사람인 다빈치가 그린 그림이니 당연히 이탈리아에 있어야 한다는 인터뷰를 여러 차례 가지면서 국민의 영웅으로 칭송됐다. 이후로 모나리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20세기 최대의 명화가 되었다. 오늘날까지 모나리자를 좀 더 가까이서 보겠다고 수많은 관람객이 서로를 밀치는 동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동시대에 그린 다른 유화 몇 점 앞은 한적하다. 예술은 이토록 잔인하게도 사소해 보이는 우연한 사건으로 유명과 무명의 길로 갈린다.


YOSIGO, <F. SAN SEBASTIAN>

 그럼에도 희망적인 이야기는 디지털 기술 덕분에 여러 문화적 상품이 전례 없이 매우 작은 규모로도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페인의 사진작가 요시고(YOSIGO)는 SNS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다 글로벌 잡지와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게 됐다. 정교한 검색 알고리즘은 비슷한 취향의 작가와 구매자를 연결하면서 유명해질 수 있는 우연한 순간들을 낳고 있다.


 유명과 무명 속에서 내가 사랑할 작품을 찾아보는 일. 그가 내게 한없이 권한 먼 아름다움을 무작정 따라가다 고유한 방식으로 내 삶에 도래한 낭만성. 그것이 단순히 모방 이상의 것이었음을 이제 안다. 나는 그에게 예술이라는 장르를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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