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무게란, 쏟아지는 감정들을 막는 댐의 무게, 딱 그 정도가 아닐까. 어른인 나는 행복을 지나치게 좇지 않고, 사랑에 몰두하지 않으며, 슬픔에 함몰되지 않음으로써 굳건해진다. 그러나 나는 때로 범람하는 감정에 무너지곤 했다. 무책임한 말들과 반복되는 상황들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속에서부터 타들어 입 밖으로 불덩이를 뱉을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을 지나, 연소된 감정들은 온몸을 차갑게 식혀 오한까지 들게 했다. 그리고 나서야 찾아오는 은은한 고독의 시간 동안 다시 댐을 쌓았다. 더 높고, 더 두껍게.
처음에는, 숨이 막혀올 정도로 무작정 달리거나, 활자에 중독된 듯 닥치는 대로 책 속의 문장들을 읽었다. 육신이 지치면 감각도 무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프지 않으려고 감정이나 생각을 희미하게 만들자, 사랑이나 행복같이 무용하므로 아름다운 것들까지 감동적이지 않게 됐다. 그때의 나는 오로지 절망이었다. 생의 버거움에 함몰되어서 열망까지 빼앗긴.
길고 무겁던 계절을 보내고 나는 작은 방 문을 닫고 펑펑 울었다. 내일도 어른이기 위해서, 홀로 오롯이 남았을 때 댐까지 차오른 것들을 방류해야 했다. 지나간 순간들의 감각을 뒤늦게 더듬으며, 생의 감각이란 무엇인지, 그저 매끄럽기만 하다면 생은 아프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야속함을 깨달은 채.
앓지 않았던 하루들이 뭉텅뭉텅 사라지자, 나쁜 감각들을 대신해줄 형체 없는 이를 바랐다. 메모장을 열어 헤프게 글을 썼다. 소설 속 주인공은 하염없이 불행했다. 조금이라도 행복할 상황이 다가오면 끝도 없이 추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난 다음 글 안의 나는 내 상처 하나 돌보지 못하는 괴로운 인간이니 현실의 나는 기쁨, 만족, 사랑만을 느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 나은 어른이 되면, 무참히 쏟아지는 감정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겠지. 댐에 방치하듯 가뒀다 희미해질 때쯤 뒤늦게 감각하는 일도 관둘 수 있겠지. 어쩌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의 출처를 적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