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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Feb 27. 2024

에이피알, 따따상 간다며

돈을 벌었는데 돈을 잃었다

돈을 벌었는데 돈을 잃은 것 같은 이 언짢은 기분은 대체 무엇인가.


다른 이들이 주식으로 돈을 한참 벌고 이제 막 털고 나오려던 그 시점에서야 나도 한번 해볼까 하며 주식계좌를 텄던 나는 계좌 개설과 함께 마이너스를 맞이했다. 이때가 기회라고 물타기를 권유받자 이번에는 빠릿빠릿 말을 잘 듣자며 물타기를 했고 예상 가능한 흐름 그대로 흘러가 지금 몇 년째 파란 숫자로 묶여 있다. 이제 이것이 빨간색이 되기만 하면 팔겠다 굳게 다짐했는데 딱 한번 빨갛게 오른 날 이제 오르기 시작이라는 말을 믿고 또 매도하기 버튼을 누르지 못했으며 그날 이후 빨간색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있다.


주식은 멘털이 약한 내게 맞지 않는다.

이제 빨간색이 되면 지체 없이 팔고 그 외에 주식은 절대 하지 말자'

다짐을 하며 증권사 앱을 잊고 살고 있던 때였다.


분명 매일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월급이 나오긴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헉 소리가 나게 모든 것이 비싸지는 건가 했는데 그게 잠깐 그런 게 아니라 쭈욱 이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 주변에 돈이 많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가.

마치 어딘가에서 나눠주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에 찍혀있던 마크의 정체는 패딩 하나에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브랜드 로고였다는 것을 알고 무언가 심술이 모락모락 나는 시기가 온다.


공모주로 소소하지만 꾸준히 돈을 벌고 있다는 M의 권유.

자녀 계좌를 만들기가 참으로 번거롭기는 하지만 자녀계좌까지 터서 온 가족의 계좌로 공모주를 신청하고 배정받고 팔았더니 그래도 몇만 원 몇만 원씩 모아 상당히 수익을 냈다는 M의 말에 갑자기 또 귀가 팔랑팔랑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첫 타자가 에이피알이었던 게다.

공모주 청약을 위해서는 그 전날까지 계좌개설신청을 마감하라고 했는데 괜히 미루다 그다음 날이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한 계좌를 증권사에서는 4시간 만에 개설해 줬다. 어찌나 고마운지.


그런데 금액이 엄청 커졌단다. 1인당 125만 원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으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단다.

100명 중에 6명밖에 배정을 받지 못한다는 거다.

빚내서 주식한 사람 여기 있다.

그런데도 주변에 모두 0주를 배정받았단다.


그런데 거기에 아이 계좌로 한 주를 배정받았던 거다.

이미 돈 번 기세다.

모두가 축하를 해준다.

우리끼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따따블이 예상된단다.

상장일 첫날 100만 원을 찍으며 황제주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뉴스에 귀가 펄럭펄럭거리더니 몇 년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코트를 주문한다.

75만 원을 버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며 소심하게 곧 돌아오는 생일을 들먹이기까지 했다.


오늘, 상장일.

요즘 수면의 질이 전반적으로 좋지는 않았으나 간밤은 유난했고 분명 그건 에이피알 때문이다.

장외가가 65만 원이랬다. 시작을 45만 원으로 하고 잠시 후부터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보고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 알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때는 몰랐지.

초반에 물량이 나왔다가 오를 수도 있다는 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숫자가 계속 떨어지다가 또 중간중간 잠깐씩 오르는 게 눈에 보이자 사람은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처음에 40만 원에 걸어놨다가

37만 원에 이를 어쩌냐며 고민했는데

34만 원이 되고, 어떻게 여기서 파냐 하다가

순식간에 31만 원으로 내려가더니

20만 원대로 떨어진다.

소심한 멘털은 버티지 못하고 28만 원대에 팔고 만다.

팔고 나서 증권사 앱을 열지 않았으나 소심하게 조금 전 종가를 확인하고 만다.

팔 때도 알았지만 거의 내가 최저가에 던졌다 싶다.


25만 원 공모가에

4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수익.


4만 원이 작은 돈이냐면 분명 아니다.

더욱더 슬플 뿐이지만, 2년간 브런치에 글을 써서 브런치로 벌어들인 수익은 응원하기 1만 6천 원에 대해 들어온 수익 10,818원이 전부이니 이것의 세배도 넘는 셈이긴 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4만 원을 벌었는데

어째서 나는 21만 원을 잃은 기분인가.


애초에 시초가 45만 원에 팔고 주식창을 열지 말 것을-하는 생각은 하지 말자고 하며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북극곰이 바로 떠오르듯

그 생각을 하지 말자면서 계속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기분이 상당히 나쁘단 말이다.


돈을 벌었는데 돈을 잃은 것 같고.

처음부터 내 돈이 아니었는데 내 돈이었던 것처럼 아쉬운.

이 알 수 없는 기분은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 주 배정받기만 했는데, 아직 상장도 되지 않았는데 주문한 코트.

문자가 온다.


주문한 상품의 매장수급이 어려워 배송이 지연되고 있고, 취소 안내를 하게 될 수도 있단다.


에혀.

코트가 선견지명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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