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대회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포도나무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려보고자 마음먹었다. 내가 그린 그림 속의 포도나무를 쪼아먹기 위해 새가 날아올 정도로, 리얼한 그림을 그려보고자 했다.
한참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옆 사람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말했다.
"이봐요, 그렇게 그림 그리면 안 돼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을 했다.
"사실주의 그림은 몇 백년 전에 이미 유행이 지난 미술사조예요. 너무 없어보이잖아요. 현대미술에서는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대상이 실제로 그러한지를 알 수 없다는 인식론적 한계가 반영되어야 하며....(블라블라) 그래서,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고, 수상은 꿈도 꿀 수 없을 거예요."
나는 그가 말하는 '현대미술의 트렌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것과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릴지를 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냐고 물었고, 그는 또 다시 여러가지 용어를 섞어가며 약 5분에 걸쳐 혼자 떠들어댔다.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해보자, 나는 그가 그리려는 그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없지만 있어 보이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포도나무같은 작은 피사체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웅대한 우주적인 것(정확히는 우주적인 느낌을 주는 실체가 없는 것)을 그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첫째, 이 대회에 제대로 된 심사위원이 있다면, '있어 보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작품'은, 그저 겉을 흉내 내기만 한 속빈 강정이라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둘째, 만약 심사위원 중에 그것을 가려낼 안목을 가진 자가 없다면, 그의 작품은 통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 작품도 통과할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의 통과 여부와 내 작품의 통과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셋째, 설령 내 작품이 통과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모든 일이 그렇듯, 잘될 수도 있지만 잘 안될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도 참이다. 내가 해야할 일은 내 그림을 최선을 다해 완성시키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내 그림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옆에서 계속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혀도 끌끌 차면서.
나는 제발 그가 말을 멈추고 본인의 그림이나 그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줄텐데, 왜 자꾸 말만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Fuck t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