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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Jan 07. 2024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자

TED로 한 영어 수업

자기소개를 주제로 첫 수업 구상을 마친 뒤, 본격적인 수업 고민이 시작됐다. 영어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는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수업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각종 매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료는 영상부터 텍스트까지 실로 방대했고,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중 무엇에 초점을 맞출지도 모두 교사의 재량이었다. 설레지만 막막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공립학교 교사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한 해동안 내가 맡을 과목명과 학년을 배정받은 뒤 개학까지 2주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전혀 해보지 않은 방식의 수업을 선뜻 시도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평소 관심이 많았던 TED 자료 중에서 외고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 수업에 활용하기로 했다. (TED 홈페이지 링크)




그렇게 첫 TED 수업 자료로 Amy Cuddy의 'Your body language may shape who you are, ' 즉 '너의 보디랭귀지가 너를 만들지도 모른다'를 골랐다. (영상 링크) 영상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평소 취하는 신체적인 자세나 몸의 움직임이 곧 마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양을 하늘 높이 쭉 뻗는 행위를 하거나 곧은 자세를 유지하는 사람이 몸을 움츠리거나 다리를 꼬는 사람보다 자신감 있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는 식의 주장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는 실험을 토대로 한 연설이었지만, 내용 자체가 흥미로웠다. 또한 TED 영상 중에는 연사의 주장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 영상은 주제가 명확해서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워 보였다. 무엇보다도 '긍정적 몸가짐'이 '긍정적 마음가짐'과 연관이 있다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다.




한 해 동안 내가 맡게 될 학생들은 이미 1년의 시간을 외고에서 보낸 2학년들이다. 특목고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지만, 여전히 외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영어 수준이 높고 학습 태도가 우수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학교에서 혹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주목받았을 것이고, 외고에 합격했다는 사실만으로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고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끼며 입학했을 것이다.


하지만 1년의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학교 잘 못 온 것 같아요."라는 말을 종종 꺼낸다. 소수의 우수한 학생들끼리 모인 외고의 경쟁은 생각보다 더 치열하기 때문이다. 처음 받아보는 성적표에 좌절하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니 수업이 끝나도 학교를 벗어날 수 없고, 시험이며 동아리 활동이며 해내야 할 과제들을 '쳐내다' 보면 1년이 훌쩍 지나 전학도 자퇴도 쉽지 않은 상황, 그런 겨운 상황에 처한 세대가 외고의 2학년들 대다수이다.


이 아이들의 내신 등급을 나누는 장본인인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습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로 내가 가르칠 학생들이 이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갖길 바랐다. 몸을 잔뜩 구부리고 엎드려 있기 대신, 조금이라도 더 몸을 움직여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활기를 찾길 바랐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학교에서 앞으로 보낼 2년의 남은 시간이 힘들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은 총 2차시로 나누었다. 1차시는 자세가 마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내용 이해 문제를 푼 뒤, 자신이 자주 취하는 자세와 그 자세를 을 때 드는 느낌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2차시는 TED 영상을 서론, 본론, 결론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시청하고 내용 이해 문제를 풀다. 모든 문제 풀이는 스스로 먼저 답을 써보고, 짝과 서로의 답을 비교하며 이야기해 본 뒤, 마지막으로 발표를 하는 Think-Pair-Share의 단계로 진행했다.


많이 준비하고 또 긴장됐던 수업이었다.  수업부터 발표가 많이 필요한 방식을 택했다 보니 학생들도 다소 긴장한 모습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참여했으며, 수업을 마친 뒤 제출한 학습지의 완성도도 기대 이상이었다.  모든 학생이 나에게 눈을 맞추고 내 말을 진심으로 듣고 있다는 느낌이 참 오랜만이라 소중하고 감사했다.


1년의 수업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나갈지 정했다. 앞으로도 학생들에게 해주고 말을 수업고 싶다. 직접적인 말로 전달할 수도 있지만, 텍스트를 읽고 공부하며 스스로 알게 된 내용은 기억에 오래 남고 마음에 더 잘 와닿는다. 그렇게 때로는 격려가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되는 수업을 하고 싶다.








(참고: 외고 첫 근무 시절을 추억하며 씁니다.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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