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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Feb 18. 2024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로 수업하기

외고 학생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정신없이 기말고사를 치르고 여름방학을 맞이했을 때의 나는 이미 만삭이었다. 이제 정말 학교에서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개학부터 출산 휴가 전까지 출근하는 날을 세어보니 5주, 수업 시간으로는 10차시 정도가 나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수업에 최대한 담아보기로 했다.




1학기에 받았던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스스로 아쉬웠던 점도 보완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전달할 수 있는 수업을 고민했다. 일단 TED 수업은 무조건 제외하기로 했다. TED에 지쳤다는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교육적으로 훌륭한 영상이 있더라도 TED의 T도 꺼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로 수업했을 때 발췌독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부담 없이 완독 할 수 있는 얇은 원서를 계속 찾았다. 그러면서도 외고 학생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책은 없을까? 그렇게 고른 원서가 바로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이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는 4명의 주인공 스니프, 스커리, 헴, 호가 등장한다. 이 넷은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치즈'를 찾아 함께 미로 속을 헤매고, 마침내 모두를 만족시키는 큰 치즈를 찾아낸다. 하지만 어느 날 돌연 치즈는 사라져 버리고, 이전과는 달라진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가치관을 따라 다른 선택을 해나간다. 새로운 치즈를 찾아 지체 없이 떠나기도 하고, 치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주저앉기도 하고, 소심하게 벽을 파보기도 한다.


1998년에 나온 책이니 발간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고전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한 물 간 베스트셀러라고 할 사람도 있겠으나, 문장이 쉽고 깔끔한 데다 100쪽 이내의 분량이라 5주 안에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변화'에 대처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외고에 입학한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큰 변화였고, 이제 곧 3학년이 되면서 학생으로서 가장 큰 변화를 앞두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변화를 끊임없이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매 차시 수업에서 개별 수업과 모둠 수업을 적절히 분배하려고 노력했다. 먼저 혼자서 정해진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와 어려운 문장을 공부하고, 인상적인 구절에 밑줄을 게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모둠 활동에서 각자의 인상적인 구절을 공유하고 내용 이해 문제를 함께 풀도록 했다. 어느 날은 모둠별로 만화로 내용을 요약해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좋았던 문장을 큰 종이에 꾸며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줬지만, 수업의 큰 틀은 늘 같았다. 혼자서 책을 읽고, 모둠별로 생각을 나누는 것. 어찌 보면 단순한 구조 수업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같은 책을 읽은 뒤에도 학생들의 생각이 매우 다양해서, 발표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혼자 글을 읽고 습득하는 것을 넘어 친구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 '각자가 인상 깊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 달라서 재밌었다'와 같은 피드백을 받았으니 학생들의 생각도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또한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 시기인데 앞으로의 선택을 현명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피드백은 좋은 책을 골랐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전부 읽은 것으로 만족하기에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질문이 책에 있었다. 주인공 호가 치즈를 찾아 미로 속으로 다시 떠날지 말지 고민하다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자, 학생들의 대답이 아프게 느껴졌던 질문이다.

What would you do if you weren't afraid? (두렵지 않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두려움 때문에 지금 하지 않고 망설이고 있는 하고 싶은 일 또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질문이다. 사실 이 질문의 속뜻은 두렵다고 미루지 말고 용기를 내 도전해 보라는 것인데, 어쩐지 학생들에게 선뜻 물어보기가 겁나는 질문이었다. 외고 학생들이 두려움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은 뭘까? 어쩌면 나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비추어, 무슨 대답이 나올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는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자퇴' 또는 '전학'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좌절하지 않는 태도를 길러주고 싶었는데, 정작 아이들이 원하는 건 변화 자체를 되돌리는 것이라니... 다소 착잡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희망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이은 마지막 수업을 준비했다.








(참고: 외고 첫 근무 시절을 추억하며 씁니다.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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