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많지 않지만, 가끔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과 이야기 나눌 때도 있다. 물론 나 역시 조언을 구하고자 찾아간 사람도 있었다. 대게는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오지랖 넓게 말을 했거나 어쩌다 나온 이야기에 대해 이런저런 훈수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 듣는 입장에서는 참견일 수도 있고 간섭이나 잔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대화는 동질감이 느껴져서 비슷한 경험을 말할 때도 있지만 '비슷하다는 느낌'도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조언은 일상생활에서도 늘 일어난다. 대화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지만 상대에게 은근 '자신의 생각이 옳다'라는 느낌을 주는 경우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이야기를 해 보자.
십수 년 전 이야기다. 주변에서 주식으로 망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 한참 주식 붐이 생겼다가 거품이 빠졌을 때다. 주식에 대해 잘 몰랐지만 시장 경기가 좋지 않아 전반적으로 내려간 것이고 경기가 정상화되면 회복할 우량주들이 있는 것 같아서 나도 주식을 해 볼까 싶었더니, 다 말린다. 자신들도 주식하다 다 망했다고.
그들이 주식을 하고 망한 것과 내가 주식을 하는 것은 일종의 '독립사건'이고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망한 이유를 알려주고 이런 점을 주의하라고 말해 주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 텐데, 그저 무용담처럼 얼마나 잃어버렸는지를 말해 준다.
'달리기를 해 볼까' 하고 생각할 때도 다들 말린다. 이렇게 바쁜데 무슨 달리기냐, 이미 늦은 나이다. 무릎 망가진다. 괜히 무리하지 말아라. 심지어 달리기를 해 보신 분도 달리기하지 말라고 하신다.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고 하시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운동능력 0 치인 내가 마라톤 완주를 하거나 100미터 선수처럼 달릴 수도 없고, 거북이 마냥 슬슬 뛸게 뻔하고 그것도 거리가 길지 않을 텐데 왜 다들 말리는지. 그러고 보니 대부분은 달리기는 커녕 운동을 하지 않는 분들이었고, 부상을 입었다는 분도 보니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리'를 했었다.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부상을 막기 위한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션이 어릴 때 퇴근 후나 주말 놀아주는 이야기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IT 프로젝트는 극강의 노동력이 동원된 환경이어서 잠을 자기도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다들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와중에 아이와 놀아주는 것까지 하고 있으니 '그래봤자 아무 소용 없어, 애는 자기가 알아서 크는 거야.' 등의 말씀을 많이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는 아닌 것 같았다. 엄마와의 절대시간이 부족한데 관심까지 거둬버리면 아이가 올바르게 클 것 같지 않았다.' 알아서 크는 거야'의 의미가 아이가 어릴 때는 '완전 방치'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관심을 주는 '의도적 방치' 이거나 자율성과 독립성을 키우기 위한 '전략적 방치'가 맞는 말 같았다.
어차피 좀 더 자라면 내 품을 떠날 텐데 어린 시절은 양적인 사랑은 채워주지 못해도 질적으로는 후회 없이 보듬어 주고 싶었다.
션은 영유아 시절 꽤나 예민한 아이여서 엄마와 떨어져 있어서 정서적인 안정감은 없는지 무척이나 신경을 썼다. 다들 학원에 보낼 때, 나는 최대한 공부 기초체력, 뇌 근력을 키우기 위해 집에서 여러 가지를 놀이로 많이 했다. 그 덕에 꽤나 돈독한 모자관계를 가질 수 있었고 아이의 기질과 특성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여러 사람 겪다 보니 '쓸모없는 조언'과 '귀한 조언'이 점점 구분이 된다.
해보지 않은 사람이 '필요 없어, 하지 마, 왜 하려고 그래'라는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 더 강하게 표현하면 아무 쓸모 없는 말이다. 순전히 자신들의 주관적인 생각, 가치관에 따라 한 말이지, 상대의 입장이나 생각을 고려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런 말들에 설득력을 주기 위해 본인이 아닌 다른 실패 사례를 언급하곤 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역시 그렇지?'하면서 이런 말에 솔깃해 한다.
아이를 키울 때 특히 초등학생 부모님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어떤 아이가 열심히 하고 빠른 길로 가고 있으면 "저러다 지쳐"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 시기가 있다. 그런데 학년이 오르다 보면 이 말이 점점 쏙 들어간다. 안 지치기 때문이다. 부모가 관심이 있고 아이도 실력이 쌓이다 보니, 알아서 조절해 가며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오히려 "나도 그때 좀 챙길걸, 미안하네."라는 죄책감을 가지는 경우가 늘어난다.
주식을 할 때, 운동을 할 때, 또 다른 도전을 할 때마다 신기하게도 힘들 거라며 하지 말라는 사람이 더 많은데 적당히 가려듣고 하고 싶은 대로 꾸준히 해 나가면 된다.
해본 사람이 하는 조언 중 '필요 없어, 하지 마, 해 봤더니 소용없어'라는 말도 알아서 잘 받아들여야 한다. 대게 본인이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이들도 마치 실패할 것을 기정사실화 한 채로 말한다. 앞서 언급한 주식과 달리기를 해 본 사람들이 나에게 하지 말라고 말한 경우다.
자신의 경험을 나눠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이럴 때는 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왜 실패했는지를 가려 들어야 한다. 나와 그들의 경우는 다른 상황임을 알려주고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지 들을 수 있다면 소중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이 키울 때 이런 방식이 꽤 도움이 된 적이 있다. 초등학생을 둔 직장 선배였는데 그 당시 영어유치원을 보냈었다. 션이 꽤 어릴 때였고, 션과 나이 차가 크게 나는 터라 나중을 생각해서 영어유치원 보냈더니 어떻냐고 물었더니 '효과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잘하는 아이는 따로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그 '따로 있다는 잘하는 애'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지는 않아서 영어교육 관련 책, 언어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집에서 책 많이 읽고 경험 많이 쌓고 대화 잘 나누면 '따로 있다는 잘하는 아이'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결론적으로 유아 때부터 이중언어를 구사하게 되었고 미국 유학을 간 지금까지 언어로 골머리 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한국 토종 아이가 국제 디베이트 대회에서 수상하는 일까지 생겼다.
아무것도 안 하면 바뀌는 것이 없지만, 무엇이든 하면 변화가 있다. 그리고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면 확실한 변화가 있다는 경험이 점차 쌓이게 되었다.
해본 사람, 특히 성공한 사람이 하는 조언도 조심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들에게는 배울 만한 점이 정말 많다. 일단 사고방식이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다. 대부분 이것을 간과하곤 하는데 나는 '긍정의 힘'이 의외로 인생 전반에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속력을 가지는 것이 보통 일인가. 다들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끊임없이 자기 확신을 쌓아나가는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이분들과 이야기하면 뭘 한다고 하면 '하지 마, 필요 없어'라는 말보다 '그거 좋은데? 하면 정말 좋겠다. 역시 대단해.' 이런 말을 말이 해 주신다.
재미있게도 해보자 않은 사람이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할 때는 주변의 실패 사례를 언급하는 반면, 이런 분들은 정작 자신은 하지 않았더라도 해 보라고 독려하며 주변의 성공사례를 알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하라고 하는 이유는 이분들의 노하우를 들을 때 숨은 의미를 잘 읽어야 해서다.
어떤 분은 가볍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분은 '나는 이렇게 했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이분들의 생활과 사고방식 자체가 미래지향적인 경우가 많다. 즉, 말해 주는 노하우나 조언은 일부분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만' 비법인 줄 알았다가는 '왜 나는 해도 안되지?'라며 오히려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문제를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은 이미 습관이 되어 쉽게 하는 일이, 나로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들이라 시작도 하기 전에 엄두가 안 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자기방어기제가 발동해서 '저 사람은 특별하구나, 나와 다르구나'라고 생각하고 포기를 해 버린다.
이럴 때는 포기를 할 것이 아니라 '아, 저런 방식으로 살면 나중에 저런 모습이 되는구나.'하고 확신을 가지면 된다. 비록 열 가지 방법을 다 따라 하지는 못하고 한 가지 조차도 깊이가 다를 수 있으나, 세월이 지나면 분명 '달라진 나'가 될 수 있다는 '거울'로 삼으면 된다. 나 홀로 걷는 것보다 먼저 간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이 훨씬 마음의 안정이 되므로 괜한 비교는 하지 말고 천천히 시도해 보면 된다.
내 나이대 사람들을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여러 취미 생활의 좋은 점을 말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걱정되어 관리를 좀 하라고 말해 주고 싶을 때도 있다. 대학생이 되었거나 직장에서 후배들을 보면 이들을 위한 말을 해 주고 싶을 때도 있다. 션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괜한 오지랖이 될 것 같아서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나 역시 누가 골프 찬양을 하면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혹시나 누가 조언을 구한다고 찾아와도 말하기가 꺼려진다. 나의 방법이 누군가에게는 '나는 따라 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줄까 봐 걱정될 때가 있고, 어쩌면 경험이 자랑으로 들릴 수도 있다. 또한 서로의 상황이 달라서 나의 방법이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가, 점점 '듣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여전히 수다스럽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