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끊임없이 찾고 내 일이라고 생각되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몇 가지만 집중했던 것 같다.
집중하는 일, 좋아하는 일, 관심 있는 일이라고 해서 항상 저돌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하루에 할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용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려하는 편이나, 나 역시 꽤나 '미루기'를 한다. 정말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가벼운 일들로 슬쩍 바꿔치기하고 속으로 '지금은 이 걸 해야 하니까' 하며 은근슬쩍 미루곤 한다.
그래도 한번 결심하면 어느 수준까지는 꽤나 몰입을 하다 보니, 친한 지인들은 "3개월이면 전문가 되는구나."이라는 말을 종종 하고, 내가 못하는 것은 "네가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한 거잖아"라고 말해 준다. 션파는 이런 나를 보고 "넌 (마음먹으면) 눈 까뒤집고 하잖아"라는 표현을 하곤 하는데, 칭찬 같기도 하고 욕 같기도 하고 애매하다. 비슷한 이런 말들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잘하는 분야에 대해서에 국한해서였다.
어쨌건 항상 저렇다는 건 아니고, '어쩌다' 필이 꽂히면 그래도 몇 개월 정도는 집중해서 몰입을 하고 충분히 푹 담그고 나면 다시 빠져나온다. 한번 시작하면 서너 달은 다른 건 차지하고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니 나도 '시작'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내가 시작했다고 굳이 말할 수 있었던 건 몇 개 되지 않는데, 좋은 점을 꼽으라면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나만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한다.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쓴 적이 있다.
운동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스타일인 데다 학창 시절 운동을 못한다는 것은 '그저 못한다'가 아니라 심각한 콤플렉스로 자리 잡고 있었다. 워낙 운동을 싫어하는 스타일인 데다 못해도 너무 못하니 '운동을 할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체력장에서 만점 못 받은 유일한 학생이 나였다.)
여자아이들이라면 당연히 하고 노는 고무줄놀이, 공깃돌 놀이도 나에겐 '고도의 운동능력'을 요하는 터라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아마 지금 태어났다면 젊은 엄마들 눈에 자식의 미래(심각하게 낮은 수행평가)가 보여 어릴 때부터 각종 운동 센터를 다녔을지 모른다. 고등학생 때 마침(?) 디스크를 앓아 1년 넘게 투병생활을 하는 덕에 체육시간 운동과도 아예 멀어졌다.
대학생이 되어서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더 이상 '체육'과목이 없는 것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격 의자에 앉아 꼼짝 하지 않고 일하는 좌식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이런 생활이 얼마나 건강을 좀 먹는지도 모른 체 몇 십 년을 살아왔다. 점차 운동하는 사람들이 늘긴 했으나, 운동할 시간이 있으면 부족한 잠을 자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나았다.
운동을 하는 경우 중 꽤 많은 경우가 '다이어트'로부터 시작한다. 체중조절을 해야 하는데 먹는 것 만으로 안되니 운동을 병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는 감사하게도 이 나이치고 타고난 비율이 좋은 편이고, 어려서 부터 몸에 밴 생활습관 덕에 운동을 하지 않아도 항상 슬림했다. 생활습관이라고 함은 지금 여러 책이나 유튜브 등에서 '이렇게 하세요'라고 말하는 '비법'들을 나도 모르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해 왔던 것을 말한다. 또 하나 부모님께 감사할 일은 뭘 입어도 대충 어울리다 보니, 오히려 외모에 대한 관심은 1도 없었고 다이어트 필요성도 느낀 적이 없다. 오히려 살을 찌우라는 말을 지겹게 들었다.
이런 성향을 타고나는 것인지, 집안 환경 때문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션도 공사가 워낙 다망하시고 좋은 몇 가지 생활습관이 있어서 살찔 겨를 없이 슬림하다.
내가 살이 잘 찌는 체질이었으면 오히려 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더 빨리 했을 것이다. 돌이켜 보니 이 부분은 아쉽기도 하다. 지금이야 어린 나이, 젊은 나이부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미리 관리를 하지만, 우리 나이대는 그렇지 않았다. 막말로 팔자 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결국 건강에 위험신호가 올 때가 되어서야, 마지못해 건강을 챙겨야 하나 하며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가 2019년도이다. 이미 그전부터 몸은 최악이었으나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버티고 안 하다가 드디어 '이러다가 골로 가겠구나' 생각이 들어 집 근처 GYM을 찾아갔다.
PT 코치님 가이드 따라 대략 석 달 열심히 했다. PT코치님 말씀이 대게 다이어트를 위한 식단을 병행하면서 운동법을 알려주는데 나 같은 경우는 이미 마른 체형이라 근육운동에 집중하자고 하셨다. 빠질 살이 없다 보니 남들처럼 before/after 변화는 없는데 그래도 기분상 라인이 미세하게 정돈되는 느낌도 들었고 힘이 붙는 것 같았다.
이 시기에 운동법을 꽤 공부했다. 유뷰트 동영상 찾아서 궁금한 거 다 찾아보고, PT코치님께 질문도 많았다.
다이어트 과정이 없다 보니 별 힘들이지 않고 석 달 후 바디프로필 찍고 나서부터는 운동은 드문드문했다.
몇 개월 쉬었다가 생각나면 홈트 하고, 또 바쁘면 쉬었다가 생각나면 홈트 하고.. 운동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민망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무엇보다 과거에는 '운동'이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켰고 못해! 안 해! 였다면, 이제는 달라졌다.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상쾌했다.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이 몸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평생 가졌던 트라우마에 가깝던 운동에 대한 경계심이 드디어 무너졌다.
그러다가 1년 전 추석에 양재천을 걷다가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갑자기 '나도'라는 생각을 했다.
유레카도 아니고 포레스트 검프도 아니고,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나도 달리고 싶었고, 저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달려봤다. 1분도 못 달렸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억지로 한 경우 빼고 달리기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미 내 나이는 50이 코앞이었고. 그래도 하면 늘겠지 싶기도 했고 어이없게도 이미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버렸다.'
한 가지 걱정이라면 나이가 많기도 했고 경험도 없다 보니 혹시나 부상을 입지 않을까였다.
뭐든 자세가 중요한데 따로 배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책과 동영상을 찾아서 알아봤다. 나중도 걱정되어서 달리기 오래 할 경우 부작용은 없는지 등도..
(누가 보면 마라톤 풀 코스 나가는 줄 알겠다. 5분이라도 달릴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는 점차 1분에서 5분, 10분, 30분, 1시간으로 늘어났고, 10km는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은 해 본 적 없어서 거리에 대한 기록경신은 하지 못했고 딱 10km 거리로만 달렸다.
물론 이때도 처음 석 달은 노력을 많이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주일에 4,5번은 달리기를 했나 보다. 물론 이때는 많이 달릴 수 없으니 그리 부담이 가지는 않았다. 다만 꾸준히 하는 게 관건이나, 운동은 신기해서 반복해서 하면 '하지 않으면 찜찜한 상태'를 못 견디게 된다. 물론 한 번 두 번 하지 않고 미루면 몇 개월을 훌쩍 미루게 되는 일도 잦다.
지금은 일주일에 딱 두 번 달리기를 한다. 그리 무리하지 않아도 10km는 충분히 달릴 수 있게 되었고, 일이 많은 날까지 그리 무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주 간혹 컨디션이 좋으면 50분대로 달리고 대게 1시간 10분 정도이다.
달리기를 한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고, 천하의 몸치인 내가 하는 거면 못할 사람이 없겠구나 싶어서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세상에.. 50이 되어서 상상도 하지 못할 이야기를 듣는다.
10km 달리기 하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남자들이.
다른 칭찬은 그려려니 하고 때로는 자화자찬도 하지만, 운동과 요리만큼은 너무 낯설다.
둘 다 내 인생에는 없는 단어였기 때문이고, '못한다'가 워낙 뿌리 깊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이 두 가지에 대한 칭찬을 하면 솔직히 어리둥절 해 한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안절부절못할 정도였고, 처음에는 이건 그냥 하는 소리라고 여겼다.)
얼마 전 친한 지인과 이야기하다가 달리기 이야기가 나와서
"좋겠다. 나는 (달리기) 원래 못해. 조금만 달려도 숨이 너무 차"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달리기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 백이며 백 모두 같은 말들을 나에게 한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원래 운동을 잘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오해도 한다.
트라우마라고 표현을 할 정도로 운동은 심각한 콤플렉스였고, 이보다 더 심각한 건 '아예 시도조차 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를 깨뜨려버렸다. 해 보니 할 수 있었고, 누구보다 더/덜을 말할 필요 없이 그냥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즐기고 싶은 만큼 즐기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나는 원래 못해"의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진.정.으.로 깨달았다.
못했던 것이 아니라, 안 했던 것이었다.
시도도 안 해보고 '나는 운동 못하는 사람'이라고 단정을 짓고 50년 가까이 살아온 것이었고, 운동의 즐거움을 아예 느끼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종종 무언가를 시도할 때, '그래 그 못하던 운동도 했는데, 이거 못하겠어?'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션을 키우면서 배웠다.
션도 나처럼 심각하게 운동능력이 없었다. 몇 번 이야기하곤 했는데 소아과에 검진하러 가면 "선생님, 아이가 치질 걸릴 거 같아요. 움직이지 않고 맨날 쪼그리고 앉아서 뭘 해요"라고 말할 정도로 소근육만 그리 키워댔다.
나도 그랬지만 유아 때, 초등학생 때 움직이지를 않고 그리고 책 읽고 만들기를 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운동능력이었는데 키울 기회가 없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뛰어다니고 부모들은 쫓아다니기 바쁜데 나는 션 쫓아다닌 기억이 없다. 놀이터에 둬도 땅 파고 놀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태권도장도 보내고 축구도 시키곤 했는데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운동 잘하는 친구에 대한 동경이 나보다는 컸나 보다. 나는 아예 '우리 학교에서 운동 제일 못하는 아이'로 스스로 낙인찍었다면, 션은 중학생이 되면서 '신분세탁'을 선언했다.
션도 나처럼 마르고 날렵해 보이다 보니 운동 잘하게 생겼다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해서 새로운 학교에서는 운동을 잘하는 학생으로 거듭나겠다는 거다.
한몇 년 동안 이 아이가 이다음에 체대를 가려나 할 정도로 하루 몇 시간씩 그리 열심히 운동을 했다. 공부는 언제 하나 걱정이 슬쩍 되기도 했으나 그 보다 '저러다 지치겠지. 해도 안될 텐데'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1년, 2년이 갈수록 션의 변화를 보고 나의 생각이 점차 바뀌었다.
비유를 하자면 천하의 음치가 득음을 한 것과 같은 변화다.
천하의 몸치 션이 저리 바뀌었는데, '나도 하면 되려나?'하고 GYM을 찾게 된 것이었다.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원래 못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건 아닌지'
그리고 왜 '안 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는 아닌지.
또는 그 험난한 과정을 겪고 싶지 않아서는 아닌지.
지금도 션을 격려할 때 "운동도 해 냈잖아. 그런데 네가 잘하는 데서는 충분히 더 잘해 낼 수 있어"라고 말해준다. 이 말은 나에게도 유효하다. "운동도 해냈는데 이 정도는.."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