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꼬맹이 때 바라본 50대는 노년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나이로 더 이상 꿈을 꾸는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막상 내 나이 50대에 접어들고 나니 그런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 있다. 앞자리가 바뀌면 심란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매번 내 나이가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가지고 있던 것들은 '내려놓을 준비'를 해서였던 것 같다. 이때 '내려놓음'은 포기나 주저앉음이 아니라 '욕심과 미련'을 의미한다. 거스릴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미련을 버리되,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내 눈에는 아직 생기발랄한 20대 후반 유튜버가 '예전 같지 않아요. 체력도 그렇고 탄력도 떨어지고'라고 말하는 것을 봤다.
그런데 20대도, 30대도, 40대도, 50대에서 똑같이 '예전 같지 않아'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을 보면서, '이러다 평생 저 소리 하며 살겠다'싶었다.
어떤 경우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하는지 보니, 노화가 진행되어 얼굴과 몸매가 이전 같지 않을 때, 체력이 떨어짐을 느낄 때, 하고 싶은 일이나 호기심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때가 많았다.
"외모"
이 중에서 외견상 보이는 얼굴, 몸매와 같은 외모는 일찌감치 '나이 든 내 모습'에 익숙해지고 사랑해 보자 생각했다. 지난번 <[썰]사진? 나 블로거잖아(클릭)>도 같은 맥락으로 적은 글이다.
아주 오래전 30대 중반 넘어갈 때 즈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TV에서 보는 아름다운 연예인들이 나이가 들면 사람들의 반응은 한참 리즈 때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고 '이전만 못하다'라고들 한다. '아니, 나이가 들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탄력을 잃는 건 당연한 건데 왜 20대 한창때의 모습을 계속 찾는 거지?'라는 생각과 아울러 저리 관리하는 연예인들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데 우리 일반인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므로 '오늘의 내 모습'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찾는 일은 하지 말자고 여겼고 실제로 그리했다.
그보다는 잘 웃던 '웃음'이나 잃지 말고 혼자 있어도 배시시 웃는 표정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눈에는 노화로 인한 외모 변화 한 가지를 꼽으라면 쳐지는 얼굴, 주름, 기미, 굵어진 허리가 아니다. 바로 표정이다. 점차 입꼬리가 내려간다. 남자고 여자고 하나같이 입꼬리가 내려가고 미간에 주름이 있는 비슷한 얼굴이 되어 간다. 무표정은 화났을 때 근육과 같은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무표정 자체가 인상을 점점 화난 인상으로 바꾸게 한다. 나는 세상 예쁜 얼굴은 주름이 있건 말건 환하게 웃는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체력"
체력 역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게 관리는 할 수 있다. 내가 체력이 떨어졌음을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은 어이없게도 새벽까지 일할 때나 밤을 새는 경우다. 그 나이에 아직도 밤을 새울 수 있어요라고 놀라는 사림이 더 많아서 '어이없게도'라는 표현을 썼다.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이리 과하게 몰입을 하곤 하는데 이전과 확실히 다르다. 처음에는 회복 속도부터 차이가 조금씩 나더니 지금은 회복 속도는커녕 밤을 한 번 세우고 나면 여파가 며칠 이어진다. 그래서 최대한 일을 조정해서 하고 있다.
이렇게 과하게 일할 때 말고는 운동을 하면 그래도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나처럼 평생 운동과 담쌓은 사람은 운동을 조금이라도 하면 신체능력이 더 나아지는 기이한 일도 겪는다. 없던 복근도 희미하게 생겨 있다. 중년, 노년에서 많이 하는 운동이 유산소 운동인데 사실상 근력운동이 더 도움이 된다. 근 손실이 질병으로 분류되는 상황이 되다 보니 나이가 들면 당연히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바뀌게 되었다. 더 나빠지는 것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근력운동은 하지 않고 현재는 주 2회 달리기를 하는 게 다이고 달리기가 유산소인지 무산소인지 헷갈릴 때가 많으나 켈리 맥고니걸의 <움직임의 힘(클릭)>에서 언급했듯, 어떤 운동을 하건 나 스스로를 꽤나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는 계기가 되어서 신체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이로웠다.
"열정과 호기심 "
지금도 여전히 듣고 있는 말이 있다. '어디에서 그 에너지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 여전하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아진다. 억지로 하는 일들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해 온 일들이 세월이 흐르니까 다시 나에게 활력을 주고 있음을 내 주변인들도 느끼는구나 싶어서다.
그렇게 거창하고 위대한 일은 아니지만 현재 재미있어하는 게 있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호기심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다.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커서일 것이다. 책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며, 타인의 생각을 이질감이나 부작용 없이 바라보게 해 준다.
다행인지 지금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고 내 일에 대해 '적당한 수준'의 자부심이 있다. '자부심이 큰 편이다'가 더 맞는 표현이지만 자부심도 과하면 오만해진다. IT 컨설팅은 사람과 조직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필수인 업종이다. 어느 정도 사람의 이해에 대한 여지는 남겨놓으며 일을 해야 부러지지 않기 때문에 자만심이 되지 않게 자부심 역시 임계치를 넘어가지 않도록 가끔 나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조정을 한다. 한창때는 물불 안 가리고 일에 덤비다가 이것도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40대까지는 '여유 없는 무자비한 바쁨'이라면 점차 '건강한 바쁨'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자식이 내 품을 떠난 것이며 다음으로는 일이 더 노련해진 덕분이다. 바쁘다는 말조차 못 할 정도로 바쁜 시기가 정신없이 지나고 나니, 지금은 시간의 틈이 점점 벌어져서 일을 하면서도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껴 넣을 여유가 생기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일을 하면서 육아를 했던 시기와 비할 바가 못된다. 지금은 원하면 잠은 충분히 잘 수 있지 않은가.
세월을 거스를 수 없으므로 이전보다 체력도 지력도 외모도 당연히 떨어졌겠지만 대신 '경륜'이 쌓였다. 책도 한 권 읽을 때와 열한 권 째 읽을 때 훨씬 쉽게 내용 파악이 되고,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보다 4개월째 달릴 때 훨씬 먼 거리를 쉽게 간다.
새롭게 해 온 일이 좀 쉬워질 무렵에 다른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열릴 여유가 생긴다.
'예전 같지 않아요'는 당연하다. 나도 이전에 가뿐하게 했던 것이 힘에 부칠 때마다 그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 같지 않은데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면 부럽다. 나는 달리 부러워하는 사람이 없다. 부러운 것이 생길 때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면 바로 내려놓고 그 사람을 축하하고 칭찬한다. 가질 수 있는 것이면 행동에 옮겨서 그냥 시작한다.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부러우면 나도 하면 된다. 이렇게 살면 비교가 질투가 되어 마음에 얼룩을 주는 일들을 막아준다.
50대 접어든 시점에 뒤돌아 보니 좋아하는 일과 취미생활을 꾸준히 해온 내가 대견해서 요즘은 어깨 툭툭 쳐주고 있다. 션이 미국에 간 후 생긴 시간의 여유에 대해 과거에 열심히 살아온 보상이라고 여기며 감사해 하고 있다.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면서 어제와 같은 오늘을 열심히 살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제와 같지 않은 오늘임을 이제는 알겠다. 한때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하며 자괴감이 든 적도 있었으나, 그래도 그 속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찾으며 성실히 살다 보니, 매일같이 보이지 않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50대 역시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60대의 나, 70대의 내가 더 근사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늘의 내 나이'가 마음에 든다. 50대도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데, 60대, 70대, 80대도 막상 닥쳐보면 얼마나 괜찮을까. 그 나이마다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아름다움이 그저 얻어지는 것은 아님도 배웠다.